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의협신문> 독자 여러분. 이번에 미국 의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게 된 양현식입니다.

저는 2009년에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공중보건의사 근무를 마친 후 2012년 도미해 신경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작년 7월부터는 행동신경학 펠로우(인지신경의학/신경정신의학)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의사 생활 경험은 공중보건의사 생활밖에 없었고, 또 미국에서도 3차 병원 수련의 생활이 전부인지라 저는 이 연재를 통해 두 나라의 현실을 비교하기보다는 제가 경험해 왔던 수련의 생활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학생시절 미국에서 실습을 두 달 하면서 느꼈던 점은 '아,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 양현식(하버드대학 브리검우먼스호스피털 신경과 전문의)

미국 동부의 대형병원이어서 더 그랬을지 몰라도 정신 없이 바쁘고, 약간의 권위주의도 있고, 당연히 상사 눈치도 보고, 정치적 계산도 하고, 너무 바쁜 일은 조금씩 다른 팀에게 미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오히려 그래서 해볼만 하겠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미국 의사 생활 6년차가 되어가면서 느끼는 것도 그러하다. 사람 사는 곳. 물론 외부인으로서 학생으로서 긴장 속에서 느끼던 것보다는 훨씬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지만 말이다.

이제 겨우 6년차, 미국 의사 생활에 대해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경험이지만 그래도 이번 편에서는 필자의 개인적 경험들과 생각들을 나누고자 하는데, 깊은 성찰이 없어 내가 놓쳤을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미리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의사로서 일하는 과정 중 가장 재미있을 때는 동료들, 선후배들과 같이 고민할 때이다. 병동 팀에서 여럿이 함께 일하거나 외래에서 교수와 함께 환자를 보면 정말 토론을 많이 한다. 이 환자의 이 증상과 이 검사결과가 무슨 의미인지, 다음 단계로는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말이다. 이러다가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면, 결국엔 교수가 원하는 대로 하게 된다.

최종 책임은 교수가 지니깐, 그리고 아무래도 더 잘 알고 경험이 많으니깐…. 하지만 그렇게 의견을 맞춰 나가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논리를 만들고 근거를 찾고 하는 과정이 지금 돌아보면 참 좋은 공부였던 것 같다. 또 토론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도 내가 예의 바르게 이유를 잘 댈 수 있으면 윗사람일지라도 자기 의견을 바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케이스 하나에서 후배 의사가 더 많은 시간을 쓴 결과 더 좋은 해결책을 가져온다고 선배의사의 경험과 가치가 무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현대의학 앞에서 겸손히 함께 성장해가는 이들과 함께하기에 일하러 나가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의사 생활의 꽃은 아무래도 환자와 만나는 시간들이다. 하지만 환자들, 좋은 환자도 많지만 소위 '진상' 환자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의학지식이 더 많은 의사에겐 시간이 무기다. 20∼30분이라도 자세히 진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진상 환자도 마냥 우기기가 힘든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의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한국에 비해 훨씬 긍정적인 것도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준 의사들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돈 많이 벌고 돈 밝히는 욕심쟁이가 아니라, 그 '악역'을 (당연하게도) 보험회사가 맡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의사들이 대중의 편에서 '탐욕스런' 보험이 적절한 보험혜택을 줄 수 있도록 보험회사에 전화도 하고 서류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의사들이 착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저 제도가 의사에게 시간을 허락하기에 한국의 의사들보다 훨씬 유리한 싸움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차원을 넘어서 대책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응급실 주취 난동이든, 혹은 감정이 격해진 입원환자 보호자의 난동이든, 위험해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code gray'가 발동되고 미식축구선수같은 건장한 무장 보안요원 5∼6명이 달려와서 난폭행동자를 제압한다. 아마도 조금 지나치게 과격한 공권력의 사회가 병원 속으로도 연장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병원 내 상황은 신속하게 통제된다.

