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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병원에서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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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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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진료를 보면서 또한 수술을 하면서 그리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모든 의사들이 느끼는 바이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데 못하는 부분이 있고 본인이 정말 하기 싫은데 꼭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의 경우에는 필자와 같은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할 것이다. 진료를 하다보면 관심 있는 질환이 따로 있어서 그 질환을 가진 환자만 보고 싶을 수 있으며 수술은 더욱 더 그러할 수 있다. 

연구의 경우는 학문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그나마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를 시간만 허락한다면 연구할 수 있다.

필자가 전공의 시절에 지금은 은퇴하신 노교수님께서 의욕에 찬 한 젊은 교수에게 했던 충고가 지금도 머리에 항상 남아 있다.

당시 그 젊은 교수님은 비뇨의학에 관련된 종양 환자를 많이 보고싶어 했고 또한 그 분야와 관련된 수술을 많이 하고싶어 했다. 컨퍼런스 시간에 노교수님께서는 "종양은 우리 말고도 잘하는 의사가 많으니 종양 보다 훨씬 더 유병률이 높은 전립선비대증이나 요로결석의 대가가 되려고 노력하라" 하시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지금도 그 말씀이 항상 머리 속에 훤하다. 심지어 내 아이들에게 알찬 학창시절을 보내기 위해 어떻게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충고할 때도 "너희가 하고 싶은 것과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다르며, 그것을 얼마나 빨리 인지하느냐에 따라서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결정된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비록 필자의 근무 여건이 대학병원에 있다고 해도 전공의 부족으로 실제 손이 가는 사무적인 일과 병동 일이 많다. 상당히 오랜 기간 전공의 없이 전문의 시절을 대학병원에서 보내면서 오히려 전공의 때에도 느껴 보지 못한 노교수님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으며 또한 자주 반성하게 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위해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들에 얼마나 나태해져 있는가?'라고 스스로 의문을 자주 던지며, 물론 궁극에는 이기적인 내 모습에 놀라긴 하지만, 내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다는 각인을 다시 새기게 된다.

연구의 경우, 물론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된다고 하더라고 연구과정 안에서 정작 복잡하고 성가신 일은 회피하고 싶은음이 내 경우에는 많았다. 많은 선배 연구 의사들의 업적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꼼꼼한 일 처리 하나하나를 보면서 요즘은 나도 많이 변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하기 싫을 정도로 번거로운 일은 남도 싫은 것이다!'라는 것을 연구에 몸담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혼자서 다 하고 끌어가는 연구라고 해도, 아무리 사소한 도움이지만 그 도움이 없으면 연구는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인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 이런 독백이 나온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궁극적으로는 책임감과 직관력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인간의 속성으로 볼 때 병원에 있는 우리는 날마다 저 독백의 기도를 되뇌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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