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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받다가 식물인간...' 의료진100%과실, 판결문 보니
'내시경 받다가 식물인간...' 의료진100%과실, 판결문 보니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8.06.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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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전문분야인 의료행위에 100% 과실 인정...이례적
의협, '의료진 사기저하·방어 진료 부추길 것'우려 표명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내시경에 의한 대장천공으로 인해 뇌사판정을 받은 한씨(66세)가 경기 소재 A의원 의사 2명과 서울 소재 종합병원 의사 1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대장내시경을 받는 도중에 천공이 발생하자 종합병원으로 전원, 치료를 받다가 허혈성 뇌손상을 입은 A씨와 가족이 B의원의 C봉직의사 및 D원장과 E종합병원 F봉직의사 및 G원장을 상대로 낸 8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 공동으로 3억 921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대장내시경 도중 천공이 발생, 종합병원으로 옮긴 환자가 치료 중에 허혈성 뇌손상으로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사건에서 1심 법원이 의원급과 종합병원급 의료진에게 공동 책임을 물은 판결을 내렸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대장내시경을 받는 도중에 천공이 발생하자 종합병원으로 전원, 치료를 받다가 허혈성 뇌손상을 입은 A씨와 가족이 B의원의 C봉직의사 및 D원장과 E종합병원 F봉직의사 및 G원장을 상대로 낸 8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 공동으로 3억 921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내년 9월부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A씨가 생존해 있는 동안 매월 개호비·치료비 등 395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판결이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침습적인 의료행위의 특성상 손해배상 책임을 일정 비율로 제한한 기존 판례와 달리,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구체적인 사건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B의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은 A씨는 대장천공 의심 하에 E종합병원 이송

대장내시경 검진을 받기 위해 A씨가 B의원을 찾은 것은 2014년 6월 16일 오전 11시 46분경. C봉직의사에게 대장내시경을 받던 A씨는 미다졸람 투여받았음에도 검사 도중 복통을 호소했다. D원장이 재삽입을 시도했으나 통증이 계속되자 진정효과를 해소하는 플루마제닐을 투여하고 12시 30분경 검사를 중단했다.

수면실로 옮긴 뒤에도 복통과 복부팽만 증상이 계속됐으며, 오후 1시 55분경 혈압이 90/60mmHg로 떨어졌다. 오후 2시 42분경 엑스레이 촬영 결과, 복강에서 유리공기 음영이 확인되고, 혈압이 회복되지 않자 D원장은 수액을 연결한 채 환자·보호자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E종합병원으로 향했다.

E종합병원 F봉직의사는 대장내시경을 통해 대장천공을 확인하고 클립 접합을 시도했으나 실패

오후 3시 18분경 E종합병원에 도착할 당시 A환자의 혈압은 110/70mmHg이었고, 맥박·호흡·체온은 정상범위였으나 통증점수는 10점으로 가장 극심한 상태였다.

E종합병원 의료진은 '대장천공 의증'으로 진단했으며, 오후 4시 44분경 F봉직의사가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했다. F봉직의사는 오후 4시 48분경 에스상 결장과 하행결장 접합부 추정 부위에 5cm 가량의 천공이 발견되자 클립으로 1차 접합을 시행했다. 하지만 2차 접합을 시도하자 A씨의 움직임이 심해졌고, 사지에 힘을 주며 통제를 할 수 없게 되자 내시경검사를 중단하기 위해 플로마제닐 0.5mg을 정맥주사했다. A씨의 얼굴이 심하게 붓고, 청색증 및 호흡곤란이 나타나자 검사를 즉시 중단했다.

심정지가 발생 직후 1, 2차 기관 내 삽관 연거퍼 실패...3차 만에 성공

E종합병원 의료진은 앰부배깅과 심장마사지를 시행했지만, 심정지가 발생했다. 이후 2차례에 걸쳐 기관 내 삽관을 시도했지만 연거퍼 실패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나선 끝에 3차 만에 기관 내 삽관에 성공했다.

중환자실로 옮긴 A씨에게 의료진은 혈관수축제를 투여하고, 패혈성 쇼크를 의심, 항생제를 투여했다. A씨의 경련이 심해지자 항경련제를 투여했으며, 다음날 발열 증세 및 백혈구 수치 증가가 관찰됐다. A씨는 대장천공 부위에 대장분절 절제술을 받았으며, 자가 호흡이 관찰돼 기관 내 삽관을 제거했다.

하지만 인지기능이 돌아오지 않았고, 뇌MRI 촬영 결과 저산소성 허혈성 뇌 손상이 확인됐다. 현재 A씨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반사적 행동만 가능한 식물인간 상태다.

