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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규제 때문에 허리가 휘는 개원가 (2)
규제 때문에 허리가 휘는 개원가 (2)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8.07.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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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기준 강화·스프링클러 설치까지…병원 문닫을 판
강화되는 수술실 기준 충족 병원 20% 불과해 정부 지원 늘여야
입원실 있는 의원급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대표적 탁상행정"

불볓 더위가 기승하고 있는 여름. 개원가는 정부의 각종 규제때문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수술실 기준 강화에 이어 감염관리담당자를 두어야 하고, 스프링클러 설치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의 53%가 임대임을 고려했을 때 이같은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허리가 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병원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초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으로 일차의원의 수술실을 폐쇄하려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것 까지 생각하면 동네의원 경영은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외과계 의원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규제는 ▲수술실 기준 강화 ▲감염관리담당자 지정 및 교육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등이다.

수술실 기준 강화…기준 맞추려다 폐업할 지경
먼저 수술실 기준 강화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5월 29일 전신마취를 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술실 설치 및 응급의료장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의료기관 수술 환자의 안전을 강화한다는 것이 배경이 됐다.

시행규칙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우선 외과계 진료과목을 설치하고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모든 수술실을 서로 격벽으로 구분하고, 각 수술실 내에는 하나의 수술대를 설치하도록 시설기준이 강화됐다.

또 수술 중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수술실에 기도 내 삽관유지장치, 인공호흡기, 마취환자의 호흡감시장치, 심전도 모니터 장치, 정전 시 예비전원설비 장치(축전지 또는 발전기)를 반드시 보유하도록 했다.

이 시행규칙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6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다만 수술실 공기정화설비는 수술단계(고위험도, 중증도, 기타수술)로 적합한 시설을 갖춰야 하고, 기존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시행일이 6개월 간 유예됐다.

만약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시정명령을 받고, 시정명령을 위반하면 개설허가 취소 등 벌금 500만 원 이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대해 외과계 개원가는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기준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대영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외과계 개원가의 경우 환기시설을 만족시키는 수술실은 기준 충족률이 20% 밖에 되지 않는다"며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갑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는 한 토론회에서 "현재 수술실 기준은 병원급에서도 80% 밖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의원급에 적용하면 충족률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감염 예방을 위해 수술실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좋지만 시설을 강화화는데 들어가는 모든 재원을 의료기관에만 떠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수가를 적절하게 보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과계 의원을 더 화나게 한 것은 지난해 11월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에서 정부가 의원급 의료기관 일반병상 폐쇄에 대한 내용이었다. 일반병상 폐쇄는 의원급에서 수술을 그만하라는 의미이기 때문.

이에 9개 외과계 의사회가 협의체(외과의사회협의체)를 만들어 정부의 의료잔달체계 권고안 초안에 포함된 일반병상 폐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김대영 의무이사는 "정형외과를 기준으로 수술실 기준을 변경했을 때 최소한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계산이 됐다"며 "이에 대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대구광역시의사회 총무이사는 "현재 의원급 수술실의 경우 살균은 할 수 있지만 공조를 해서 공기 유입을 하려면 건물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술로 경영하는 입원실을 운영하는 의원이나 중소병원은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에다가 유지비가(필터교환)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재의 수술수가로는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

ⓒ의협신문
일러스트 / 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병상 이격거리 1.5m 맞추면 중소병원→의원급 추락 예상
병상 이격거리도 문제가 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는 의료 환경 개선 및 감염예방을 위해 국가 방역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2015년 9월)하고 의료법상 시설기준 강화로 병상간 거리를 1.5m(기존시설은 2018년 12월 31일까지 1.0m) 이상 확보하도록 했다.

이런 기준은 적용하게 되면 병상거리 적용 시 의료법상 병원급이 29병상 이하의 의원급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즉, 입원시설 기준이 30명 이상에서 29명 이하로 변경되면 건축법상에 의한 용도별 건축물의 종류가 의료시설(병원)에서 제1종 근린생활시설(의원)로 변경해야 한다.

건물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로의 용도변경이 요구되는데, 건축법상의 기준이 변경돼 근린생황시설의 허가가 불가능한 곳이 다수 발생할 수도 있다.

