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허설 중인 배우들. 40년전 파독 간호사들을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 사회인이자 당당한 세계시민으로 다룬 연극이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12월 3일까지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가 무대에 오른다.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40년 전 자신의 꿈을 찾아 독일로 건너간 간호여성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동아연극상 희곡상·대산문학상·서울연극제 희곡상 등을 수상하며 차세대 연출로 급부상한 연출가 김재엽의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 - 베를린 코멘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연극은 40년 전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자·순옥·국희는 서로 다른 이유로 독일행을 선택한다. 한국에서라면 만날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각기 다른 배경의 세 사람은 낯선 땅에서 간호여성으로 만나 서로 의지하며 독일사회에 적응한다.

그 무렵, 부르주아 유학생 정민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며 이주민 개인의 역사에 대한 논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정민의 논문을 계기로 친분을 쌓게 된 네 여성은 독일이 일방적으로 체류허가를 중단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체류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

이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재독한국여성모임'은 독일 사회와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통로로서, 개인 앞에 놓인 수많은 길을 택하는 데에 힘이 되는 서포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세계시민으로 성장해가는데….

실제 한국 첫 공식화된 이민자 세대인 '파독간호사' 세대. 간호여성들은 1968년 9월 해외개발공사에 의해 공식적으로 독일로 이주를 시작하며 이주민 세대를 형성한다. 한국사회에서 이 여성들은 개인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역사책 속 한복을 곱게 입은 '파독간호사'로만 존재해 왔다.

 

김재엽 연출은 독일에 현재까지 거주하는 재독간호여성을 2년 전부터 탐구하며 거대 담론 속 숨겨진 개개인의 삶에 귀를 기울였다. 김재엽 연출은 한국 사회에서 정형화한 '희생의 여성상'을 극복하는 그들의 지성과 공감능력에 기반한 행동력을 이번 연극의 모티브로 삼았다.

1975년 독일행을 선택한 간호사들의 동기가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학업과 해외여행·동경심 등으로 다양하다는 점과 1973년 국제 석유파동으로 발발한 독일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의 계약 연장을 중단 결정에 한국인 재독간호사들이 펼친 서명운동으로 아시아 간호여성의 체류권을 획득한 역사적 사실이 그것이다.

이번 연극에서는 전국향·이영숙·홍성경 등 세 명의 여배우가 재독한인여성이 돼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타인의 경험에 공감하고, 연대하고, 행동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특히 배우 정원조가 연기할 '재엽'은 김재엽 연출의 전작에서처럼 자전적인 이야기 전달자가 아닌, 이주여성 1세대와 2세대의 중간자이자 이주여성들과 관객과의 중간자로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배우 김원정은 '재엽'의 여정에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지식인 '정민'으로, 이소영은 다양한 이주민 2세의 역할을 보여준다. 또 독일인 배우 윤안나와 필립 빈디쉬만은 독일어 대사로 극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한편 무대디자이너 서지영은 병원·영화관·펍·서재 등 장면에 따라 구분된 무대를 디자인해 마치 장난감 집처럼 큐브 형태로 이어진 비연속적인 공간들로 무대를 구현했다.

또 의상디자이너 오수현은 70년대 여성들의 세련된 의상에서부터 수수하지만 우아한 현재 패션까지 재현했다. 여기에 가수 정미조의 '불꽃', 박인희의 '사랑의 추억' 등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 한재권 음악감독의 손을 거쳐 무대 위 극의 적재적소에 서 분위기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