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메세지의 메시지
청진기 메세지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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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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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밥 먹어라."
"여보, 식사하세요…."
"얘들아, 빨리 좀 식탁으로 모여라."

물론 기대하지 않는다. 전기 밥솥에는 3분 후 라는 메시지가 아직 떠 있고, 찌개도 좀 더 끓여야 하고, 준비해 둔 생선은 아직 후라이팬에 올려 놓지도 않았다.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야 하고, 삶아 둔 콩나물과 시금치도 양념을 해야 한다. 하지만 10분 전 미리 알람을 울리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래야 겨우 음식이 좀 따뜻할 때 저녁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식은 국과 반찬을 다시 한번 데우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주말이나 돼야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인데 가장 맛있을 때 곧바로 식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양, 아무런 미동도 대꾸도 없다. 정말 소리가 안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다 정말 누구라도 금방 알아 듣고, 냉큼 식탁에 와서 밥을 달라고 하면 오히려 큰 일이다.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릴 처지이지만 다행히 아직 한번도 들킨 적은 없다. 어차피 다들 시간이 좀 지나 배가 고프면 그제야 슬금슬금 식탁에 등장할 것이다.
이랬던 아이들이 자기가 원했던 말을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들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지난 주에 방학 숙제 다 끝내면 상 준다고 약속 한 거 얼른 주세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에요." 

어쩌면 그렇게 귀도 밝고 기억력도 좋은지, 조그맣게 한 말 한 마디를 절대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밥 먹으라는 말에 이런 즉각 반응을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또 혼자 중얼거린다.

출근 길을 나서면서 기분 좋게 얼굴에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정말로 더운 여름이 끝나고 있나 보다. 지난 무더운 여름 날씨는 부종이라는 증상을 계속 가지는 환자들에는 최악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위였는데, 팔다리에 두툼한 압박 스타킹을 신으면 피부에 습진에 짓물러서 물집이 생긴다. 

아무리 열심히 관리해도 도리어 점점 더 붓는 것 같다고 실망하며 외래에 내원한 환자들에게 다른 분들도 다 그랬다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아주 가끔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처음 만나 말씀드렸던 요령들을 악착같이 지키고는 '선생님 말대로 했더니 좋아졌어요'라고 신나서 오시는 분들을 보면 오히려 신기하다. 이상해서 다시 되 묻는다. 어떤 말이 기억이 나셨어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인간은 어떤 종류의 메시지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주의력을 집중 시킨다고 한다. 

우치다 선생님이 쓴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책에서는 이를 '메타 메시지'라는 용어로 소개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전해지는 메시지, 언어의 내용과 컨텐츠의 중요도와 시급성과는 별도로 기억이 나고 전해지는 본성을 갖고 있는 메시지, 갓난 아기가 내용은 이해할 수 없어도 엄마의 음성을 알아듣고 방긋 웃게 만드는 언어가 바로 메타 메시지이다. 

이 메타 메시지의 가장 본질적인 양태는 이것이 수신자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좋은 건강 정보와 의학 지식들이 남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앞으로 온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실감나지 않더라도 귀를 기울여 경청하게 된다. 이해해보려 시도하게 된다고 한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오늘 만나게 될 83명의 환자들에게 똑 같은 말을 앵무새가 되어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언어들을 내뱉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바로 나'를 위한 메시지로 전해지는 언어를 만들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전하고 싶다'는 발언자의 절박함이 '바로 너'라는 수신자에게 전해질 때 비로소 그 언어는 살아 남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어로 찾아보면,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틀어보면 수많은 지식과 언어로 만들어진 의학지식과 건강 상식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각종 데이터들은 나름의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만들 것이고, 개별화된 맞춤형 건강 관리가 디지털을 통해 스마트하게 관리될 세상이 올 것이다. 

최신 의학 지식으로 그 때 그 때 업데이트한 정보가 자신의 유전자에 맞춘 적절한 지식으로 각자에게 제공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더 이상 북적거리는 외래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굳이 인위적으로 어색하게 의사를 만나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 다가올 미래가 왠지 미덥지 않은 것은 왜일까? 나에게는 오늘 하루 만나는 환자들에게 말하는 그 많은 언어들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일까? 절박함과 지향점이 없는 메시지가 판을 치게 될 미래가 걱정스러운 것일까? 어제 알고 지내던 선배가 갑작스레 건네 준 버나드 라운의 <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을 내려다본다. 

우리가 잃어 버린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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