김대영 의협 의무이사는 "특수의료장비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의해 기존 허가된 MRI, CT의 설치허가(200병상 이상)가 취소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메르스 사태 이후 병상 간격도 1.5m로 늘려야 하는데, 중소병원의 경우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다보면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건축법상 근린생활시설 허가가 나지 않으면 중소병원은 의원급으로 용도변경도 안 되고 결국에는 병원을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시설 기준 등의 강화 정책도 부담이지만 인력 기준 강화도 부담
수술실 기준 강화 및 병상 이격거리 강화 등 시설 중심의 기준 강화도 부담이지만, 의료기관 내 인력에 대한 기준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정부가 의원급 의료기관을 포함해 모든 의료기관에 감염관리담당자 지정을 의무화하는 '의료관련 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도 개원가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종합대책 내용은 의원급 의료기관에까지 감염관리 담당자를 지정하고 교육을 의무화하고, 의료기관에 대한 점검 및 실태조사, 행정처분 등 추가 행정업무나 처벌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대한 감염관리 수가 및 재료대, 인력지원, 행정지원에 대해서는 대책방안이 추상적이고 불확실하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영세한 의원급 현실을 무시한 책임회피성 대책일 뿐이고,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협은 보건복지부의 대책은 전문가의 지적을 무시한 채 규제만 강화한 관치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이고 의료기관의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 준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적극 공감하고 있고, 국민과 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의료기관 감염예방 및 안전활동에 만전을 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최근 발생한 일련의 감염관련 이슈에서 의료기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종합대책을 만드는데 함께 노력했지만, 정부는 의료계의 제안을 댑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현재에도 각종 규제와 낮은 수가, 인력난으로 고통받는 의료기관에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나아가 규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일선 의료기관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감염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정성균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보건복지부에서 감염예방 TF 회의 시 감염관리의 최일선에 있는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종합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아무 협의 없이 발표해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염의 관리는 국민의 이동과 격리의 책임이 국가에 있는 방역과 같이, 국가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피링클러 설치 의무…의원급 입원실 포기하라는 건가?
의료 관련 법안뿐만 아니라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소방시설법도 의료기관을 옥죄고 있다.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때문에 개원가의 속은 또 한번 뒤집어질 판이다.

지난 6월 27일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입법예고 내용을 보면, 거동불편 환자 등이 이용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입원실이 30병상 이상 있는 병원) 및 입원실이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스프링클러설비 등의 소방시설등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설치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또 설치의무 관련 임대인과 임차인간 분쟁이 생길 수 있고, 입점 기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의협은 "개설 당시의 시설설비 상태를 허가해 놓고 이제 와서 소급적용해 예외 없이 입원실을 보유한 모든 병·의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라고 하면 영세한 의원과 중소병원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1주일 이상 병원을 폐쇄해야 하는데,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현재 통원치료를 받고 있거나 입원하고 있는 환자에게도 극심한 불편함과 질병 악화 등 건강상 피해가 유발될 수 있으며, 환자와의 신뢰가 떨어지는 의료기관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스프링클러는 단순히 의료기기와 같이 단독물품을 설치하는 수준이 아니라 수압계, 배관, 비상전원, 배수구, 나아가 물탱크 등 건물 차원의 공사가 수반돼야 할 사항"이라며 "이를 임차인인 의료기관의 의무로 돌린다면 임대인 또는 건물주와의 마찰뿐만 아니라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돌아갈 우려가 있고, 결국에는 병·의원을 폐쇄하거나 입원실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소방시설법 입법예고 당장 취소 ▲설치비용과 공사로 인한 진료공백에 따른 손해비용을 100% 정부에서 지원하고 설치에 따른 행정절차 대안을 마련 ▲타 업종에도 이와 유사한 소방시설법을 소급적용해 임대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까지 시행한 사례가 있었는지 여부와 그 피해보상에 대한 판례를 공개하라고 소방청에 요구했다.

이상호 대구광역시의사회 총무이사는 "만약 이러한 규제(수술실이나 스프링클러)가 강행 된다면 의원이나 중소병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폐업하거나, 적발 될 때까지 하다가 폐업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또 "이런 시설이 모두 갖춰진 건물로 병원을 이전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이 입원실 있는 의원을 없애려는 쪽으로 계속 추진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의료기관은 견딜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다보면 경영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개원가는 이제 수난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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