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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집행부, 독립운동가 의사 오복원 열사 참배
의협 집행부, 독립운동가 의사 오복원 열사 참배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8.08.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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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의사들 독립운동, 후배 의사들 크나큰 자긍심"
사료 부족해 독립유공자 미지정…정당한 업적 평가 필요
대한의사협회 제40대 집행부가 15일 오복원(吳復元) 의사(醫師·義士)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 제40대 집행부가 15일 오복원 의사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 제40대 집행부가 광복절인 15일 오복원(吳復元) 의사(醫師·義士)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숭고한 정신에 대해 예우를 표했다. 묘소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58에 위치하고 있다.

오복원 열사는 1886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출생, 13살까지 한문을 배우다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홀로 상경, 독학으로 1906년 당시 최고 학부인 대한의원 부속의학교(경성의전)에 입학했다.

1909년 12월 독립운동가 이재명을 비롯해 김용문(대한의원 부속의학교 학생)·김정익·조창호·이동수·김병록·박태은 등과 총리대신 이완용과 친일단체 일진회의 이용구 등 을사오적 척살을 위한 경성모임에 참여했다. 

이재명 열사는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여한 이완용에게 칼을 들어 단죄를 시도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재명은 사형을 선고받아 1910년 9월 30일 23세의 나이에 순국했다. 을사오적 척살모의 사건에 가담함 혐의로 오복원 열사는 징역 10년형을, 김용문 열사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석방 이후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한 채 충북 보은 속리산 인근에서 지역 청년들에게 천도교와 민족정기를 전파하다 1959년 1월 15일 타계했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했다. 속리산면 삼가리에 그를 기리는 '구장오공복원기념비'가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참배를 마친 후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선배 의사들의 독립 운동사에 대해 조사했다. 단일 직역에서 이토록 많은 분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며 "선배 의사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독립과 대한민국 건국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후배 의사로서 크나큰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독립유공자로 정당한 평가를 받은 분들이 계시지만 아직 사료의 부족으로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않은 분들이 상당히 많다"며 "우리 후세들이 앞으로 더 많은 사료 연구와 조사를 통해 그분들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숭고한 정신들을 이어 나가고 예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배에는 최대집 회장을 비롯해 박홍준 부회장, 방상혁 상근부회장, 정성균 기획이사 겸 대변인, 장인성 재무이사, 변형규 보험이사, 홍순원 대외협력이사, 김태호 특임이사, 강태경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김지훈 대외협력자문위원 등이 참석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58에 위치한 오복원 의사의 묘소 ⓒ의협신문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58에 위치한 오복원 의사의 묘소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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