원고측, 대장내시경 시행 천공한 B의원, 추가검사 및 클립시술한 E종합병원 의료진 상대 의료과실 주장

A씨의 가족은 최초 대장내시경을 시행한 B의원에 대해 ▲2차례 내시경 시행에 대한 기록을 누락한 점 ▲전원 시간에 대한 기록을 다르게 한 점 ▲대장천공을 유발한 점 ▲대장천공 의심 증상에도 환자를 방치한 점 ▲부적절한 처치를 한 점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긴급히 전원하지 않은 점을 들어 의료과실을 주장했다.

E종합병원 의료진에 대해서도 ▲즉시 응급수술을 하지 않은 점 ▲여러차례 기관 내 삽관에 실패해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한 점 등을 들어 의료과실을 주장했다.

재판부, 대장천공한 의료진 과실 추정...진료기록 부실기재 의사에게 불리하게 작용

재판부는 B의원 의료진에 대해 진단적 내시경의 경우 대장천공이 발생할 확률이 0.03~0.8%에 불과해 일방적인 합병증이라고 할 수 없는 점, A씨가 특별히 검사에 어려운 체질이라고 보기 어렵고 술기상 과실 외에 대장천공을 유발할 만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점, 평소 별다른 질환이 없었던 점을 들어 의료진의 과실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법에 규정돼 있는 진료기록 작성의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대법원 판례(97도2121 판결)를 인용한 재판부는 "의료인에게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도록 한 취지는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 가 환자의 상태와 치료의 경과에 대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기록해 이후 계속되는 환자치료에 이용하도록 함과 아울러 다른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적정한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며, 의료행위가 종료된 이후에는 의료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의료행위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료기록부 기재와 관련, 대법원은 "특정한 과실의 존부를 판단함에 있어 진료기록상 통상 기재되는 중요내용의 기재가 누락된 경우에는 의사에게 불리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판결(95다41079)을 통해 진료기록 누락이 의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재판부는 B의원 진료기록부에 E종합병원 전원 시각이 2014년 6월 16일 오후 2시 30분경으로 기재돼 있고, 엑스레이 촬영 시각은 오후 2시 42분경으로 차이가 나는 데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전원 출발 시각을 예상해 진료기록부에 기재한 것이라는 B의원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통상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진료기록부에 기재한 출발시각도 실제와 30분 가량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재판부는 "개인병원들이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면서 중요사항이나 특이사항이 있을 때만 진료 결과를 기재하고, 진료결과가 정상인 경우에는 기재를 소홀히 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 하더라도 통상적인 내시경검사 진행이 도저히 곤란해 중단한 적이 있는 이상, 적어도 그 이후부터는 특이사항의 발생 여부와 시점, 내시경 검사를 재차 시도한 사실과 방법 등은 구체적으로 기재돼야 한다"며 진료기록의 부실기재 문제를 짚었다.

추가 내시경 강행 쇼크상태 유발...응급처치상 과실 부인하기 어려워

재판부는 B의원 의료진의 의료상 과실뿐만 아니라 E종합병원 F봉직의사에 대해서도 숨 쉬기 힘들어하고, 자세 변경도 고통스러워 하는 A씨에게 별다른 조치없이 추가 내시경을 강행한 것도 쇼크상태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공동원인이 됐음을 뒷받침한다며 과실을 추정 또는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응급상황에서 15시 53분경 1차 기관내삽관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5시 55분경 2차 기관내삽관을 시행했으나 재실패했으며, 15시 52분경부터 16시 20분경까지 산소포화도가 60~70%에 머물렀던 것을 들어 앰부배깅 역시 적절한 산소공급원으로 작동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정상적인 성인의 경우 4~5분 이상 뇌에 산소공급이 차단되는 허혈상태가 지속되면 치명적이고 비가역적인 뇌손상이 발생하는데 A씨는 최소 20분 이상 산소 공급이 차단됐다"면서 "통계적으로 심폐소생술 후 생존하는 비율이 상당히 낮다 하더라도 심정지가 확인돼 즉시 심폐소생술이 시작됐고, 여러차례 기관내 삽관이 시도된 경우이므로 응급처치상의 과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E종합병원 F봉직의사의 추가 대장내시경검사 선택 또는 시행상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고, E종합병원은 사용자 책임을 부담한다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2007년 대법원 판례(2005다32999 판결)를 들어 "A씨는 기존 대장질환이나 기왕증이 없었고, 보통의 건강검진을 받다가 대장천공을 입었으며, E종합병원으로 전원해 추가검사를 받던 도중 쇼크를 일으켰고, 최종적으로 허혈성 뇌손상을 입었다"면서 "피고들의 과실비율이 각각 다르다 하더라도 공동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과실상계 또는 책임제한을 검토할 때는 피해자의 과실 내지 기왕증 등을 공동불법행위자 전원에 대한 과실로 전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법리까지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의 책임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 역시 의료행위 과정에서, 예견하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을 전문적 지식과 경험에 따라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진력하는 또 하나의 국민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해당 판결이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외면한 판결로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방어 진료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의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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