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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주의' 무더위 극복 공포특집 <병원가 괴담>
'소름주의' 무더위 극복 공포특집 <병원가 괴담>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8.08.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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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B종합병원 판독실 괴담
낮에도 가길 꺼린다 '서울대병원 외곽 보일러실'
3월 개봉한 영화 '곤지암'은 실제 폐쇄된 정신병원을 둘러싼 괴담을 소재로 해 260만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 (주)쇼박스) ⓒ의협신문
3월 개봉한 영화 '곤지암'은 실제 폐쇄된 정신병원을 둘러싼 괴담을 소재로 해 260만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 (주)쇼박스) ⓒ의협신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공포특집', '납량특선' 등의 수식어가 붙은 드라마·영화들이 모든 방송사를 점령했다. '공포'는 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는 소소한 피서였다.

'병원'은 '학교'와 쌍벽을 이루는 공포물의 단골 소재다. 3월 개봉한 영화 '곤지암' 역시 실제 폐쇄된 정신병원을 둘러싼 괴담을 소재로 해 26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역사적인 무더위를 맞이해 본지에서 병원가에 떠도는 공포스러운 이야기·괴담들을 모아봤다.

ⓒ의협신문
[사진=pixabay]

호스피스 병동 괴담

A간호사는 "10년 전 근무하던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이야기"라며 한 가지 괴담을 들려줬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말기 암 환자 등 종말 치료를 하기 위한 호스피스병동을 두는 병원들이 있다. 문제의 병원도 그런 병원 중 하나였다. 비교적 개방된 병원으로 종교단체 등 자원봉사자들에게 말기 환자들의 수발과 정리 도움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크리스트계 종교단체라며 자원봉사자 10명이 병원을 찾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친절하고, 다른 자원봉사자에 비해 의학적 지식도 갖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환영하며 말기 암 환자 관리와 수발까지 부탁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환자들도 감화됐는지 그들이 온 후 표정부터 생기가 돌았다. "삶의 평화를 얻었다"며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점 더 의지했다.

몇몇 병원 직원들은 정신적으로 힘든 환자들에게 너무 종교에 빠지게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 우려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종교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고, 생존율이 희박한 환자들이었기에 삶의 마지막을 종교와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 밤.

20명 정도의 환자들이 일제히 같은 병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벽에는 "우리들은 예수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고 쓰여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자원봉사자라며 찾아온 이들의 실체는 사이비 종교단체인 '자살교단'. 이 병원은 피해자가 그나마 적었고, 심한 곳에서는 환자 전원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이 병원은 현재 폐쇄된 상태로, 환자들의 집단 자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만 회자되고 있다.

ⓒ의협신문
[사진=pixabay]


B종합병원 판독실 괴담

C의사는 현재 B종합병원의 영상의학과 전문의다. "나는 인턴 때부터 B종합병원에서 근무했다. 이 병원의 판독실은 의료진들 사이에서 귀신이 나오기로 유명한 장소였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괴담은 B병원 부근이 공동묘지였는데 그 원혼들이 판독실에 가끔 보인다는 것이었다.

판독실은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진단을 해야하기때문에 빛이 모두 차단돼 있다. 어둡다 보니 생긴 헛소문이라고 생각한 C의사는 괴담들을 모두 무시한 채 지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10년이 흘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괴담들은 모두 헛소문이라며 판독실을 꺼리는 이들을 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들어온 D전공의가 판독실에서 기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D전공의는 새벽 2시 판독을 하기 위해 혼자 판독실에 들어갔다. 잠이 쏟아지자 판독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다. 단잠을 자던 D전공의는 어느 순간 너무 갑갑하다고 느꼈다.

나를 짓누르는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레 눈을 떴다. D전공의는 온몸이 쭈뼛 섰다.

검정 옷을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D전공의는 그대로 기절했다고 한다.

C의사를 포함한 다른 의사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듣고 판독실에 절대 혼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대공사로 인해 판독실을 다른 곳으로 옮겼고, 괴담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 D전공의가 겪은 일은 아직도 계속 전해지고 있다.

ⓒ의협신문
[사진=pixabay]


산 채로 환자 묻어버린 서울대병원 석탄저장소

괴담이 아닌 실제 벌어진 역사적 사실 때문에 직원들이 꺼리는 장소도 있다.

서울대병원에는 현충탑이 있다. '이름 모를 자유 전사의 비'다.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학살당한 환자, 병간호 및 위문 가족, 군인, 의사, 간호사 등 약 1000여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63년 건립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전선 곳곳에서 치명상을 입은 국군 부상병들은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서울시내 병원에 분산, 치료를 받았다.

전쟁 3일 만에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밀고 내려왔다. 걷을 수 있는 사람들은 피난길에 나섰지만 국군 부상자와 의료진 그리고 일반 환자들과 간병을 위해 병원에 남은 가족들은 발이 묶였다.

6월 28일 아침, 북한군이 서울대병원에 들이닥쳤다. 병원 경비를 위해 남아있던 국군 보병 1개 소대와 움직일 수 있는 전상병 80여명이 응전했으나 대부분 전사했다.

저항하는 국군을 전멸시킨 북한군은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병원을 둘러쌌다. 병원 안에는 오갈 데 없는 부상병과 의료진, 일반환자와 가족들이 공포에 떨었다.

병원을 포위한 북한군은 국군을 응징한다며 부상병들을 침대 밖으로 끌어내 구석으로 몰아넣고 한꺼번에 총을 쐈다. 북한군은 일반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정신병동까지 들이닥쳐 이들도 학살했다.  병원에 남아있던 환자의 가족들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북한군은 부상 당한 환자들을 끌어내 석탄저장소에 눕힌 뒤 그 위에 5미터 가량의 석탄더미를 퍼붓기도 했다. 석탄의 무게에 짓눌려 하나 둘 숨이 끊어졌다.

역사의 아픔이 담긴 석탄저장소는 낮에도 직원들이 가길 꺼릴 만큼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안실 쪽 언덕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학살을 당한 시체들을 20일 동안 방치하자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병원 앞 창경궁 길에다 시체를 쌓은 뒤 기름을 붓고 불로 태웠다. "불에 탄 시체들은 돌돌 말려 꼭 콜타르처럼 되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과 의생명연구원 빌딩 사이에 위치한 현충탑(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의협신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과 의생명연구원 빌딩 사이에 위치한 현충탑(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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