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기 여성 조명 '신여성 도착하다'展
한국 근대기 여성 조명 '신여성 도착하다'展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8.02.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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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역사·문화·미술 근대성 '신여성' 통해 가시화…국내 첫 전시
4월 1일까지 덕수궁관에서…다양한 장르 작품·자료 500여점 전시
1부 \'신여성 언파레-드\' 전시장 전경ⓒ의협신문
1부 '신여성 언파레-드' 전시장 전경ⓒ의협신문

오는 4월 1일까지 광화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展이 열린다.

이 전시는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전시로,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뤄졌던 우리나라 역사·문화·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국내 첫 전시다.

이를 위해 회화·조각·자수·사진·인쇄 미술(표지화·삽화·포스터)·영화·대중가요·서적·잡지·딱지본 등 500여 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이 입체적으로 소개된다. 특히 근대성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 새로운 주체 혹은 현상으로서의 신여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 통시대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현대 작가들이 신여성을 재해석한 신작들도 함께 소개된다.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해 20세기 초 일본 및 기타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됐다.

국가마다 개념의 정의에 차이가 있지만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 정치적·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 시기에 새롭게 변화한 여성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근대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여성이 1890년대 이후 출현했으며 이 용어는 주요 언론 매체·잡지 등에서 191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해 1920년대 중반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빈번하게 사용됐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제국주의·식민주의·가부장제 그리고 동서양 문화의 충돌이라는 억압과 모순의 상황을 경험했다. 피식민인이자 여성으로서 조선의 '신여성'은 근대화의 주된 동력으로 작동할 수 없는 이중적 타자로 위치했고 '근대성'의 분열적인 함의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됐다.

 

당시 신여성들이 사용한 우산·구두 등을 전시하고 있다ⓒ의협신문
당시 신여성들이 사용한 우산·구두 등을 전시하고 있다ⓒ의협신문

이번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 1부 '신여성 언파레-드'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대중가요·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교육과 계몽·현모양처와 기생·연애와 결혼·성과 사랑·도시화와 서구화·소비문화와 대중문화 등의 키워드로 점철된 신여성 이미지들은 식민 체제하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이념적·도덕적·사회적·정치적 각축을 벌이는 틈새에서 당시 신여성을 향한 긴장과 갈등 양상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근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상당히 희귀한데, 국내에서 남성 작가들에게 사사한 정찬영·이현옥 등과 기생 작가 김능해·원금홍, 동경의 여자미술학교(현 女子美術大學) 출신인 나혜석·이갑향·나상윤·박래현·천경자 등과 전명자·박을복 등 자수과 유학생들의 자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근대기 여성 미술교육과 직업의 영역에서 '창작자'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을 추구한 초창기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5인의 신여성'에서는 남성 중심의 미술·문학·사회주의 운동·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다섯 명의 신여성 나혜석(1896∼1948년, 미술), 김명순(1896∼1951년, 문학), 주세죽(1901∼1953년, 여성운동가), 최승희(1911∼1969년, 무용), 이난영(1916∼1965년, 대중음악)을 조명한다. 

당시 찬사보다는 지탄의 대상이었던 이들 신여성들은 사회 통념을 전복하는 파격과 도전으로 근대성을 젠더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에 현대 여성 작가(김소영·김세진·권혜원·김도희·조영주)들은 5인의 신여성을 오마주한 신작을 통해 당시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뒤돌아본다.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품과 나혜석\', 1933년 추정,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의협신문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품과 나혜석', 1933년 추정,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제공ⓒ의협신문

 

※ 신여성이란 
신여성은 근대적 지식과 문물·이념을 체현한 여성들을 일컫는다. 1910년대 여자 일본유학생들로부터 시작해 1920년대 초 중등교육을 받은 여학생들과 여성 민권과 자유연애를 주창하는 '신여자'를 뜻하는 경향이 컸으나, 점차 양장을 입고 단발을 한 채 일본을 경유해 들어온 서구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모던걸', 나아가 시부모와 떨어져 단가살림을 하면서 애정적 부부관계를 운영하는 '양처'의 의미를 포괄하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세계사 차원에서 보면 신여성은 1890년대 영국의 'New Woman' 열풍에서 시작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새로운 여성성의 아이콘이다.

공통적으로 근대적 지식을 소유하고 경제적 독립성을 누리고 남성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를 벗어나 소비와 유행의 주역으로서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추구한 여성들을 일컬었고, 각 사회마다 이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신여성의 의미와 논란은 서구 사회와 서구 문물을 들여온 비서구식민지사회에서 그 내용과 초점이 다르게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치마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신여성을 기존의 남성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데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구조선 사회를 벗어나 근대적 이념과 문물을 추구하는 존재로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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