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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익산 응급실 폭행 피해 의사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단독 인터뷰]익산 응급실 폭행 피해 의사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8.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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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경찰 안일한 대응...의료진 폭력 사건 되풀이"
"죽여버리겠다" 살해 위협 환자 풀려나...피해 의사 "불안하다"
응급의학과 의사 L 씨의 피묻은 가운
응급의학과 의사 L씨의 피묻은 가운이 폭행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술 취한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L씨는 화가 났고 슬펐다.

전북 익산에 있는 2차병원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하던 L씨는 1일 오후 10시경  손가락이 골절된 환자  A씨에게 갑작스러운 폭행을 당했다.

L씨는 응급실 의사가 환자나 취객의 폭행 대상이 되는 상황에 화가 났다. 왜 응급실 의사가 이유 없이 맞아야 하고, 욕설을 들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응급실은 물론 진료실에서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할 경우 가중 처벌하는 법안이 의결됐지만, 경찰도 사회도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L씨를 폭행한 A씨는 경찰과 경비원이 출동한 상황에서도 협박과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내려앉은 코뼈와 경추 염좌, 뇌진탕, 타박상 등 육체적 고통보다 L씨를 더 괴롭힌 건 경찰의 안일한 대처였다.

경찰은 "감방에 들어가더라도 나와서 칼로 죽여 버리겠다"는 A씨의 협박을 취객의 객기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L씨는 2일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해져 신경외과 입원했다. L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넘어진 L씨를 수차례 발길질한 A씨는 간단한 조사만 받은 채 2일 풀려났다.

전북 익산에 있는 2차 병원에서 응급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L씨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다. 현재 신경외과에 입원, 안정을 취하고 있는 L씨를 전화통화와 문자로 인터뷰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L씨 일문일답>

폭행 직후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환자의 폭행으로 코뼈가 내려앉아 피를 흘리고 있는 L씨.

상태가 어떤가?
폭행을 당해 입은 외상보다 슬프고, 불안한 마음 탓에 내상이 더 크다.

왜 슬프고 불안한가?
환자를 위해 응급실에서 열심히 진료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왜 취객의 폭행 대상이 돼야 하나 생각했다. 응급실과 진료실 폭행이 하루하루 힘들게 진료하는 의사에게 실질적인 위험이 된 현실도 너무 슬프다.

A씨가 "'감빵'에 가더라도 나와서 죽여버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취객의 대수롭지 않은 말로 넘길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저는 너무나 불안하다. A씨가 풀려난 만큼 경찰이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나?
경찰이 출동한 이후에도 발로 걷어차고 "'깜빵' 다녀와서 죽여버릴 거야"라고 폭언과 욕설을 계속했다. 하지만 경찰은  말릴 뿐이었다.

담당 형사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럴 일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1일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1일 오후 10시경 수부 외상(골절)으로 A씨가 응급실을 내원했다. 담당 과장이 입원이 필요하지 않아 다음날 외래로 오면 된다고 했다. A씨는 술에 취한 채 "입원을 원한다.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안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환자의 X-ray 영상을 보고 있던 저는 그 억양에 소리 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때 A씨가 다가와 "너는 왜 웃냐? 내가 코미디언이냐?"고 시비를 걸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네요. 술 드셨어요? 술드시고 시비 걸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환자의 X-ray를 보고 있는데 A씨가 다시 오더니 이번에는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이름을 알려줬더니 적어서 달라고 했다. 요구를 거절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다가와 팔꿈치로 얼굴을 때렸다. 순간 의식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A씨는 넘어진 저를 발로 밟았다.

폭행당한 L 씨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피가 낭자하다.
환자에게 폭행당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L씨가 쓰러졌던 자리에 혈흔이 낭자하다.

살해위협을 받았다고 들었다.
경비가 왔는데도 욕을 하며 때리려고 했다.

증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동영상을 찍었다.

A씨는 응급실 진료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너는 나중에 죽여버릴 거야. 칼로 찔러서 죽여버릴 거야"라고 소리쳤다.

피해자 조사를 받을 예정으로 알고 있다.
오늘 조사받겠다고 했지만 담당 경찰이 4일 하겠다고 했다. A씨가 풀려난 만큼 추가적인 해를 입히지 않을까 불안하다. 하지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것이다.

저뿐 아니라 응급실 의료진은 항상 폭행의 위험 속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과 경찰의 안일한 대처로 이런 폭행 사건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보복할까 두렵지만, 응급실 의료진 폭력을 무겁게 처벌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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