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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차별없이 건넨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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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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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코클리닉봉사회

의사·치과의사·간호사·약사·통역사·의료 행정가 등으로 구성돼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을 중심으로 영세한 규모의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천주교 춘천교구 사회복지회와 춘천시가톨릭의사회가 함께 진료 계획을 수립하면서 시작된 이 활동은 2003년 6월부터 지금까지 월 1회 빠짐없이 지속됐다.

춘천에서 두 시간 여 거리의 포천까지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 예리코클리닉봉사회 회장 한우석 원장(한베드로치과의원)과 진료부장 안정효 원장(안정효내과의원)을 만나 15년동안 이 일을 지속해온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처음에는 가칭 '가산이주노동자 무료진료봉사팀'으로 천주교춘천교구 솔모루성당 가산공소(현 가산성당/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소재)내 가산이주노동자센터에서 천주교 춘천교구 사회복지회와 춘천교구가톨릭의사회가 주도해 간호사·통역사들과 함께 진료를 시작했다.

▲ 나란히 선 안정효(사진 왼쪽)·한우석 원장.

의사 6명, 간호사 3명, 지원 인력 6명으로 구성된 진료팀은 외국인근로자 56명을 첫 진료했다. 2014년 1월. 외국인 무료진료팀의 이름을 예리코클리닉봉사회로 정하고 회칙을 제정했다. 의사 14명, 한의사 3명, 치과의사 3명, 간호사, 약사, 통역봉사자 등 회원수 41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금까지 월 1회 가산 이주노동자센터에서 무료진료를 실시해오고 있다.

춘천에서 포천의 외국인근로자들을 돕는 일은 가톨릭의사회 내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부터 시작됐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자 했던 춘천의 의료인들은 지금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곳이 어딘지를 물색했고, 포천의 외국인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판단했다.

"경기도 지역 동부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죠. 포천 지역에도 영세한 가구공장이 많이 밀집해 있어 외국인근로자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외국인들을 돕는 단체도 마땅히 없는 실정이었고요. 작년 기준 포천시의 외국인근로자 대한민국 등록 인원은 1만 2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근로자로 등록하지 않은 불법체류자들을 감안하면 꽤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있는데, 실제로 의료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죠."

필요한 곳부터 돕자는 마음이었다. 포천 솔모루성당의 다목적홀을 빌려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열다섯 명 남짓 의료진은 두 시간 거리를 달려가 성당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필리핀·인도·스리랑카·몽골 등에서 건너와 일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던 외국인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가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9년 전쯤이었을 것 같은데, 두 시간 넘게 가는 길도 너무 힘들고, 제대로 된 장소도 없는 데다가 장비도 미흡하잖아요. 현실적인 효과에 의문이 생기면서 포기할까도 고민했습니다. 그때 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수녀님이 그곳으로 가서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위안이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오히려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한창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현장으로 와서 돈봉투를 주려 했던 할머니도 기억난다.

"한국전쟁 직후 독일 의사들과 오스트리아 의사들이 무료진료활동을 나왔을 때,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돈봉투를 건네셨습니다. 옛날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요. 포천 외국인근로자들에게도 저희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외국인 환자들을 스스럼 없이 대해주는 예리코 회원들.

활동 초창기부터 포천 보건지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치과 장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도 내주었으며 보건소의 직원들은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해 예리코클리닉봉사회 활동을 지원했다. 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는 엑스레이 기계나 초음파 기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안정효 원장이 깨달은 것은 이런 활동이 누구 한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여러 명의 마음이 모아졌을 때 더 환하게 빛을 발했고, 더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었다.

예리코라는 이름에 담긴 특별함

춘천에서 포천을 오가는 것도 흔치 않지만, 가톨릭의사회에서 주도한 활동에 비종교인이나 개신교 신자도 함께한다는 사실도 흔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예리코라는 이름에 담긴 특별한 의미 덕분이 아닐까. 한우석 원장이 예리코라는 이름에 대해 설명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무대는 예리코로 가는 길입니다. 착한 사마리안인은 책임감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차별 없이 손을 건넵니다. 근본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의사의 사명감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나그네가 도중에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지만, 유대인과 적대 관계인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 가축에 태워 여관집 주인에게 돈을 주고 그를 부탁했다. 예리코는 신약성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곳으로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종교와 무관하게 아픈 사람을 누구나 치료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극히 도움이 필요한 순간 유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면서 비로소 이웃이 된다.

"이웃이 누구입니까? 내가 돕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이웃이죠.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웃을 만드는 보람이 매우 큰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경제적 이익도 없는 데다 몸은 고되지만, 이웃이라는 관계 형성은 큰 힘이 됐다. 회를 거듭할수록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처음엔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던 외국인 환자들도 아는 척 해주며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예리코클리닉봉사회는 김남호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내과의사 김남호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평생 청빈과 청렴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으며 정성을 다해 인술을 베풀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로 의료 계통의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이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을 위해 사용해주길 바라며 100억원 전 재산을 쾌척, 김수환 추기경이 그의 유지를 실행해 김남호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그의 세 아들은 모두 의사가 됐는데, 막내아들인 김창덕 교수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라파엘클리닉의 진료부장으로 활동중이다. 예리코클리닉봉사회의 롤모델이 바로 라파엘클리닉. 2017년 7월에는 라파엘클리닉의 지원을 받아 가산지역내 외국인 근로자들의 종합검진을 실시했다.

예리코클리닉봉사회는 시설과 체계를 더 잘 갖춰 나가고자, 지금 활동 중인 성당 옆으로 별도의 건물을 지어 이름에 걸맞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사명감을 갖고 외국인노동자의 진료기회 확대를 위해 더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검토중이며, 한달에 두 번으로 활동을 늘리고자 한다. 의정부시의사회나 의정부성모병원팀과도 협업하는 방안도 논의중이다.

"봉사활동은 좋은 노후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말 그대로 은혜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이보다 더 훌륭한 노후가 어디 있겠습니까."

안정효 원장은 그의 대학동기이자 친구였던 고 이태석 신부와 이메일을 통해 나눴던 대화를 기억한다. 

"방송은 망설여지지만 이곳(수단)의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풍족하게 살아가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가는 그곳(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고…."

이태석 신부처럼 예리코클리닉봉사회의 활동은 물론 사회의 어른이자 의사로서의 책임감, 이웃과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 한우석 원장과 안정효 원장에게 감사를 전한다.

글=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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