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태 원장(리앤안의원)

더위가 시작될 즈음 오랜만에 의사협회를 향해 길을 나섰다.

급변하는 의료환경 속에 보건의료정책 분야의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 의협에서 마련한 '의료정책 최고위 과정'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미용성형 진료를 하고 있는 개원의사다. 전공의 시절 장시간 수술 후 받게 되는 보험수가를 보고 깜짝 놀랐고, 의약분업 저지 투쟁 후 정부의 사후처사에 큰 실망을 했지만 급변하는 의료환경에 또 한번 접어야 했다.

그리고 개원의로 13년동안 모든 의사가 그렇듯이 묵묵히 내게로 와 준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진료하면서 거창하진 않지만 그간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들을 동료의사들과 나누며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묵묵히 진료현장에서 열심히 일해 온 어느 한 산부인과 여의사의 실형선고는 나에게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로 하여금 또 다시 길을 나서게 했다.

책에서 배운 대로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이란 것이 진정 환상일까? 요즘은 좋은 프로그램 잘 사서 쓰면 삭감을 어느 정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삭감되지 않게 진료해야 하며 어느 정도 삭감되는 먹이감을 떨구며 진료하는 우리는 이 시대의 진정한 의사의 모습일까? 의료과실이 없어도 책임이 있단다. 환자가 억울함을 당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한 의사도 억울함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아파서 왔는데 의사보고 수진자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란다. 내가 보기에는 그건 보험금 걷는 쪽이 추후에 해야 할 일 같은데…. 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보다는 돈을 받아가는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형국이다.

환자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개원의는 진료비 삭감을 당해도 이의신청 한번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불합리한 의료정책을 누가 결정하는 것이고 왜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은 내게 있는 이기적인 마음과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의협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번 과정의 수강생은 총 41명으로 각 의사회 및 개원의협의회의 임원, 의료전문변호사들,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 제약회사 임직원, 그리고 나와 같은 민초의사 두 세 명이 참여했다.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됐던 지난 6월 8일 의협회장의 '의료계의 현실과 대한의사협회 역할 나아가야 할 방향'이란 주제로 5개월간에 걸친 의료정책최고위과정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최고위과정에서는 의료정책 수립과 결정 과정 등을 전반적으로 소개했고, OECD기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민 총의료비지출과 국민 1인당 의료비지출에도 OECD평균에 휠씬 상회하는 국민건강수준 유지의 근거가 정책이 훌륭한 것처럼 홍보되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다.

진심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의료체계가 무엇일까? 국민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그에 근거해 의료공급자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보상이 따라줘야 되지 않을까? 현실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처리된 의료법 개정안에 발표자나 청강자가 다 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현지조사제도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심평원의 삭감형태나 현지조사에 강한 불만 등을 토로했다.

'문재인케어'의 정책설명에 대해서는 가계직접부담 의료비 비율이 OECD평균의 2배 정도로 산정된 것이 순수 비급여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미용시장이 과도하게 팽창한데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고, 30조 6000억원의 재원을 2년 이내에 50%이상 집행하고 나머지를 적게 집행하는 방식으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급증하는 비용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우리 모두는 '문재인케어'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바란다. 다만 그 동안 다른 정부가 했던 것처럼 처음엔 당근을 주고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재정악화를 미명으로 또다시 삭감해 가는 방식으로 의사들을 이전처럼 기만하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 강연인 'AI시대와 의료의 미래'로 전체 강의가 마무리되면서 '4차 산업혁명시대'을 맞이하게 될 의사로서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강의 중 정부기관에서 나온 분들과는 청강자들 사이에 다소 이견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기관의 책임 있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이견의 폭을 좁히려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는 모습은 나에게 공직자로서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여러 좋은 강의에 대한 나의 소견을 지면의 제약으로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개원의로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나로선 국가 차원의 의료체계와 의료정책의 결정과정 등을 이해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유의미한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아직도 더 이해하고 공부할 것이 많다는 사실과 우리 모든 의사들이 의사의 본연의 임무인 환자를 진료하는 일과 더불어 더 좋은 진료환경을 만들고 국민 모두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해 봐야겠다. 또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공간적 만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보다 많은 의사들이 이런 과정에 적극 참여해 보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과정을 마련해준 추무진 의협 회장님과 박우형 운영위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위원님들 그리고 세심하게 우리 모두를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케어 해 준 의협 직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