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살러 가니껴
저녁을 향해 그는 매일 리어카를 끈다. 그곳에 다다르면 포장마차를 꾸리고, 다시 아침을 향해 낡은 바퀴를 덜커덩덜커덩 밤새도록 끌어야 한다. 어묵 냄비를 끓이며 플라스틱 의자에 심어져 꼼짝 못하는 그는, 요즈음 이가 다 빠져 합죽이다. 이내 집을 향하지 못하는 술꾼들이 마지막 들려 내뱉는 온갖 오물들을 다 뒤집어쓰며 밤새 그가 파는 소주는 도대체 몇 병이나 되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저녁에 도착해 어묵을 꿰며 퇴근하는 나에게 싱거운 인사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자세가 성자를 닮아 보일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고단에 겨워 졸고 있기도 하는 그에겐, 정박아 아들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뚫고 묵묵히 아침에 도착해야 하는 그의 죄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쨌든 그에게 주어진 노역은 매일 저녁을 향해 리어카를 끌어야 하고, 다시 그곳에서 포장마차를 꾸려, 기어이 아침이란 곳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다.
경북 영주·김신경정신과의원장/한국의사시인회장/시집 <어떤 우울감의 정체> <세상은 내게 꼭 한 모금씩 모자란다> <역>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문집<어른들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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