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19 11:25 (화)
의학과 한의학
의학과 한의학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8.07.13 11:06
  • 댓글 1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의학은 한의학일 뿐, 의학이 아니다'

 

정지태 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소아과학교실)
정지태 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소아과학교실)

몇 해째 한의사의 현대의료기 사용 논쟁이 뜨겁다. 또 한의학의 과학화 주장도 십수 년째 지속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말로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시간과 세금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법조계의 무지가 가세했고, 정부의 우유부단함이 결론을 유보하며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치고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한의학계에서 입만 벌리면 튀어나오는 소리인 '양의학'이란 말은 없다.

다만 그들이 의학이 양의학과 한의학으로 구분돼 있고, 한의학도 의학의 한 영역인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은 의학이고, 한의학은 한의학일 뿐이며 서로 뿌리가 확연히 다른 학문이다. 과학을 '양 과학'과 '한 과학'으로 구분해 이야기하려는 것과 똑같이 엉뚱한 발상이다. 과학이 하나이듯 과학으로서의 의학도 하나일 뿐이다.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가장 핵심요소는 어떤 결과에 대한 수학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통계적 유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랜 경험의 결과가 그렇다고 하는 것은 현대과학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정반대편의 길을 가는 일이다.

한때 화제가 됐던 '유발 하라리'가 쓴 책 <사피엔스>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 과학은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용기- '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 차지- 무지를 인정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다. 그 수단은 관찰을 수집한 뒤, 수학적 도구로 그 관찰을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 새 힘의 획득- 현대 과학은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론을 사용해서 새 힘을 획득하고자 하며, 특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한의학은 오랜 전통적 지식을 과학으로 풀어보려고 한다고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현재까지 알고 있는 많은 지식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밀한 관찰을 통해 근거를 만들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자동차를 정비하는 기술을 비행기 정비하는 기술로 응용하는 연구는 진행할 수 있지만, 이를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용해도 안전하고 유효하다는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해봤는데 별문제 없이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직접 봤다는 경험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황제내경에 그렇게 돼 있다. 동의보감이 이렇게 가르친다"는 전통적 지식이지 현대 과학지식이 아니다.

전통적 지식이 시대착오적이라든지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의학을 과학화하고자 한다면 현대 과학의 기본자세를 바탕으로 과학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락이 해부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그것이 틀린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전통적 지식일 뿐 현대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혼의 유무를 현대 과학의 힘으로 증명하지 못하지만, 내세가 있음을 현대 과학은 증명하지 못하지만, 인류는 종교를 부정하거나 과학화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한의학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도 증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나는 이 글을 통해 전통적 지식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의학은 한의학일 뿐, 의학이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의학이 한의학보다 우월한 학문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학문이라는 것이고, 각기 자기의 영역에서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 우리 의학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 1910년 Flexner 보고서 이후 미국 의학이 과학 영역으로 들어가 모든 면에서 근거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에게서 아니 생명현상에서 과학화 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을 나눴다. 몸과 마음을 분리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과학은 몸에 집중했고 이제 와서 그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의학에 인문학을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의학은 과거를 증명하려는 학문이 아니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학문이다.

한의학도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 가면서 미래를 향한 학문이 되기를 바란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내 손에 쥔 것을 다 버리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 떡도 먹고 남의 떡도 빼앗아 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더욱더 비윤리적 행위인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