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대하여
내 나이를 닮은 늦은 가을 쌀쌀한 새벽녘
뒤척이는 아내의 머리 밑에 팔베개를 하고
왼손으로 가만히 그 가슴을 만져본다
약간은 쳐졌지만 그래도 여전한 황도복숭아
내 아이들을 키워내고 내 청춘을 감싸준 따스한 감촉
아직도 품어 나오는 젊음의 그 뜨거웠던 욕망
유년시절
회초리 맞아 흐느끼며 이불 속을 파고 들 때
슬며시 찾아든 할머니 가슴속
조물락 조물락
괘안타 괘안타 자고나면 다 괘안타
서럽고 서러운 마음 눈 녹듯 사라지던
그립고 그리운 황혼의 감은사 고저녁한 석탑 두 개
세상에 나오자 말자
가장 먼저 찾았을 나의 꿈 나의 신세계
입으로 들어올 때 얼마나 황홀했을까
뼈와 살을 녹여내고 피로서 맛을 더한
금자동아 은자동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엄마의 그 가슴은 그냥 말 못할 먹먹함이다
지금의 나는
무슨 가슴을 갖고 있을까
한 여자의 동반자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또 멀지 않는 미래
할아버지의 가슴은 어떠해야할까
나는 어떤 가슴으로 기억되어질까
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월간 시 see 추천 신인상 등단 시집 <착하고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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