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청진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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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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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난 아침.
아직도 지난 여름의 기운들이 여인들의 옷매무새를 장식하고 있는 거리에는 힘잃은 햇살이 거리의 나뭇잎위에서 술렁이고있다.

"저 나뭇잎들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겠지. 내가 꼭 저 빛바랜 낙엽같애."
언젠가 소리없이 혼잣말 처럼 하시던, 존경하던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지난 어느 낙엽이 지는 밤이었이었다.

까톡!!
하루를  마감하는 나에게 온 문자 메세지다.
'박선생, 답장이 늦었네. 삶이란게 별것 아니야. 건강 잘 챙겨야 해~~.'
그 전 해 크리스마스에 보낸, 오래 전 메세지에 대한 답이었다.

매사에 철두 철미하던 그 선배님은 그렇게 늦은 메세지를 보내시고는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 날수 없는 곳으로 영영 떠나 가버리신 것이다.

환자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에 존경받는 유명한 외과 의사이기도 하셨지만 문학에 대한 사랑도 특별했다.

수술하듯 그렇게 꼼꼼하고 사실적인 선배님의 표현 방식은 여자인 나보다도 더욱 섬세했으며 성의 불평등을 넘어선 그 자체였기에 항상 마음속 한 구석에 보이지 않는 자괴감마저 불러일으키면서 우리들을 감탄하게 하시곤 했다.

넓은 어깨와 멋진 경상도 사투리의 다정하던 그 목소리, 인자하시다못해 큰 오라버니처럼 우리를 감싸주시던 그 모습이 어느날 폐암이라는 나쁜 동거인이 생기고 부터는 점점 뵈는 횟수가 줄어 들었다.

기대고 싶던 큰 어깨와 넓은 가슴의 든든한 오라버니같던 뒷 모습은 다른 이의 모습으로 변형돼 갔고, 그 악마의 혓바닥 처럼 나쁜 동거인은 결국 주인을 쫓아 버리고는 집을 다 차지해 버렸다.
숨을 헐떡이며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아름다운 글들로 우리들을 감동시키시던 선배님.

첫눈이 내리고 군고구마가 그리운 날에도 따스한 커피 향기가 그리워도 이젠 찾아가 뵐 곳이 없다.
문학상을 받으면서 행복해 하시던 그 모습은 눈에 선한데, 아직도 책장에는 선배님이 주신 책들로 가득한데, 기억속에는 지워지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인데, 어디로 가셨는 지 아는 분이 아무도 없다.

병이란게, 암이란게 이렇게 지독하게 사람을 결별시키고 사람들에게 가슴앓이를 시키는 지를 의사인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언젠가 응급실 앞에서 어떤 여인이 울면서 우측으로 달려갔다가 되돌아서더니 좌측으로 맨발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꺼억 꺼어억~~."

그녀는 슬픔을 참지못해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두고 떠난 급성 백혈병 외동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어머니, 진정하세요…"하며 잡던 그녀의 손톱과 손은 온통 그녀의 가슴처럼 피멍이 들어 있었다.
의사로서의 삶이 보람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 되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수많은 밤 가슴앓이를 남몰래 해왔다.

의학서적을 읽고 또 읽고, 모든 문헌이 있는 곳을 뒤져 보지만 속수무책인 환자들 앞에서 기도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기운이 빠져나감을 느낄때마다 절규하듯 신에게 외쳤다. 
"신이여, 제가 의사로서 온 정성을 다할 때 함께 하여 주소서."

인명은 재천이라며 혼자 웃으시던 그 선배의 자포자기 같던 조용한 미소가 아직도 나의 뇌릿속에 존재하는 까닭일까….

하루에도 몇번씩 나는 그런 비슷한 기도를 하며 진료를 한다.
얼마전 이대 목동 소아과 병동에서 일어난 파문을 보면서 법정까지 선 의사들을 보면서, 나는 세상사람들이, 환자들이, 보호자들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우리 의사들의 간절한 기도를 가슴으로 들어 주기를 바래본다.

수명이 가장 길어야할 의료진의 수명이 스트레스많은 기자 다음으로 짧다는 통계학적 보고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나역시 맑고 푸른 하늘을 본 기억이 가물거린다.

"박선생, 건강 잘챙겨야해!"
절규같던 메세지가 갑자기 뇌리를 어지럽힌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즐겨 부러시던 노래가 있었다.

"인생도 한번 가면 다시못오고 뜬세상 남는 것은 청산뿐이라…."
힘들때면 꿈에 나타나시는 어머니가 평소하시던  말씀이있다. 내게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시던 말씀이다.

"예쁘고 좋은 것만 입고 널 위해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해. 여행도 다니고 좋은 것도 보고 살아야 해." 
"의사의 얼굴이 꾀재재해서야 되겠니? 화장도 이쁘게 하고 살아. 네가 항상 젊은 게 아냐, 삶도 잠시란다∼."

그래. 이제 나도, 우리 의사들도 자신의 건강을 챙겨야 할 때인가 보다.
우리들에게 이 가을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들의 메세지를 나누고 싶다.
한 번 뿐인 삶이기에, 누구에게나 하나 뿐인 생명들이기에. 

그러니까 우리는 또 더욱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야 함을 느낀다.
가을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들의 메세지가 헛되지 않도록 조용히 두 눈을 을 감고 조금전 심장 마비가왔다는 환자의 소생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박 선생∼" 다정하게 부르시던 그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이제 겨울이 오고 가고 또 새 봄이 오면 다시 예쁜 봄꽃들이 피어나겠지만….
춘래불사춘. 

그 분들이 계시지 않는 봄은 봄이 와도 정녕 아름다운 봄으로는 올 수 없을 것 같다.


열심히 혼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던 선배님. 저도 선배님 처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이 가을 이 가기 전 멋진 인품을 가진 의사로 다시 태어나서 훌륭한 선배님의 부끄럽지 않은 후배로 살아가겠습니다.

가신 곳이 너무 멀어 뵐 수는 없지만, 고통이 없는 그 곳에서 이젠 평화롭게 좀  휴식도 취하시길 빕니다.
"Rest in peace!"

선배님 말씀처럼 좀 더 많이 사랑하면서, 좀 더 많이 사랑을 나누고, 좀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선배님은 가셨지만 아직도 우리 후배들은 선배님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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