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미(재영한인의사협회장·외과전문의)

1960년도 까지만 해도 영국 의사의 10% 미만이 여성이었다. 지난 반세기동안 여자 의대생 수가 증가하면서 여자 의대생들이 피크였던 2003년에는 의과대학 입학생들의 60%가 여성이었고, 2017년 7월 통계로는 28만 1440명의 의사들 중에 여의사가 45.5%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2015년부터 여자의사가 남자의사 수를 능가했다. 내가 의대를 입학한 1997년 버밍험의대에는 60%가 여자였다. 대학마다 숫자는 다양했지만, 남동생이 입학한 2001년도 런던의대는 70%가 여자였다. 예쁜 올케를 일학년부터 만난 것도 남학생에게 유리한 이 통계가 도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여자 미국 유학생 김점동(1876년생 에스더 박)선생님은 미국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을 1896년에 입학했고, 영국역사상 첫번째 여의사는 김점동 보다 40년 먼저 태어난 엘리사벳 가렛 안데르손이다.

지금으로 보자면 페미니스트인 사업가 아버지는 딸들도 아들들만큼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어린 엘리사벳에게 사립학교 교육을 시킨다. 의대에서 여학생은 입학 할 수 없다고 하자 법으로 고소하겠다고 학교측을 위협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영국의 첫 여의사로 1865년에 졸업했다.

1790년경 태어난 마가렛 안느 벌클리는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었던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56년동안 남장을 하고 제임스 바리라는 이름으로 영국군 외과의사로 살다가 사후에야 여성인 사실이 드러났다.

14세기말 유럽에 의사 면허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독일에서는 여자도 의사면허를 받게 됐지만, 의과대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받지 않았고, 다른 유럽 나라보다 영국이 더 보수적이어서 여의사들의 넘어야 할 벽이 더 높았다.

이같이 여의사들의 힘든 길은 20세기 초반까지 계속됐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남자 의대생들이 줄어들면서 양상이 바뀐다. 영국의학협회(BMA)는 의대 입학에 대한 남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학회를 열기도 했다. 2001년 영국 의대 입학생은 여학생이 3355명, 남학생이 2320명이었다. 올해는 미국과 비슷하게, 영국 의과대학 입학 시험에서 여자와 남자 학생수가 비슷했다.

2000년도부터 올 해 까지 영국 여고생들은 남고생들보다 A-level(영국 수능) 점수가 더 높았고, 만 17세 나이에는 여학생들이 더 일찍 성숙하고, 의과 대학 선발위원회에 더 인상적인 인터뷰를 남길수 있다는 점들이 여자 입학생들의 수가 더 많은 이유다.

1993년에 졸업한 2507명의 영국의사들의 설문에 따르면 졸업 18년 후에는 87%가 영국 NHS 의사로서 일을 하고 있었고, 2차·3차병원에는 70%의 남자의사들이, 52%의 여자의사들이 근무했지만 분야는 달랐다.

외과에는 남자가 더 많았고, 소아과·산부인과·임상 종양학·병리학 그리고 정신과에는 여의사들이 더 많았다. 나머지 의사들의 대부분은 1차병원(general practice)에서 근무했고 여의사들이 더 많았다. 제일 큰 차이점은 'less-than-full-time(파트타임)' 근무였다. 설문에 답한 의사들은 대부분 40대 초반이었고, 63%의 여의사들은 파트타임으로 근무한다고 보고했다. 그에 비해 8%의 남자의사들만이 파트타임이었다.

대부분의 영국사람들은 18세에 독립을 해 대학 과정은 친구들과 자취를 하고 산다. 나도 대학생 때 여자 친구들과 학교에서 걸을 만한 거리의, 가든이 있는 방 4개짜리 월세를 얻어(한국에만 전세 개념이 있다) 4명이 같이 자취생활을 했다. 아직 십대인 우리는 졸업을 해서 어느 분야를 택할 것인지를 그때부터 논의했다.

전편에 설명했듯이 2000년 초반에도 1차병원 가정의학과 의사 수의 적자를 예측해, 정부와 의대에서 가정의학과를 선호하게끔 의대와 전문의 교육과정을 간소화했다.

