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침묵 속의 믿음
청진기 침묵 속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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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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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H군의 아버지와 나는 안과병동의 복도 끝에 서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잿빛 겨울 하늘이 음울했다. 무겁게 흐르는 침묵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 지 몰랐다. 차라리 그가 나의 멱살이라도 잡고 따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때문에 내 아들 눈이 저렇게 됐으니 이제 어떡할 거요?', 그렇게 내 몸을 붙잡고 거칠게 항의라도 하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질 것 같았다.

낮은 탄식이 간간이 흐른 후 그가 입을 뗐다.

"이 아이가 지금 군대 다녀와서 복학을 해야 합니다. 공부해서 제 앞가림을 해야 할 텐데 저러고 있으니 어떡합니까?"

"아, 네······ 교수님께 잘 말씀드려 놨으니 여기서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저도 끝까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의사이기에 앞서 아들을 키우는 한 사람의 아빠로서 마음 아프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레이저 시력교정술 후 회복이 더딘 편이긴 했지만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전날 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눈이 아팠다는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충혈이 매우 심하고 빛을 보기도 힘들어 하는 눈을 가까스로 진찰용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멍해졌다.

세균성 각막궤양이었다. 각막이 온통 뿌옇고 궤양부위가 녹아내려 천공(穿孔)의 위험마저 있어 보였다. 전방(前房, 각막과 홍채 사이의 공간)까지 노란 가래처럼 보이는 농이 들어차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만난 나는 잠시 공황상태로 빠져들었다. 정신이 아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현재 상태를 알렸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심각한 상황입니다. 각막에 독한 균이 들어가서 심한 염증이 생겼습니다."
내 말을 들은 H군이 절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머! 어떡해, 우리 아들 눈 이제 어떻게 되는 거에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니?"
날카롭게 울부짖는 듯한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가 내 마음을 찌르듯 파고들었다.

모든 수술에는 반드시 수술 상처를 통한 세균감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안과 영역에서 가장 흔히 이뤄지는 백내장수술은 안구를 절개하는 안내수술인데 통상 0.1%의 감염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1000명 당 1명꼴이다). 하지만 안구를 절개하지 않고 각막의 표면에 레이저를 조사(照射)해 시력을 교정하는 라식·라섹 등의 수술에서 합병증으로 급성감염이 나타날 확률은 그보다 훨씬 더 낮다. 그토록 드문 일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마침 각막 전공 교수와 연락이 되어 급히 보내 신속한 처치를 했다. 입원 후 안정을 취하며 안약·먹는 약·주사를 투여했다. 다행히 약에 반응을 보여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다음날 병원을 찾아갔다. 먼저 H군을 만났다.

"좀 어때?"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그래 차차 좋아질 거야"

위로의 말을 건넨 후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한동안 걸터앉아 있었다. 서로 말이 없었다. 가까운 이들이 입원했던 때의 일들이 생각났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는 그를 한동안 바라보다 잠시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때 그의 부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와 나는 짧은 대화 후에 복도에 선 채로 또 다시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해주실 것을 믿겠습니다"

그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아들이 있는 병실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병실에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을 뒤로 하고 병원을 걸어 나오는 동안 모든 게 꿈인 듯 몽롱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줄곧 '무얼 잘못한 거지?', '앞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초점을 잃은 듯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아프게 가슴을 휘저었다.

이후로 한 번 더 병원을 찾아갔지만 환자만 만나고 돌아왔다. H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뒤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환자도 오지 않았다. 그의 눈 상태가 걱정됐다. 한편으론 놀랍고 의아했다. 그보다 훨씬 사소한 진료에 대한 불만도 며칠이 멀다하고 와서 하소연을 하거나 원망 섞인 말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하물며 이런 경우라면….

사실 나는 이후의 일에 대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닌 나에 대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의사로서 존재하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믿어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믿음 앞에 감사드렸다.

안과의사로서 살아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말해보라 하면 이 H군이 먼저 떠오른다. 더욱 잊지 못하는 건 그와 그 가족의 침묵이다. 비록 불가피한 확률에 의한 일이라 하더라도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나에게 그들이 보여준 인내와 침묵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나를 믿는다'는 말은 아직도 귓전에 울리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고통스런 침묵 속에서 보여 준, 한 의사에 대한 관대한 이해와 진실한 신뢰를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를 찾는 이들의 아픔을 좀 더 이해하고 함께 느끼려 애쓰며 살아감으로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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