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가을이 오고 있다. 그것은 바람의 방향이나 온도보다 저녁 어스름의 빛깔과 농도에서 먼저 느껴진다.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는 하늘의 색깔은 다른 계절과 확연히 다르다. 구름의 윤곽이 부드러워지는 것도 하늘의 공기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해질 무렵, 핑크와 오렌지가 뒤섞인 하늘에 회색의 구름이 어우러진 모습은 나를 잠시 멈추게 한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다가 또는 저녁상을 치우다가도.

우리가 특별히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온다. 폭염도 가뭄도 장마도 해일도, 모든 자연의 변화 속에는 깊은 원리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흔히 오는 무서운 태풍도 적도 지방의 뜨거운 태양에너지를 극지방으로 분산시켜 지구의 온난화를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러한 기상의 변화가 늘 반복되던 규칙에서 벗어나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보통 장마가 시작되었던 6월 말에는 심각한 가뭄이 수십 년 만에 찾아왔다는 뉴스가 연일 발표되는가 하면, 뜨거운 햇살이 과일을 영글게 해야 할 8월에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일 년간 애쓴 보람도 없이 과일 농사를 망치게도 했다.

최근 카리브 해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미국 플로리다 주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일으킨 허리케인 '어마'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사이클론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래 지속되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태풍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태풍이 형성된 이유는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고, 녹은 빙하로 해수면이 높아져서 형성된 과다한 수증기가 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년 조금씩 더 높아지는 바닷물의 온도와 지금도 녹고 있는 빙하는 얼마나 더 무서운 재해를 앞으로 불러올 것인지 두려울 뿐이다.

인류는 약 15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시대에 불을 발견함으로서 음식을 비로소 익혀먹게 됐다. 불의 발견은 인간의 생활을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다. 나무와 돌의 마찰로 처음 발견됐던 불꽃은 천재적인 과학자 에디슨에 의해 1800년대 말 전구를 발명하는데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전기가 없는 세상은 한 순간도 상상할 수 없게 됐으니 최근 수백 년간 이룬 인류 문명의 발전은 과거 몇 백만 년 동안의 변화보다 훨씬 방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명의 발전은 자연 재해라는 무서운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징조는 이미 한참 전부터 있었지만 우리는 애써 모른 척 했을 것이다. 자연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조용한 신음 소리가 의미하는 결과는 위협적이다.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미국에서 만든 한 동영상을 보게 됐다. 약 이십년 전 미국의 Yellow Stone에 방생했던 14마리의 늑대가 일으킨 놀라운 변화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늑대 14마리를 Yellow Stone에 풀어 놓자 사슴은 늑대를 피해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그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사슴이 이동하자 풀들이 크게 자라고 사시나무와 버드나무 높이는 6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했다. 무성한 나무에 온갖 새들이 모여들었고 코요테를 사냥하는 늑대들로 인해 여우와 토끼, 쥐의 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변화가 강의 움직임과 모양을 포함한 지형을 점차 바꾸었다는 것이다. 강은 좁아지고 급류 지역과 웅덩이가 많아져 야생 동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고 멸종됐던 비버가 돌아오고 수달·오리들이 자리를 잡게 됐다.

늑대 14마리가 불러 온 이런 변화는 그동안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바꾸려고 했던 노력이 얼마나 의미 없고 잘못된 방향이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회복하고 결정짓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자연스러운 동물의 피라미드를 회복하는 것이 결국 자연의 모습을 정상적으로 복구시켜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은 지 삼십년이 훌쩍 넘은 낡은 아파트에 산다. 가끔은 하수구가 좁아져서 막히기도 하고 지하 주차장도 없어서 새의 배설물이나 낙엽으로 차가 더러워지기 일쑤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오래된 정원의 커다란 나무들이 나를 맞아주는 기쁨, 그 그늘이 내게 주는 안식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요즈음 아파트에 재건축 조합 위원회가 결성됐다는 소식에 언젠가 아파트를 허물 게 되면 커다란 나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

저 나무들을 이만큼 키우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햇빛과 비의 정성이 그리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가? 좋은 시설의 현대식 아파트에 사는 것이 그 나무들이 잘려 없어지는 것보다 과연 더 행복하고 꼭 필요한 일인지, 그 나무는 누구를 위한 나무인지 생각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너무 낭만적이다 못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사이로 날이 갑자기 짧아져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병원을 나설 때 이미 거리에는 어둠이 깊게 내려앉았다. 앞차의 후방 등만이 나의 귀가를 밝혀주는 쓸쓸한 퇴근 길, 오래 된 나무들이 나를 반겨주는 낡은 집으로 나는 간다.

애니메이션 토토로에 나오는 다정한 거목처럼 모든 추억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나무들은 집 앞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부디 그 나무들이 오래오래 내 곁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