나는 아직도 20년이 지난 그 때 친구와의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자취 집에서 친구는 그 다음날 병원에서 입을 파랑색 셔츠를 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외과가 좋다고 했더니, 친구는 졸업과 인턴 후 바로 가정의학과 3년과정을 할 생각이고, 결혼해서 아이 둘,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그리고, 자신은 남은 5일에는 이렇게 다리미질을 하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정말이다. 같이 살았던 세 친구들은 다 결혼해서 아이를 둘 씩 낳고 일주일에 이틀만 일을 한다. 그녀들은 밤 당직, 주말 당직 안 하면서 만 27세부터 1차병원 의사로서 3차 병원에서 일하는 나보다 10년동안 더 많은 월급을 받았다.

영국 NHS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조직으로 170만명이 근무한다. 그리고 모든 여직원들은 52주(1년)의 출산휴가가 보장돼 있다. 출산 휴가 전 일주일 일을 했든, 파트타임이었든 이는 산모에게 주어진 자격이고 출산 후 고용 보장과 원한다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12개월 이상 근무한 산모에게는 출산휴가비가 나온다.

병원에서는 첫 8주는 월급 100%, 나머지 18주는 50%를 지급한다. 이 밖에도 나라에서 모든 근로자 산모에게 주는 출산급여(Statutory Maternity Pay)가 10개월까지 610파운드(91만원)씩 매달 나온다. 12개월까지 출산 휴가를 이용하는 산모들은 마지막 2개월은 월급이 없다.

이 출산휴가의 모든 혜택은 아이가 일찍 태어나거나, 24주후 유산, 아니면 사산을 해도 똑같이 받는다. 아이를 법적으로 입양을 해도 출산 휴가와 급여를 똑같이 받는다.

2015년부터는 영국은 북유럽을 따라 아빠도 같이 출산 휴가를 나눠 쓸 수 있다. 엄마가 아빠보다 월급이 더 높은 직업이면, 아빠가 휴가를 쓰는게 경제적으로 더 유리할 수가 있다. 영국 모든 전문의 교육을 하는 병원에서는 육아보육원이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6시 30분까지 생후 0개월부터 만 5살까지 아이들을 받는다.

여자가 제일 적은 외과에서도 지난 10년동안 나는 선배와 동료들이 병원과 정부의 규칙안에서 외과전문의 교육 과정 중 아이들을 출산하고, 일년씩 쉬고, 다시 복귀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선배 중에는 아이 셋을 낳고 교육과정이 훨씬 더 느려졌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충분히 자기 몫을 하고 수술하는 외과의도 있다.

처음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여자 선배들이 로테이션으로 병원을 옮겼을 때 아직은 옛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 교수들이 왜 자신의 팀에 파트타임 전공의를 보냈느냐며 외과에서 파트타임이 가능하냐고 항의를 하자, Training Programme Director는 우리의 법적 의무라는 이야기와 함께 풀타임 전공의들과 똑같은 교육을 안 시키려면 아예 전공의를 모두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트타임 교육은 언제든지, 인턴부터 교수까지 가능하다. 출생뿐만 아니라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도 포함된다.

같은 학력과 의과대학교 교육량, 그리고 전공의 교육과정을 다 밟는대도, 출산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 의사 수가 두배가 필요하기에 여의사 수 증가에 대한 우려를 담은 신문 기사들이 가끔 나올 때도 있다. 숫자로만 의사들의 가치를 보고, 진료의 질은 고려하지 않는다. 영국 여의사들은 환자 불만으로 인한 고소를 남자의사들의 반도 안 받는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뿐 만 아니라, 현재 과학은 정자 없이도 줄기 세포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아직은 출산 가능한 나이의 여자만이 지니고 있는 자궁이 필요하고, 게다가 제일 건강하게 출산하는 연령층은 노동시장에서 제일 많은 일을 하고 경력의 사다리를 오를 때와 맞물린다.

대한민국은 출산율이 1.17로 16년간 제일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으며, 그에 비해 영국은 1.83이다.

영국정부 통계에서는 저출산율의 제 1원인은 노동시장에서 온다고 한다. 고용 불확실성이나, 경력 단절 및 승진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생각에 고학력 여성 뿐만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는 여성들도 출산 후 상황을 걱정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무시간·출산휴가·출산 후 고용 보장·파트타임 근무·육아보육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리 여러 분야에서 노력해도 BBC에서도 보도했듯이 한국은 저 출산율로 인해 세계에서 제일 첫번째로 멸종위기에 놓일 것이다.

나의 지인들 중에도 한국에서 여자·남자 의사들이 결혼을 했을 때, 남자와 같은 근무시간, 같은 당직, 같은 소득으로 집안일과 육아, 부모 및 시댁일을 더 맡아 해야 하는 여의사들의 사회적 현실을 많이 보았다. 출산율이 왜 낮은지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