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일상의 변주곡
청진기 일상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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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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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도도솔솔라라솔, 파파미미레레도.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옆집 아이 덕분에 오랜만에 듣게 되는 멜로디이다.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치네∼' 흥얼거리며 듣다가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을 다시 찾아 들어본다. 원래 곡의 제목은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C 장조>이었구나. 이전 기억을 더듬어본다. 

피아노를 연습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멋들어지고 웅장하게 마무리 짖는 마지막 부분을 제대로 쳐보고 싶었지만 정말 어려웠다. 사춘기 시절에는 갑자기 어둡게 단조로 바뀌어버린 8변주 부분이 울적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좋았다.

발랄함이 사라지고 느리게 아다지오로 흘러가는 11변주 부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나이가 들었나보다. 다시 들어보니 이전에 들었던 부분과 다른 변주가 이번에는 귀에 더 잘 들린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청중들 앞에서 아무 기교 없이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단순하기 짝이 없이 연주를 시작하는 부담감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테마 부분 연주가 좋아진다.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는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일출 시간은 5시 11분이다. 다음주가 되면 5시 13분이 된다. 항상 떠오르는 해 돋는 시간도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어제보다 하루 나이가 들어 조금 변해버린 낯선 몸으로 일어나 난 하루를 시작한다. 자동적으로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지고,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환자들을 보고 식사를 하는 일상에서 같은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조금씩 다른 변주곡을 연주하듯 살아가는 것이다.

퇴근 시간 사람들로 꽉찬 지하철을 타면 가끔 끊임 없이 카톡을 주고 받는 연인 사이의 대화창이 본의 아니게 보인다. 시시콜콜하고 별 것 아닌 일상이 그리도 알리고 싶고 누군가 궁금하게 들어주니 신이 나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의 일상의 멜로디를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변주해나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있겠지….

"요즘은 어떠세요?"
"에휴, 힘들죠…."
"어떤 게 힘드세요?"
"선생님은 모르실거에요. 등산하다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거든요.오른 팔 무리안가게 하려다 더 심하게 다쳐 버렸어요."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동안의 일상이 완전히 변화됐다. 손끝의 감각 하나 바뀌어도 단추 하나 잠그는 것이 달라진다. 질병은 신체 뿐이 아닌 그들의 활동과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달라진 감각으로 새로운 태도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야 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어쩔 수 없이 변주곡을 연주해야만 한다.

막막한 일상을 하나씩 이야기하게 하고, 꾸밈음을 만들어주고, 엇박자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영감을 받아 용감하게 변주곡을 다시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평평한 돌조각 같았던 일상의 진부하고 칙칙했던 일상 대화의 주제들이 부조 조각처럼 파이고 높아지면서 주름이 생기고, 모든 구석구석이 생기를 띠게 만드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한 주제 위에 몸을 깊숙이 숙여 그늘을 마련해주고 보호해준 덕분이라고 벤야민은 설명한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아픔을 설명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환자의 일상에 다시 생기가 돌았으면 좋겠다.
'숙명의 책'이 되려면 오로지 나만이 다른 사람들이 아직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책을 만났다는 서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변화된 몸을 갖고 새롭게 하루를 살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그런 서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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