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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청진기 의사 찾기
청진기 의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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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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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초등학교 소풍 때 인기 있던 '보물찾기'마냥 '의사 찾기'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물론 의사인 우리가 찾아보는 거다. 30∼300명 정도 되는 불특정 집단에서 일면식도 전혀 없는 의사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려울까?

300명이 탄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방송을 듣고 나온다면 그 사람 의사다.  늦게 들었거나. 나갈까 말까 고민 하다가 먼발치라도 슬그머니 행색을 드러낸다면, 이 사람도 의사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보자면….

300명 정도 수용하는 콘서트홀에서 연주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갑자기 앞으로 쓰러졌을 때, 달려 나가면 이사람 의사다. 실지로 그런 적이 있잖은가. 동정심이 많은 사람도 뛰어가긴 하지만 의사와는 쉽게 구분된다. 환자 앞에 다가서면 의사는 매의 눈으로 냉정히 판단한다. 서둘지 않으면서 원칙대로 순차적으로 대처한다.

동정심이 많은 사람은 안절부절못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자주 출입구 쪽으로 눈을 돌린다. 환자가 사망하면 그 사람은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변한다. 하지만 의사는 자책감에 가슴이 먼저 운다.

의사 찾기가 너무 쉬운가? 그러면 이런 건 어떨까?
30여명이 1주일 패키지여행을 갔다고 했을 때 동행인 중에 의사를 찾는 것. 가장 쉬운 팁을 알려드리면, 제약 회사에서 판촉물인 조그마한 가방이나 소지품을 갖고 있다면 이사람 의사다. 또, 동반자와 얘기하는 중에 불쑥 나오는 의학용어가 있다면 의사 맞다.

그리고 여행 경비가 평소보다 엄청나게 비싸다면 그 중에 적어도 반 정도는 의사일거다. 병원 비우고 환자들에게 욕먹느니 차라리 울며 겨자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게 의사다. 이런 팁이 없다면 동행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대체로 가이드 말에 경청한다. 가이드가 말할 때 잠을 자는 경우는 있어도 옆 사람과 수다 떨지 않는다. 물론 의사가 집중 안할 때도 있다. 그 때는 건강식품 판매하는 곳에서다. 사기꾼처럼 살랑대는 직원들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평소 모습과 달리 산만해지면 의사다. 의사는 공동 경비 등 금전적인 것에 대해서 군말이 없다.

돈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건강식품 판매장이 불편한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그것을 돈 때문에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수련 때 습성이 남아 식사 속도가 빠르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동행한 사람한테 언제까지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는지 확인하며 약속을 잘 지킨다. 평소에는 말을 별로 안하지만, 영어가 필요한 경우 잘난 체 하지 않으면서 소통을 잘 한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신비주의 느낌이고 무언가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이며, 술을 마시면 약간 사교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금방 말이 없어진다. 술을 못 마시는 의사도 술잔은 받을 줄 알고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가? 이 정도면 단체에서 의사 찾기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의사 찾는 것은 어떨까? 병원냄새라 불리는 크레졸이 사라져 옷에 배인 냄새로 찾을 수도 없고, 왕진 가방을 든 의사도 찾을 수 없고, 개성 있는 의사도 많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과거에는 의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을까. 내게 가장 오래된 의사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기 전이니 근 50년 전이다.

그 때의 의사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가운처럼 빛나는 흰 손으로 진찰하고, 조용조용 꼭 필요한 말만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인데 진료비에 관해서는 무심한 듯 보였다. 친절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절대 불친절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왠지 믿어야 될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의사에 대한 어릴 때의 좋은 기억이 내가 망설이지 않고 의과대학을 선택했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30년 동안 의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재의 나는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 대학 다닐 적에 나중에 의사되면 하얀 가운이 잘 어울릴 거라는 주위의 덕담에 얼굴이 살포시 붉어졌던 기억도 있는데 말이다. 

전철로 출퇴근하는 내가 가끔 택시를 탈 때가 있다. 시간이 늦어 집에 빨리 가고 싶거나 편안하게 전화를 해야 할 상황일 때다. 택시 안에서 전화가 끝나면 기사 분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내 직업을 물을 때가 있다. 나는 대답 대신 한번 맞춰보라고 한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 '의사'라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중년 남자가 자가용도 없이 택시 타는 것을 보고 의사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가장 비슷한 경우가 학교 선생님이었다. 부동산 사업, 증권투자, 종교단체, 자선 사업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서운하기도 하고 그 다양한 답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사분의 판단 근거는 내 전화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성당교우와 건강 상담 통화, 병원이 안 되어 앞일을 걱정하는 후배와 통화, 병원을 더 넓게 키우는 친구와 통화, 주식에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친구와 통화에서 추측했으리라 본다. 학교 선생님으로 생각할 때는 내가 얌전히 있거나 목적지를 조곤조곤 알려줬을 때가 아니었을까.

사르트르 실존주의 이론인 존재와 본질로 구분해 언급하면, 의사가 의업(醫業)에 종사하지 않으면 의사라는 본질에서 벗어나기에 의사가 아니다(존재).

'나'라는 존재는 본질에 충실한 걸까. 의료보험 관련 업무와 행정적인 일로 시간을 많이 뺐기고, 까다로워진 환자와 보호자에 시달리며 원칙보다는 타협을 택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의업 외에 기웃거린 것도 많았다. 그러니 정작 의사 고유의 빛까지 퇴색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우려가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는데….

어쨌든 의사. 정말 좋은 빛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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