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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3대 심장수술·대장암수술 복합 진행…80세 환자 '새 생명'
3대 심장수술·대장암수술 복합 진행…80세 환자 '새 생명'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8.05.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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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궁치환술·대동맥판막치환술·삼중혈관 관상동맥우회술 후 대장암 제거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10년 전 고국 땅 밟은 고려인 치료 돕고 수술비 지원

A(80·남)씨는 2008년 정부의 고려인 귀화장려 정책으로 고향 땅을 밟는 기쁨을 누렸지만 질병의 고통까지 벗어날 수는 없었다. 2011년 위암수술, 2014년 담낭수술을 받은데 이어 최근 심장에 문제가 생겨 심장기능이 20%로 떨어진데다 대장암까지 발견됐다. 문제는 대장암 수술을 하기에는 그의 심장 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그의 심장은 문제가 없는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혈액을 내보내는 심장의 펌프기능을 측정하는 좌심실 구혈률이 20%까지 떨어져 있었고 심장초음파검사에서는 심각한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발견됐다. 고령인 환자가 심장기능이 약해져 있는 경우 관상동맥까지 막혔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역시 심장조영술 검사에서 삼중혈관이 막혀있는 관상동맥 협착증이 발견됐다. 또 대동맥의 심한 석회화로 우측무명지동맥 기시부와 좌측총경동맥 기시부가 약 95% 이상 협착돼 있었고, 좌쇄골하동맥은 완전 폐쇄돼 있었다. 대장암 수술을 할 경우 마취 과정에서 심장기능이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심장수술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환자의 심장병 진단명은 관상동맥이 막혀있는 대동맥 판막 협착증. 제 기능을 못 하는 대동맥판막을 교체하고 관상동맥우회술을 진행해야 했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았다. 치환술을 하기 위해서는 대동맥을 붙잡아 혈류를 멈추는 겸자를 해야 하지만 대동맥의 심한 석회화로 겸자를 하게 되면 혈관이 통째로 으깨질 수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저체온요법으로 몸 전체의 혈류를 순환정지시키는 것이었다.

동탄성심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 상태를 살펴 본 이재진 교수(흉부외과)는 보호자에게 복잡한 수술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심한 저체온요법으로 혈류를 순환정지 시킨 뒤 대동맥궁치환술과 대동맥판막치환술을 시행한 후 삼중혈관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해 심장의 혈류가 원활히 순환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흔히 3대 심장수술이라고 불리는 대동맥 교체, 판막 교체, 관상동맥우회술이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성공확률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80세 노인이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수술과정을 들은 가족들은 "이렇게 위험한 수술을 받을 수 없다"며 퇴원했지만 A씨의 흉통은 계속됐고 다시 병원에 오가기를 반복했다.

의료진은 A씨가 고통스런 삶을 살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결국 그와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수술을 받겠다"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수술 전 이재진 교수팀은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활한 수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 7월 13일 오전 수술에 들어가 체온을 20도까지 낮추는 저체온요법을 시행했다. 수술팀은 인공심폐기를 이용해 뇌로 가는 혈류만 유지하며 모든 혈류를 순환정지시켰다. 저체온요법은 자칫하면 환자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고, 세포들이 사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40분 안에 수술을 마쳐야 한다.

동탄성심병원이 심장 질환과 대장암이 동반된 80세 환자에게 대동맥궁치환술·대동맥판막치환술·삼중혈관 관상동맥우회술을 통해 심장기능을 회복시킨 후 대장암 수술까지 성공했다. ⓒ의협신문
동탄성심병원이 심장 질환과 대장암이 동반된 80세 환자에게 대동맥궁치환술·대동맥판막치환술·삼중혈관 관상동맥우회술을 통해 심장기능을 회복시킨 후 대장암 수술까지 성공했다. ⓒ의협신문

수술팀은 A씨의 3개의 대동맥궁 혈관 중 우측무명지동맥과 좌측총경동맥 2개의 혈관을 포함한 대동맥궁을 인조혈관으로 바꿔주는 부분대동맥궁치환술을 시행했다. 좌쇄골하동맥은 오랫동안 폐쇄돼 있어 수술시간 최소화를 위해 연결을 포기했다. 이후 천천히 체온을 올려주며 대동맥판막을 조직판막으로 바꿔주는 대동맥판막치환술이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미리 채취해 둔 양쪽 다리의 대복재정맥을 이용해 세군데 관상동맥에 연결하는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했다. 수술은 시작 11시간 반이 지난 오후 8시가 돼서야 끝났고 A씨 몸의 모든 혈류가 정상적으로 순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었다. 수술 전 20%에 불과했던 심장기능은 일주일 뒤 33%까지 호전됐고, 한 달 뒤에는 정상수준인 41%까지 회복되면서 대장암 수술이 가능해졌다.

대장암은 8월 18일 김종완 교수(외과)가 복강경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 수술 후 대장암 병기는 Ⅲ(3기)B로 항암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진단됐다. 9월부터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한 A씨는 총 12번의 항암치료를 모두 마쳤다.

항암치료 과정은 대장암 다학제팀이 맡았다. 다학제팀은 항암제 사용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정확한 항암제 사용으로 항암치료 후에도 환자의 심장기능은 정상수준인 43.7%로 유지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동탄성심병원 사회사업팀은 저소득층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치료비 마련이 어려웠던 그에게 의료비지원사업을 연계하여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다. 원내 사나래봉사단도 직원들의 급여 기부로 마련한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술 전 몸 곳곳에 마비가 와 다리를 질질 끌며 병원을 찾았던 A씨는 현재 자유롭게 식사와 걷기운동을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그는 "고통이 너무 심하고 치료 가능성도 낮아 보여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준 의료진과 치료비까지 지원해준 병원 관계자분들에게 깊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재진 교수는 "암을 동반한 고령의 심장질환자의 경우 어떤 수술을 먼저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라며 "A씨의 경우 대장암 수술만 받을 수 있었으나 심장기능이 너무 떨어져 심장수술을 먼저 시행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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