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天刑)'.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 굴레에 갇힌 아이들이 있었다. 집안에서 조차 아이들은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아픔으로, 애달픈 상처로 남아 있었다. 세상의 비뚤어진 시선은 아이와 부모가 겪는 시련을 더 무겁고 힘겹게 했고,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았다.

구순구개열.

누군가는 함부로 천형이라 내뱉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들의 아픈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30여년을 아이들에게 밝은 웃음과 당당한 삶을 찾아주기 위해 여러 갈랫길 중 오직 한 길만 걷는다.

그동안 수술받은 아이들은 7000명을 넘어섰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인 것처럼 아직도 멈추지않는 손길은 그를 찾는 곳으로 향한다.

엄기일 한림의대 교수(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가 평생을 찾고 지켜온 '당당한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시간을 거슬러 의미를 되짚는다.

▲ 엄기일 한림의대 교수(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

의사, 성형외과, 구순구개열…. 고희를 앞둔 그가 지나온 삶의 표제어다.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서전이었고 그 일이 가장 편하고 좋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천생 의사였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40여년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사람이나 시대나 지역을 달리하지 않는다. 성형외과학에 대한 그의 외사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당시 성형외과는 최신 학문이었고 하루 하루 새로운 접근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질병 치료 개념을 넘어선 아름다움에 대한 영역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유재덕 선생님의 사사로 구순구개열 수술에 입문한 것도 그 때입니다. 제 삶은 그 이후로 곁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다른 이력 속 감춰진 시간에는 그의 열정과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 흔들리지 않고 지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가늠할 수 있다.

"1981년부터 원주기독병원에서 2년 반을 스탭으로 지내고 1989년까지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사이 구순구개열에 대한 논문 3∼4편을 미국 학회에 발표했고, 그 인연으로 현대적 구순구개열 수술의 창시자인 밀라드 박사에게 연수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연수중에는 밀라드 박사는 물론 미국 악안면성형외과학회장을 역임한 울페 박사의 지도도 받았습니다. 평생의 자산이 됐습니다. 귀국 후 한양대병원에서 본격적으로 구순구개열 클리닉을 열게 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 아이들, 부모들과의 만남은 제게도 깊은 의미를 남겼습니다."

그에게 한 아이 한 아이에 대한 수술은 언제나 특별하다. 삶이 바뀔수도 있다는 무게감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구순구개열 아이들과 마주하게 되면 의례적일 수 없습니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수술이지만 '대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수술 부위와 여건이 같지 않기도 하지만 아이에게는 평생 간직할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나 작가가 산고를 겪으며 작품을 잉태하듯 그 역시 간절함으로 그만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술방법을 찾다보면 갖은 아이디어를 짜내고 고민하고 제게 주어진 모든 것을 쏟아내게 됩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수술의 개념을 넘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함을 깃들여 작품이 완성되면 아이의 미소도, 미래도 더욱 밝아질 수 있다는 저만의 기원을 얹게됩니다."

수술에 대한 열정 못지 않게 수술 이후 아이와 부모의 삶에 다가선 그의 마음이 있다.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은 아이와 부모들의 모임인 민들레회 활동은 20년간 이어졌다.

"구순구개열은 수술치료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회적 편견이 깊어지고 집안이나 부모조차 부끄럽게 여기는 현실에서 얼굴의 기형치료는 끝이 아닙니다. 수술한 아이들의 마음치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 역시 똑같은 마음의 병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아픔을 보듬는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1994년 시작된 민들레회 활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졌다. 구순구개열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 최신 치료동향과 첨단 수술법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수술 받은 아이가 많았지만 민들레회 활동에 참여한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부모들은 굳이 나서는 데 주저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분 두 분 씩 제 생각에 동조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이 사회에서도 당당하게 성장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초석을 놓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해마다 열린 민들레캠프에서는 미술활동·레크리에이션·불꽃놀이·운동회 등을 함께 하며 아이와 어른들이 한 데 어울렸습니다. 그 시간동안 그 아이들은 주인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알고 곁을 내어주는 마음을 배웠고, 부모들은 상처로 헤진 마음을 서로 꿰매주며 위로했습니다."

선한 의지만으로 민들레회는 이어지기 어렵다. 기본적인 활동비용에 민들레 캠프, '당당한 아이만들기' 장학금 등을 마련하느라 그는 늘 분주했다. 십 수 년 간 급여에서 일정비용을 떼 내기도 했고, 필요할 때면 뭉칫돈을 들이기도 했다

"후원기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후원자와의 활동이 알려져야 하는데 대부분 민들레 회원들이 원치 않다보니 후원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KBS·MBC 등 여러 방송매체에서 촬영 협조를 요청했지만 같은 이유로 무산되곤 했습니다. 결국 부족한 비용은 개인적으로 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들레회에는 많은 이들의 숨결이 담겨있다. 함께 한 의사와 간호사들, 남모르게 도움을 전한 많은 이들의 고귀한 정성이 배어 있다.

"제가 시작한 일이지만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보람을 찾으며, 더 큰 행복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민들레회 20년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라밖이라도 여전히 외면할 수 없다.

"2009년부터 우즈베키스탄의 자치공화국인 카라칼팍에서 구순구개열 아이들을 수술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지난 10월에 다녀왔습니다. 아침 7시 30분부터 늦을 땐 밤 9시가 넘어까지 진행되는 일주일간의 강행군이지만 우리 의료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 힘들 시간조차 없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아이들과 만날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성장해 그의 모습을 그려오기도 하고 그와의 인연을 곡으로 만들어 전해오기도 한다. 그는 2015년 건국대병원에서 정년퇴임을 하며 민들레회의 공식 활동은 잠시 멈췄다. 그렇지만 또 다른 만남은 예정돼 있다.

"지금은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민들레회 회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2019년이면 민들레회가 25주년을 맞습니다. 그 때에는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조촐한 만남을 갖고자 합니다. 밝게 성장한 아이들과 그들의 울타리가 돼준 부모님들을 뵐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렙니다."

그는 한 길을 걸으며 그들의 곁에서 깊고 진한 울림을 내고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가 걸어온 길을 이어갈 것이다.

"얼마전 본 영화에서 장애인 화가를 후원하는 독지가가 그 화가에게 그림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답합니다. "그림은 가르치고 배워서 그리는 게 아닙니다. 그림은 혼자 그리는 것입니다"라고…. 의료봉사나 소외된 이웃을 향한 마음 역시 같습니다. 주위에는 선한 의지를 가진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와 같은 길을, 더 나은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가 수술한 아이들은 이제 또래처럼 연애하고 공부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의 손길이 찾아준 평범한 일상이다.

'당당하게 평범한' 모습으로 성장한 그들에게서 평범치 않은 노 교수의 삶과 열정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