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나를 응시하는 '동굴의 시간'
청진기 나를 응시하는 '동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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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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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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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존감이 가장 낮아지는 순간'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 결과를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 600명의 20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1위는 '행복해 보이는 지인의 SNS을 보았을 때(27.6%)'였고, 그 다음이 '취업이 안 될 때'(22.7%),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21.9%) 등의 순서였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가 이 결과를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만들어진 배후에는 분명 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설문의 결과는 인구밀도가 높고 남을 의식하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일찍 노출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가입돼 있다. 그것은 때로 유용한 정보 공유의 장이 되기도 하고 시간 때우기 좋은 놀이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나면 별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일종의 중독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공간이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워 일주일간 혼자 지낼 기회가 생겼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장소에 상관없이 혼자 일주간 지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혼자 있을 평일의 저녁과 주말이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이내 무엇을 하며 즐겁게 지낼까 하는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후배를 만나기 위한 짧은 여행 계획으로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로 여행 계획이 취소되면서 나에게는 갑자기 여분의 시간이 생기게 됐다. 그리고 그 당황스러움은 여분의 시간을 공짜로 선물 받은 얼떨떨함으로 바뀌었다. 항상 계획을 타이트하게 세우고 살던 나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일박 이일의 시간은 세상과 단절된 진공 속의 시공간에 홀로 놓여진 낯선 느낌이었다.

그 시간을 나는 보다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 온 것과는 정반대로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내기로 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없는 빈 시간에 나를 놓아보는 일종의 새로운 여행이었다. 배가 한참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먹고, 읽고 싶던 책을 실컷 보았다.

그러다 지겨우면 눕기도 했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옷장 정리를 한참 하고, 밀린 글도 정리하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처음 들어 본 제목의 영화를 다운받아 밤늦게까지 눈물 흘리며 감상했다. 막상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는 특별한 일 없는 시시한 내용의 이틀이었다.

그러나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않고 핸드폰도 멀리하며 외부 세계와 의도적으로 나를 격리시켰던 그 시간동안 발견한 것은 어떤 수식도 꾸밈도 없는 '나'의 본모습이었다. 타인의 시선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났던 이틀 동안,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과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문득 생각이 났다.

외부의 자극이 중단되고 몸이 충분히 이완됐을 때, 그래서 뇌가 자연스럽게 충전됐을 때 그런 여유와 생각이 생긴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하게 됐다. 나는 오랜 동안 지나치게 과부화되어 살았던 것이다. 나 혼자 바쁜 것으로도 부족해서 아이들이 누워 뒹구는 모습에도 불안해하고 빡빡하게 시간표를 짜주면서 안심하는 엄마였으니 말이다.

이틀이 지나고 동굴 밖으로 나온 뒤 나의 일상은 예전처럼 계속됐으나 그 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이 위로하고 치료해줄 수 없었던 내면의 상처와 대면하고 비로소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가장 갈망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거기 열중하는가? 은연중에 스스로 묻고 그리고 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스스로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회피하고 목표만을 향해 정신없이 살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나에게 질문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즐거워하며 무엇에 약한지 우리는 수시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한다면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그런 고민없이 받아들여진 외부의 화려한 자극과 무수한 정보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오히려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다른 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좋아요'를 확인하고 댓글에 답하느라 정신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삶이 될 것인가?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보여지는' 내가 아닌 '존재하는' 나의 진실된 모습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작은 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할 때 비로소 나는 어제와 달라질 것이다. 그저 막연히 다른 사람들이 달려가므로 나도 덩달아 좇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목적지를 향하는 모습. 그 모습은 나 혼자의 고요 속, 자신을 응시하는 고독한 시선 속에서 선명해진다.

존재만으로도 눈부신 젊음, 그러나 그 시간은 타인의 꿈을 기웃거릴 새가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타인의 삶과 나를 비교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스스로와 마주하는 외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나를 둘러싼 이웃과 타인들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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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열 2017-12-30 08:19:45
멋진 칼럼 입니다
저도 뇌를 편하게 둔적이 없어 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공감 가득한글 감사합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