하지만, 극단적인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심장외과 의사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의 아들이 진료실에 들이닥쳐 총을 난사해 숨을 거뒀다. 또 미국 의사들을 항상 불안하게 하는 의료 소송도 있다.

어떤 케이스가 소송이 걸리면 그 환자의 의무기록에 등장하는 모든 의료진을 그물망식으로 전부 소송하는 경우가 꽤 있어 필자의 동료 레지던트도 "지금 당장 치료하라"는 말을 응급환자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응급 진료가 필요하다"고 했음에도 소송이 걸린 사례가 있다.

결국 이런 의사-환자 관계의 어려움은 미국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것 같다. 사소한 다툼은 금방 통제되지만 오히려 더 극단적인 폭력 혹은 지나친 소송이 만연한 사회문화 말이다.

다음으로 고비용 의료제도. 사실 비싼 의료비가 전부 의료진에게 가는 것은 아니다. 환자당 수가가 비싸더라도 의사 한 명이 보는 환자 수가 적고 물가와 세율 등을 고려하면 외과계는 한국보다 수입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내과계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혹은 도시지역의 경우는 더 낮은 실질소득을 올리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면 그 돈은 다 어디로 갈까?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은 수많은 사설 보험들이 경쟁하는 시장이다. 보험별로 차이점이 상당해서 그에 따라 보험회사 운영 및 병원 행정 운영으로 의료비 중의 상당수는 비 진료 부문에서 소모된다.

또 미국의 약값은 자본주의 정신에 걸맞게 정부 통제가 전혀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의 세금으로 진행된 연구에 기반해 개발된 약은 외국에선 싸게 팔리지만 미국에서만큼은 제약회사가 부르는대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불해야만 한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GDP 대비 의료비용 등 여러 수치를 보면 미국 의료제도는 비효율적임이 분명한데, 어떤 분석기사에 따르면 그 원인은 가격 결정을 하는 시장이 왜곡돼 결국 지나치게 많은 병원/보험회사의 행정비용이 소모되고 또한 시장의 강자들이 되어버린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들이 너무 큰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일 듯 하다.

그렇다, 이 곳도 사람사는 곳, 건강권의 보장은 탐욕의 우선 순위는 아니었고,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지금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보험 제도가 탄생한 것은 아니었을는지. 모두가 알듯 미국은 의학의 천국일지는 몰라도 의료의 천국은 아니다.

마지막, 인종 차별. 최근 하버드 학부생 선발 과정에서의 아시아계 차별이 이슈가 되는 등 사회적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필자가 의사로 일하면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피해본 적은 아직 없다. 

필자가 한국 출신이라 무언가 못 해 본 적은 없고, 또 적어도 지금의 미국 동북부 대도시에서는 대놓고 하는 인종·성 차별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이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이 여러 인종이 많이 섞여 사는 진보적 도시라 그런 것일수도 있고, 말단에서는 못 느끼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유리천장이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다만, 많은 경우의 인종 차별은 생물학적 인종이 아닌 문화-언어 그룹에 따른 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인들의 지식과 능력을 자연스럽게 뽐내는 문화에 겸손이 미덕인 동양문화에서 자라난 이들이 들어오면 진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드러내는 방법을 잘 몰라서 별로 실력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가 쉬운 것 같다.

또, 영어가 자유롭지 않을 때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면, 기득권을 가진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끼리 어울리고, 고급 정보들도 그 안에서만 공유되며, 결국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은 소외되기가 쉬운 것 같다.

결국 분명히 인종 차별은 존재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피부색이 문제가 아니라 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이 공유해왔던 문화와 언어가 미국 기득권의 평가 기준에서는 인정되지 않기에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차별이 되는 것 아닐까.

필자는 이 글을 끝으로 그동안의 연재를 마무리한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우리가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날들이 언젠가는 오리라 소망해보며, 이번 연재 시리즈를 통해 짧은 글실력으로나마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게 해 준 <의협신문>과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하버드대학 브리검우먼스호스피털 신경과 전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