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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청진기 스승님, 나의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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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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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어디선가 내 가슴을 찡하게 울려오는 이 노래.
어릴 적부터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노래는 해마다 오월이면 들려왔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나의 왼쪽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흉통과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하늘이 파란 5월은 빨간 카네이션 꽃이 가슴에 달릴 때처럼, 유난히도 스승의 은혜가 가슴에 와 닿는 달이다.
며칠 전 노교수님 한분이 숨이 차고 어지러워하며, 식은땀을 흘리시면서 급하게 진료실을 찾아 오셨다.
혈색이 창백해진 스승의 얼굴 위로 불현듯 잊어버린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언젠가 축제를 맞아 동기생과 선후배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내용인즉 "대학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요?" 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뭘 할 거냐는 기대감으로 차있을 대학 시절에 대한 대답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유인즉 모 교수님께서 너무 혹독하게 공부를 시키셔서 시험 후 재시, 3시를 수시로 치렀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설날, 크리스마스 날, 추석날도 가리지 않고 시험을 보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또 그럼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진급하지 못하고 결국 유급이 되어서 1년이라는 세월을 후배들과 함께 수학해야 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서, 그 청춘의 멋진 대학시절이라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게 누군가가 대학시절 가장 떠오르는 추억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아무런 추억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매일의 삶이란 게 도서관과 학교강의실을 전전 하는 것 뿐…. 그 흔한 미팅 한 번 하지 못했다. 특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동생들의 등록금까지 마련해야 했던 내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힘든 미국 유학시절…. 나는 그 무섭고 비정한(?)교수님 덕분에 본의 아니게 "Brilliant Korean doc.!!"이라는 말을 들으며, cultural shock으로 인한 향수병으로 몸져 누워있을 때, 용기를 얻어 많은 환자들께 사랑받는 지금의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이유인즉 우린 모든 걸 입속에서 외울 만큼, 열심히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항시 질문에 대해 준비하고 머릿속과 혀끝에다 hot line을 설치한 후 모든 지식을 저장해야 했던 우리였기에, 우린 항상 100m달리기 경주에서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처럼 그렇게 핫라인으로 뛸 준비를 하고 기다리며 살아왔다.

어느 안과교수님이 회의 중에 의사들에게 망막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물었는데, 모든 미국의사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릴 때, "10 layers…"하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10층의 구조들을 나는 줄줄 외워댔고, 경의의 박수갈채까지 받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셈을 잘 하니까, 수학도 뛰어나다는 것이 아주 명석한 의사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됐다.

그 악명(?)높던 교수님 덕분에 영어가 좀 서툴러도 의술을 인정받을 수가 있었으니, 나로서는 그 교수님을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교수님이 오신 것이다.

의대학장까지 지내시고, 학교를 위해 장학재단까지 마련하신 교수님.
이젠 정정하시던 그 모습은 어디 가셨는지, 창백한 얼굴에, 머리카락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숫자가 줄어 들으셨다. 가슴이 아팠다.

모교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를 뿌리치시고 제자를 찾아오신 교수님은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셨다. 내시경을 통한, 위장관내에는 출혈이 낭자했고, 심한 복통과 출혈로, 혈압이 떨어지면서 응급 상황이 돼버리셨지만, 엄하게 가르쳐주신 의사의 길을 걸어온 까닭에 결국 우리들의 스승은 살아나셨다.
멋진 카네이션을 심장에 달아 주셨다면서 행복해하시던 선생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많은 좋은 인연들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특히 중요한 3가지 만남이 있다.
첫 번째 만남은 부모와의 인연이다.
태어나면서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

멋지고 좋은 부모를 만나면 멋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 가기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쉽다. 가난하고 힘든 부모를 만난다면 특별한 반전이 없는 한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처럼 울릉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면 섬사람이 되고, 황실의 멋진 자식으로 태어나면, 황태자가 되는 것이리라.
두 번째 만남은 좋은 의사와의 인연이다.

살면서 병 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로병사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병이 들었을 때 훌륭한 의사(Good Doctor)를 만나면 살 수도 있고, 미리 만난다면 노화를 지연 시킬 수도, 성인병을 미리 예방할 수도 있다. 
사경을 헤맬수록 그렇지 못한 형편없는 의사(Bad Doctor)를 만난다면, 이 세상을 미리 서둘러 떠나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세 번째 만남은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이다.
좋은 스승과의 만남은 첫 번째의 만남, 즉 태어난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반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처럼 울릉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게 되면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그렇게 해야 할 의지가 생겨 이렇게 멋진 스승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도 한다.
진정한 스승이 없다며 한숨짓는 사람들.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랑만이 있는 스승이 계시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랑스러움만도 아닌, 참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주시는 분이 진정한 스승이 아닐까?
아니 참 삶이 무엇인지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나눔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줄 수만 있다면 조금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조금은 회초리를 든다고 해도, 그것이 사랑의 매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스승이, 진정한 스승이 아닐까?

올해 스승의 날엔 참되게 살라고 회초리를 드시던, 잊혀져간 스승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 어떨까요?
이번 스승의 날엔 바르게 살라며, 가르치시던 그 스승의 말씀처럼 힘든 이웃에게 사랑의 쌀 한줌을 나누면 어떨까요?
1년에 한번이 아닌 365일 스승을 기리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실천하심은 또 어떨까요?

아니, 세상의 욕을 얻어먹고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모멸감을 받는다 해도, 참 되고 바르게 살라고 회초리 들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또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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