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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 그 경험의 가치
'시니어' - 그 경험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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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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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얻은 당위성, 너무 몰입하지 말고 개방해야"
유형준(CM병원 내분비내과·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장)
유형준(CM병원 내분비내과·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장)

'시니어'는 '계급 또는 등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쪽을 가리키는 용어로 대의어는 '주니어'다.

상급자, 선배 또는 연장자를 의미하는 시니어는 요즈음엔 노인을 일컫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예를 들면 예순 다섯 살이 되는 날부터 전철을 무료로 태워주는 카드 이름은 '시니어 패스'고, 의료에 오래 종사한 선배 의사들은 시니어 닥터라 부른다.

시니어는 주니어보다 더 살아왔고, 고령자는 청장년보다 오래 전부터 살아오고 있다. 자연스레 시니어는 주니어보다 오랜 경험이 풍부하다.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물건에만 값을 매기던 과거와 달리 요즈음엔 직접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고 값을 쳐주고 있다.

이 무형의 가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경험이 발휘하는 가치다. 직접 경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 상대방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책·강연·견학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을 배우고 얻으면서 기꺼이 값을 지불한다.

유형의 값에 머무는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인심과 시대정신에 시니어의 경험이 끼치는 영향은 그 가치를 측량하기가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오래되고 풍부한 경험은 값진 경험이란 말과 동의어일까? 일반적으로 오래된 경험일수록 높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뜨면 도서관 하나가 소실되는 것과 같다'고 후한 값을 쳐주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 노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고가의 소장품으로 여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랜 경험이라고 무조건 소중하게 다뤄지는 건 아니다. 새로움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만을 일방적으로 욱대기면 욱대길수록 민망할 정도의 헐값이 매겨지기도 한다. 심지어 고리삭은 고정관념으로 천대받기 십상이다. 

왜 시니어의 경험에 대한 가치 평가는 간단치 않은가. 경험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경험은 네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쉽게 쓸 수 있는가의 유용성, 처음에 사용하기 쉬운가의 채택 가능성, 재미있고 매력적인가의 바람직함, 그리고 쓸모 있는가의 가치다.

이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상위의 요소는 가치다. 경험의 가치를 사전은 '어떤 사건을 직접 관찰하거나 어떤 행위에 몸소 참가하므로 얻어진 기술 지식 실천 등의 결과로서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의식적인 사실'이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경험 가치는 주로 의식적 평가의 결과인데다 복잡다단한 개인과 사회경제적 배경이 끊임없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시니어의 과거는 주니어의 과거에 비해 시간적으로 길고 경험이 두텁게 쌓인다. 즉, 경험은 대부분 과거에 대한 지식과 체험이다. 길고 두터운 체험이 모든 과거를 값지게 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도 마지막 희곡인 <템페스트>에서 "과거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토로한다. 과거는 과거 그대로 값지지만 과거의 경험 가치가 현재와 미래의 경험 가치와 똑같을 수 없다. 경험 가치는 세상의 형편에 따라 변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가속도로 노인인구가 늘고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고 그나마 구한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태반인 요즘 상황에선 어지간한 경험의 가치는 예전과 달리 퍽 요동치고 있다.

그나마 의료 경험은 전문성의 정년이 없고 지식과 기술과 감성적 의지가 훨씬 더 어울려야만 작동하는 덕에 세상의 영향을 덜 받는다. 따라서 특별한 곡절이 없는 한 시니어 닥터의 과거와 경험은 나름대로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노인은 어떤 사람이냐?"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렵지만, 그에겐 어느 시인의 수사처럼 '뭔가에 환호할 나이는 지났다고 뭉그적거려' 보고 있는 시간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경험 가치는 얼마인가?" 더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이렇게 답할 순 있다. '어떠한 경험도 제대로 체화되지 않아 깨우쳐지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온전한 가치의 경험이 아니다' 경험 연구자들은 경험을 더 가치 있게 하는 방책을 제시한다.

첫째, 경험에서 얻은 당위성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라.

둘째, 경험을 개방하라. 개방해 남이 겪은 경험도 대입함으로써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체득한 당위성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 재평가해야 마땅한 가치가 정해진다. 

개인의 경험 가치를 어느 누가 덜컹 측량하랴. 각자 스스로의 경험 값을 매겨 보는 게 두루 편할 터. 마침 요즈음 의료계 시니어들이 경험을 개방해 시세와 대화를 통해 사회 인심과 시대정신을 공유하려는 활동을 소중히 키우는 정성을 본다.

그 정성의 진정성과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보지 못하고 나이 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씀에 힘입어 <삼국지>의 중심인물이며 당대의 뛰어난 시인이었던 조조의 시 한 구절을 조심스레 빌려본다. 
 
늙은 준마는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 천리를 내달릴 뜻을 품고 있고 
열사는 늙어도 / 웅장한 뜻은 아직 식지 않아
 (「구수수(龜雖壽)」일부,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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