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문재인 케어)에 대한 의료계의 대응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수가 정상화 없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거부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는 12월 10일 약 3만 명의 회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는 의료계의 의지를 확인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의협 회원 열 명 중 여덟 명이 문재인 케어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적정 수가'를 약속한 대통령 발언을 믿는다는 의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면 급여화에 앞서 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본지는 대한의사협회 창립 109주년을 맞아 10월 27일~11월 8일까지 의사 회원 662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문재인 케어)과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사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응답자의 76.7%는 문재인 케어의 정책 방향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적극 반대'가 45.3%에 달했다. 지지한다는 답변은 21.9%에 그쳤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전 연령대에서 고르게 많았으며, 직종별로는 개원의(50.5%)·전임의·봉직의·전공의·공보의 순이었다.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흥미롭다. 지난 8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서 응답자의 76.6%, 9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선 74.1%가 문재인 케어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11월 1일 여론조사기관 K샘플링 조사에서는 반대(42.6%)가 찬성(42.4%)보다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원 조달의 문제 등 의료계의 문제 제기가 일반 국민에게 상당 부분 확산한 것으로 풀이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의 핵심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대해 의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면 급여화에 앞서 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전달체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61.9%로 가장 많았다. 대형병원 환자 쏠림, 의료비 급증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36.3%였다.

앞서 서울특별시의사회가 회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5%가 '정부의 전면 급여화 정책이 의사에게 굉장한 불이익을 끼칠 것'이라고 답했다.

 

수가 적정화는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이다. 의사들은 수가 현실화 없는 전면 급여화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적정 수가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우선 제시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8월 9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의료계의 걱정을 잘 알고 있다.

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8월 31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건보 보장성 강화 대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의료수가의 적정화가 동반 검토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을 믿는 의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59.7%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29%는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믿을 수 없다는 응답은 개원의(90.0%)에서 가장 많았다.

의료계의 정부 불신 풍조는 의약분업 사태 이후부터 현재까지 수시로 말을 뒤집는 정부 태도에 기인한다. 강도태 보건의료정책관, 노홍인 건강보험정책국장 등 보건복지부 실무 담당자들은 9월 2일 열린 의협 긴급 시도의사회장회의에 나와 "정부 추계 30조 6000억원에 기존 수가에 대한 인상분은 반영돼 있지 않다.

당장 수가 인상을 위한 재정투입 계획이나 구체적인 인상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의사회원들을 실망시켰다.

의사들은 정부의 재정 추계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국고 지원 등 특별 대책 없이는 정부 추계 30조 6000억원으로 보장성 강화 정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 75.2%에 달했다.

특히 정부가 문재인 케어 재정 충당을 위해 건강보험 급여 삭감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전면 급여화의 중간 단계로 현행 비급여 진료를 '예비급여'로 편입시켜 무차별 삭감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 의료계에는 심평원이 비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예비급여 삭감을 위한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이른바 '심평의학'이라 불리는 묻지마식 삭감이 더욱 기승부릴 것이라는 전망이 82.8%나 됐다.

진료비의 총량을 고정하는 총액계약제에 대한 반감도 컸다. 문재인 케어 발표와 함께 언급된 '기관별 총량심사'는 사실상 총액계약제나 다름없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대만의 총액계약제를 포함해서 지불체계 개편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해 의료계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복지부는 즉시 "원론적인 발언일 뿐"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총액계약제 도입을 검토한 적 없다"고 해명했으나 의료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95.6%는 총액계약제가 아닌 행위별수가·포괄수가·일당정액 등 다양한 지불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냈다.

설문 조사에 참여한 회원은 "정부는 국민 보건의료 최일선에서 수고하는 의사를 매도하고, 터무니없는 저수가와 강압적인 건강보험법으로 의사의 목을 조이는 것도 모자라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라는 일방적인 탁상공론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전면 급여화를 논하기 전에 먼저 진찰료를 평균 5만 원 정도로 인상해야 한다. 개원의가 영양제 같은 비급여나 기타 특수한 치료법, 잡수입 등에 눈 돌리지 않도록 진찰료만 충분히 인상하면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