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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료인 55% "생명 위협 느껴"
응급실 의료인 55% "생명 위협 느껴"
  • 최원석 기자 cws07@doctorsnews.co.kr
  • 승인 2018.07.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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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응급의학회 설문조사 "폭행 당했다" 62% 응답
11일 공청회 참석자들 "경찰 폭력 대응 문제 많다"
이형민 고려의대 교수가 응급의학회  '현장의 소리, 응급실 폭행' 긴급 공청회에서 응급의료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의 중간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의협신문
이형민 고려의대 교수가 응급의학회 '현장의 소리, 응급실 폭행' 긴급 공청회에서 응급의료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의 중간결과를 공개했다. 응급실 종사자의 62%가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의협신문

응급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선 응급실 의료진들의 절반 이상이 근무 중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응급의학회는 11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현장의 소리, 응급실 폭행' 주제 긴급 공청회에서 전국 응급의료센터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설문조사 중간결과를 공개했다. 

 최근 전북 익산 모 병원 응급실에서 벌어진 진료의사 폭행 사건을 계기로 열린 이날 공청회는 응급의료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이형민 고려의대 교수(고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는 지난 6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설문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현재까지 설문조사에는 전문의 514명, 전공의 375명, 간호사 632명, 응급구조사 119명 등 1640명이 참여했다.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55%는 "근무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응급실 근무자의 97%가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달에 1∼2회 폭언을 당했다는 응답(389명)이 가장 많았으며, 1주에 1∼2회라는 응답(370명)이 뒤를 이었다. 146명은 하루에 1∼2회 폭언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62%에 달했다. 폭행을 경험한 횟수는 1∼2회가 792명으로 가장 많았다. 폭행의 빈도는 1년에 10회 미만이 50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 달에 1∼2회가 396명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폭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응답은 40%, 폭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응답은 43%에 그쳤다.

폭언에 대한 의료기관 내 대응지침이 없다는 응답은 62%, 폭행에 대한 대응지침이 없다는 응답도 54%에 달했다.

응답자 중 893명(54%)은 응급실 폭력 사건이 벌어진 경우 경찰에 신고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은 신고해도 경찰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낮은 만족도는 경찰에 사건접수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공청회에서는 응급실 폭언·폭행 사건이 되풀이 되는 원인으로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엄중한 수사와 처벌 등 법률적 개선 방안은 물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에서부터 헬멧과 방탄 조끼를 착용하자는 기발한 의견도 나왔다.

"민원 아무리 넣어도 경찰 행태 변하지 않아"

이날 연자들과 공청회 참석자들은 폭력 상황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찰의 대응에 분통을 터트렸다.

김철 성가롤로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많은 응급실이 인근 지구대와 협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신고를 하더라도 15∼20분은 지나야 나타난다. 직원들에게 지구대에 신고하지 말고 경찰서에 직접 신고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출동하더라도 경찰은 응급실 내 폭력 에 적극적 개입 의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경찰이 응급실 내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보고 '선생님이 참으시죠'·'환자가 아프니까 저러겠지' 식으로 이야기 한다"고 밝힌 김 센터장은 "다른 환자를 위해 가해자를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해도 경찰은 응급실 내에서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법으로 응급실 CCTV는 녹음을 못 하게 돼 있다. 폭언이나 명예훼손 등을 이야기해도 증거가 없으니 화해하라고 한다"면서 "폭행을 당했을 때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찰이 더 밉다는 말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주취자 응급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A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센터에 상주하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여성 인턴의 턱이 돌아갈 정도로 폭행을 당하고, 보안요원이 뺨을 맞고 있는데도 '112에 신고하라'고 했다"면서 "경찰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B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C의료인은 "경찰이 현장에서 잘잘못을 가리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응급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소란을 진정시키는 일이 먼저"라면서 "잘못된 경찰의 진료현장 대응 체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D주취자 응급센터 소속인 E의사는 "우리 센터의 경우 제복 입은 경찰이 배치되면서 심한 폭행이 많이 줄었다"면서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갑질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모르핀 놔 달라' 10년 넘게 행패...응급실 간호사들 정신과 진료"

연자로 나선 표창해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은 "응급센터 내에 24시간 녹취기 사용을 허용해 빈번한 폭언이나 성희롱 문제라도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체적 폭력보다 폭언, 성희롱이 훨씬 많지만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응급실 CCTV로 녹음을 할 수 없다"고 밝힌 표 센터장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기소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 데 통신비밀보호법에 묶어 녹취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의협과 병협, 학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표 센터장은 "응급실 내 폭행사건이 벌어지면 의협에 소속된 변호사가 와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의협 차원에서 지원해 준다면 일선 회원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정책이사를 역임한 이성우 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응급의학과)는 "의료기관에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의협이나 병협이 나서서야 한다"면서 "의협, 병협, 학회가 응급실 폭력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갖고 나서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뿐 아니라 전공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이 참석해 의견을 전했다. 특히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F간호사는 "일주일에 세 번씩 찾아와 모르핀을 놓으라며 행패를 부리는 가해자가 있다. 10년이 넘었다"면서 "응급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모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현재 병원 명의로 고발한 상태다. 이미 경찰서에 간 것만 6번"이라고 밝혔다.

"병원 내 폭력 사건 대부분이 벌금형을 선고받는다고 하니 무섭다. 언제 응급실에 찾아와 보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한 F간호사는 "형량이 너무 적다"며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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