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팝아트의 기원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전
영국 팝아트의 기원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전
  • 윤세호 기자
  • 승인 2017.12.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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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2018년 1월 21일까지…회화·드로잉·판화 등 90여점

▲ -(왼쪽)The citizen, 1981∼83년, Oil on canvas, 2 canvases, each 200x100cm, Tate: Purchased 1985년.-(오른쪽)The citizen, 1985년, Dye transfer, 48.8x48.8cm (image); 64x63cm(sheet), Hamilton Estate.

 '시민(The citizen)'은 해밀턴이 북아일랜드의 정치 상황과 언론 보도 내용을 그려낸다는 의도에서 10년에 걸쳐 제작한 회화 3부작의 첫번째 작품이다. 그는 아일랜드 현대사에 있어 암흑기중 특정 시점에 응답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 시기는 무장단체 수감자들을 수용한 메이즈 교도소에서 1980년대 발생한 '불결 투쟁'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이 작품이 제작된 배경에 대해 해밀턴은 "1980년, 나는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공화국군 수감자들을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았다. 놀랍게도 영국의 공영 TV 프로그램에서 담요를 쓴 사람들을 보여줬는데, 이 말은 교도소 규율에 저항하며 수감자들이 취한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씻기를 거부함으로써 만든 불결한 상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이상한 이미지였고, 일반적으로 예술과 연관된 신화적 힘을 지녔다"라고 말했다. '시민'은 벽의 소용돌이 자국 패턴이 표현된 수감자의 반신상 연구 연작으로 시바크롬 사진과 유화 물감을 이용한 두 점의 콜라주 작품으로 제작한 패널 두 개로 구성된 대형 회화다. 해밀턴의 관심을 끈 것은 초기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에서나 나올 법한 순교와 신화라는 유사 성서적 이미지가 동시대 대중매체와 한데 뒤섞여 발휘하는 강력한 힘이었다. 이 작품 속에서 삶은 예술, 그리고 이미지 만들기와 만난다. 해밀턴은 이 같은 복합적 과정이 현실을 의식적으로 신화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그가 늘 관심을 가져온 문화의 강력한 사회정치적 순간들 중 하나임을 인지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 리처드 해밀턴의 개인전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전시실에서 2018년 1월 21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전은 아시아에서는 처음 여는 리처드 해밀턴 개인전이다.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으로 대변되는 1960년대 미국 팝아트와 달리, 영국의 팝아트는 사실상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비주의 사회의 등장과 함께 이미 1950년대로부터 시작됐으며 그 필두에 바로 리처드 해밀턴이 있었다.

2011년 그가 죽은 후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팝아트의 기원을 일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한 바 있으나,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리처드 해밀턴은 20세기 중반부터 새로운 관념과 시각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고 이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해 낸 영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다.

현대 사회의 대량 생산 이미지에 매료된 작가는 인간 욕망의 생성 및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재생산과 그 작동 방식에 주목했다. 작가는 동일한 이미지와 주제를 지속적으로 재해석해 일련의 작품들로 재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끝없는 탐구와 실험을 통해 이미지와 기술적 방식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밀턴의 연작은 각각의 이미지와 그 의미들이 갖는 본질에 대한 작가의 탐색 과정이 누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 Dining Room, 1994∼95년, Cibachrome on canvas, 122x162cm, Leeum, Samsung Museum of Art.

 

▲ Attic, 1995∼96년, Cibachrome on canvas, 122x244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urchased with funds contributed by the Committee on Twentieth-Century Art, with additional funds contributed by Mr. and Mrs. Keith L. Sachs, The Dietrich American Foundation, and Marion Boulton Stroud, 1997년.

 ▲일곱 개의 방1994년 리처드 해밀턴은 런던 앤서니 도페 화랑에서 열린 그룹 전시인 '다섯 개의 방'을 위해 일곱 개의 벽이 있는 방 하나를 할당받고 컴퓨터를 이용해 '일곱 개의 방'연작을 제작했다.  해밀턴은 먼저 화랑의 지정받은 모든 벽과 바닥·스포트라이트 및 들보를 촬영했고 그 이미지를 스캔해 컴퓨터에 저장했다. 이후 작가는 실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옥스퍼드셔의 집을 찍은 사진을 편집·수정해 화랑 벽의 스캔된 이미지 위에 디지털 방식으로 올려놓았다.  각 작품마다 재현된 화랑 공간은 연작 전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프레임'으로 구현된다. '프레임' 안에는 포토리얼리즘 회화처럼 보이나 실은 디지털 방식으로 조작된 작가의 거주 공간 내부의 방을 보여준다. 작품들이 각각 '부엌'·'욕실'·'복도'·'식당'·'침실'·'식당/부엌'·'다락방'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곱 개의 방'은 공간의 역동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실재와 환영의 재구성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밀턴 식의 고찰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편 이번 전시는 한 작가의 궤적을 살피는데 있어 특별한 유형을 제시한다.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전은 그의 총체적 작업에 대한 서사적 회고전이기보다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60년의 시간에 대한 일종의 클로즈업처럼 작가의 특정 작품군 또는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가정용 전자제품에서 꽃, 그리고 팝스타와 정치범까지 전시에 선별된 연작들의 소재와 주제는 광범위하다. 약물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록큰롤 스타 믹 재거, 아일랜드 공화국군 수감자들의 감방 내 시위 모습, 납치되는 순간의 이스라엘 핵 연구원 등 신문 지면에서 차용한 이미지는 수십 년간 작가의 작품 소재가 됐다. 토스터·진공청소기·냉장고 등 가정용 전자제품의 잡지광고 이미지 또한 작가를 매혹시킨 소재로 디자인과 기술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강박에 가깝게 천착한 이 같은 주제들은 반복과 재해석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 이면의 사회를 대변하는'복합적인 장치'로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현대사회의 비판적 관찰자이자 참여자로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해 온 리처드 해밀턴의 다층적인 작업세계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듯하다.

이번 전시와 함께 리처드 해밀턴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도록도 함께 발간했다. 작가의 연작을 세밀하게 탐구한 미술계 석학 앤드류 윌슨(테이트 브리튼 선임 큐레이터)과 디클런 맥고너글(아일랜드현대미술관 초대 관장)이 해밀턴의 작품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해밀턴이 남긴 원고 열 세편이 수록돼 있어 사회와 작품에 대한 그의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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