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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가 자살예방 상담?…정신의학계 "무모한 사업"
약사가 자살예방 상담?…정신의학계 "무모한 사업"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8.06.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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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의학회·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공동 성명서 발표
"의사-환자관계 훼손하는 잘못된 시범사업 즉시 중단" 촉구
ⓒ의협신문
ⓒ의협신문

약국에서 노인 자살 예방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이후 대한의사협회의 강력한 비판에 이어 이번에는 학회 및 개원 의사들까지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약사회는 보건복지부의 '2018년도 민관자살 예방사업'에 지원해 오는 7월부터 약국 250여 곳이 참여하는 빈곤계층 중심 노인자살 예방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역 약국에서 약학정보원이 만든 소위 '자살위험약물'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환자 모니터링을 하고 자살위험약물을 복용하는 환자에게 자살위험을 알리며, 참여 활성화를 위해 협력 약국에 상담료 지급 등 인센티브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28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의사-환자 관계를 훼손하는 잘못된 시범사업을 즉시 중단할 것"을 주장했다.

두 단체는 "약사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주위에 있는 사람이 자살 경고증상이 있다면 바로 도움을 줘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히려 부적절한 개입은 반대로 올바른 치료를 방해할 수 있다"며 현재 보건복지부가 채택한 대한약사회 사업계획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두 단체는 언론 보도에서 약사회 정책위원장이 이번 약국 자살 예방사업을 '블루오션'이라고 표현하고 이에 대한 수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을 문제 삼았다.

두 단체는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약국에 상담료를 10회까지 지급해 약 1억 3000여만 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고 했는데, 약사회가 자살이라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진정성 없이 수익모델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발언"이라며 "약사회가 자살 예방에 동참하고 싶다면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자살 예방에 비전문가이자 비의료인인 약사가 상담료 비용의 책정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히 55만 게이트키퍼(공무원·교사·경찰·의료인 등)에 대한 모독이라는 이유 때문.

따라서 "자살 고위험군을 즉시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치료기관으로 연계하지 않고 10회까지 상담한다는 계획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어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환자 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잘못된 시범사업을 보건복지부가 직접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두 단체는 "선진국에서는 약사가 게이트키퍼 교육을 받고 자살 고위험군의 조기 경고증상을 발견한 뒤 환자에게 자살 예방 상담 전화, 치료기관 등 도움을 구할 정보를 알려주거나 주치의에게 연락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형태로 약사가 게이트키퍼로서 협력한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병·의원을 방문하고 처방을 받기 위해 약국을 방문한 환자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당신이 자살위험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알리고 동의를 받아 상담하겠다는 것은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저해할 수 있어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환자의 임상적 진단과 상태가 어떠하고, 어떤 목적으로 약물을 처방했는지 의사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약사가 단순히 자살위험을 알린다는 것은 의사-환자 관계를 해치고 환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의료인이 어떤 협력적 의사소통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13년간 OECD 1위였던 높은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근거기반의 자살 예방정책은 반드시 정책적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도 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현재 자살 예방을 위해 정신건강의학 분야는 물론 관련된 여러 분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을 다해 진정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실천하고 있지만, 약사회의 시범사업은 자신들의 영역 확장에만 무게를 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정신건강, 특히 자살 문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자세히 대책을 세워 민관이 협력해 실천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라며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 관계만 훼손할 수 있는 무모한 시범사업을 즉시 철회할 것"을 엄중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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