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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맞이...의학용어를 왜 우리말로 바꿨을까?
한글날 맞이...의학용어를 왜 우리말로 바꿨을까?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8.10.0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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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화 작업은 국민을 위한 것…결국 의사에도 이로워"
의협 의학용어집 '권장용어'…학회 간 협상 결과 볼 수 있을 것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학용어의 '한글화' 작업이 환자와의 소통과 다른 전문가들에게 '쉬운 용어'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9일은 한글날. 한글날은 한글 창제 후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할 배이셔도 비로서 제 뜻을 시러 펴디 못할노미 하니라"

훈민정음 서문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 이유가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들이 자기 뜻을 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백성은 '한자'라는 장벽에 막혀 자기 뜻을 펴지 못했다. 오늘날 일반 국민은 '어려운 전문용어'의 홍수 속에서 '제 뜻을 시러 펴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용어'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의료계의 노력은 '의학용어집' 변천 역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왼쪽부터)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 제4판(2001년), 대한해부학회 해부학용어 제3판(1990년)에서는 의학용어를 대거 한글화했다. ⓒ의협신문
(왼쪽부터)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 제4판(2001년), 대한해부학회 해부학용어 제3판(1990년)에서는 의학용어를 대거 한글화했다. ⓒ의협신문

2001년 출판된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 제4판에서는 의학용어를 대거 한글화했다.

발간사를 통해 "의학용어 중 복잡하고 어려운 일본식 표현, 어려운 한자어, 영어, 라틴어로 된 용어를 모두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표현으로 바꿨다. 실제 이 부분에 모든 역량을 기울였다"며 "어려운 일본식 한자용어를 한글화해 우리 토박이 용어가 많이 포함돼 있다"고 직접 밝혔다.

한글화에 특히 노력을 집중한 학회도 있다.

대한해부학회는 '해부학용어 제3판(1990년)'을 시작으로 의학용어의 한글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해부학용어집 제3판은 한자 용어와 영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해부학용어를 우리말로 풀이해 모으는 작업에 집중했다. 기존 한자식 용어의 약 80%를 우리말로 바꾼 1만2천개의 해부학용어를 정리한 것.

대한해부학회 용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 작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정민석 아주의대 교수(해부학교실)에게 '의학용어의 한글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정민석 아주의대 교수(해부학교실)는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실무위원 및 대한해부학회 용어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의협신문
정민석 아주의대 교수(해부학교실)는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실무위원 및 대한해부학회 용어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의협신문

정민석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과 해부학회 용어집의 관계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과 해부학용어집은 서로 영향을 주며 끊임없이 타협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글 용어에 대한 갈등 과정도 상당했음을 언급했다.

"용어를 변화하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학회 간 견해 차이와 세대 간 인식 차이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나 역시 새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미 배운 용어에 대해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기존 세대의 부담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옛 용어를 배운 학생, 의사들은 대부분 새 용어를 반대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앞으로 새 용어를 배우게 될 의예과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 용어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민석 교수는 한글 용어의 장점으로 먼저 '세계화 속의 경쟁력 향상'을 들었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 '영어 용어'와 대치가 쉬운 한글 용어가 더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의과대학은 대개 의학용어를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며 "영어 용어와 수월하게 상호교환되는 것은 우리말화시킨 '새 용어'"라고 말했다.

이어 한글화한 새 용어가 중요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환자와의 소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양한 의료정보의 범람으로 환자들 또한 선택의 욕구가 높아졌다. 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위해 환자를 설득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때 쉬운 용어는 환자 설득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 의학용어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소통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라며 "환자의 이해를 높이는 것은 곧 의사에게도 이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쉬운 의학용어는 법률용어 등 다른 전문가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전문가들을 위해 쉬운 용어로 전환하는 선 작용을 할 것이란 기대도 내비쳤다.

정 교수는 "쉬운 법률용어는 법률가를 위한 것이 아닌 비법률가를 위한 것"이라며 "의사가 어렵게 배운 전문용어에 대한 기득권을 살짝 내려놓는다면 다른 전문가들 또한 기득권을 내려놓는 순기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초에 발간 예정인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집 제6판'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는 용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이에 상당한 시간 동안 토론과 협상을 거쳤다"며 "이에 대한 결과를 '권장용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장용어는 말 그대로 의학용어에 두 개 이상의 뜻이 있는 경우 더 '권장'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권장용어를 통해 각 학회에서 모인 위원들이 협상한 '권장' 사항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이번 의학용어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권장용어로 '-샘'과 '거미막'을 언급했다(기존 '-선', '지주막'). "두 용어 역시 일반인들이 쉽게 개념을 떠올릴 수 있는 용어를 권장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정민석 교수는 "한글화 작업은 의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의사끼리는 이미 영어로 이야기한다. 이는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며 "의협이 의학용어 작업에 투자하는 것은 의사만을 위한 이익집단이 아닌 국민들의 건강과 이해관계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실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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