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06:00 (금)
계미사행(癸未使行)과 해체신서(解體新書)
계미사행(癸未使行)과 해체신서(解體新書)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8.09.21 09:4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 혼란스러울수록 '지식인 예지'·'선각자 혜안' 통해
"국민 위한 사회적 공헌 깊게 성찰 할 때"
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장성구 대한의학회장

임진왜란 때  일본의 악행을 생각하면 탐탁지 않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입장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1763년 8월 3일(영조 39년) 1년의 여정이 예상되는 계미사행(계미년의 조선통신사)이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영조는 눈물을 흘리며 "이릉송백[二陵松: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조선의 성종릉(선릉)과 중종릉(정릉)을 파헤쳐 훼손한 일]의 치욕을 잊지 말 것이며, 왜인들이 정주의 철학(程朱哲學:정자와 주자의 철학)을 모르니 경들이 시문창화(詩文唱和:일종의 필담)를 통해 충신독경(忠信篤敬:말은 참되고, 행동은 돈독하고 공손한 것)을 가르쳐라"고 하명하고 호왕호래(好往好來:잘 다녀와라)를 당부했다.

임금의 이러한 엄명은 어쩌면 통신사들의 행동에 많은 제약이 됐을 수도 있다. 당시 조선 통신사는 조선에서 모든 면에서 학식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로만 선발했기 때문에 조선통신사의 여정 속에 일본 각지의 식자들 사이에는 이들에게 글씨 한 줄 받고, 저녁 때 독대해 가르침을 받는데 사활을 걸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자의적 일본 측 기록이기는 하나 "조선통신사의 오만함이 극에 달했다"라는 글귀가 남아있다.

이 시기에 일본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막부였던 에도막부(도쿠가와막부) 시대로 학문적으로는 유학(儒學)을 숭상하고, 난학(蘭學:화란, 네델란드어로 된 학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로서 1722년 독일인 콜부스가 저술한 해부도표(Tafel of Anatomy)의 네델란드(화란)어 판을 4년에 걸친 피나는 노력 끝에 번역해 해체신서(解體新書:1774년 발행)를 발행하기 10여 년 전에 해당한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한 학자는 일본에서 훌륭한 역사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으며 명치유신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정신적 지사(志士)에 해당하는 의사(醫師) 스키타 겐바꾸(杉田亥白)였다. 

그는 화란어로 된 일본 최초의 해부학 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난학(蘭學)이라는 표현을 했다. 당시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많았기 때문에 한자를 차용한 번역이었으니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해서 태어난 의학 용어어가 신경·동맥·연골 등으로 당시로서는 신조어에 해당한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나름대로 일본 내에 난학(蘭學)이 활발하게 연구되던 때 였다. 조선통신사라는 당시 최고의 지식인을 맞이하는 일본의 식자들 중에 난학을 공부한 키타시마 쇼(北山彰)는 통신사를 찾아와 인체해부학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이때 통신사를 수행했던 조선의 의관(醫官:한의사) 남두민은 "그대나라 학자들은 기이한 논설을 즐겨 말하는 구나. 인체를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가르지 않고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는 미혹되지 마시오."라고 군자답게 타 일렀다.

오늘날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을 느껴야만 했을 조선의 의관 남두민 이었지만 그가 갖고 있던 제한된 지식과 철학으로는 그렇게 말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의연함까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그를 탓하기보다는 그 당시 이미 난학을 통해 해부도표를 번역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었을 스키타 겐바꾸의 탁월한 식견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에 감탄할 뿐이다. 잘못 알고 있는지 몰라도 당시 일본의 전통적 의학의 수준과 방향은 조선과 비슷했거나 오히려 학문적으로 열악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래를 추구했던 한 사람의 의사는 명치유신이라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엄청나게 공헌한 것이다. 뛰어난 식견을 갖고 있던 의사는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선각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사회에 공헌 한바가 크다.

지난 광복절에 KBS1 TV에서는 대한의사협회가 발행한 <열사가 된 의사들>이라는 책에 수록된 내용을 특별 방송으로 1시간에 걸쳐 방영했다. 의사로서, 지식인으로서 풍찬노숙과 형극의 길을 걸으며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셨던 애국지사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분들이 바로 의사이자 선각자로서 역사를 내다보신 우리의 표상이다.

사회는 혼란스럽고, 시대적 가치의 상충, 계층 간 사회적 욕구와 대립의 갈등, 그리고 의료계에 대한 폄하와 침탈 속에 의료계 내부의 격한 충돌로 우리는 갈피를 못 잡고 혼돈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정당하고 의연하게 의료를 통한 미래지향적 공헌에 매진해야겠지만, 동시에 지식인의 예지와 선각자의 혜안을 통해 국민을 위한 사회적 공헌을 깊게 성찰 할 때이다.

방향성이나 역사적 가치는 각자에 맡길 일이지만 손문(孫文)이나 체게바라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각자가 추구하는미래의 사회상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볼만하다.

의사는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의 병을 치료하지만 동시에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의 병도 치료해야 한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