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 원장

※ 이 글에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을 읽은 분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화 되어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좀 더 잘 알려질 것이다. 진료실에서 치매환자와 그 가족을 많이 만나는 의사입장에서 대중들이 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오늘 본 97세 치매 할머니는 큰딸이 80세인데 이 큰딸이 초기치매 상태이다. 일반 가정 아니라 특수한 환경, 예를 들면 수감시설 이라든지 복지시설 같은 곳에서도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분들이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임상가로서 치매환자를 치료 하는 것만큼 이나 건강한 노년을 응원하는 부분에 열정이 많다. 위험인자를 지니고 있어도 치매 발현이 되지 않거나 더딘 경우도 많고 , 모든 치매환자가 망상과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을 통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본다.

과거 맹렬한 기세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 70세 김 노인. 25년 전 살인에서 은퇴 후 입양한 딸 은희와 함께 수의사로 성실히 살아왔다. 최근에는 일을 놓고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누리는데 젊은 시절 자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은 30대 박을 마주치게 된다.

직감적으로 이놈이 최근 이 지역에서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범인 동시에 자신의 딸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김 노인은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얼마 전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다)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하지만 어제일도, 방금 전 일도 알 듯 말 듯하고 자신이 키우던 개가 뉘 집 개인지 알지 못하는 김 노인. 약을 먹어야 하지만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몰라 달력 앞에서 하나하나 약봉지를 맞추어 보는 김. 딸 은희가 아버지 성격이 변했다며 울먹여도 도통 왜 우는지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날렵하게 생긴 박을 이기려면 상체훈련이라도 해야 하나 의욕이 없다. 식사 준비로 냉장고를 열어보아야 하나 두렵기만 하다. 낯선 길 위에 놓인 자신을 마을사람들이 경찰서로 데려다 준다. 벌써 세 번째라고 담당 경찰관이 싹싹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어떤 날은 청명한 하늘처럼 정신이 맑다. 이런 날에는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며 분주히 움직일 수 있다.

반전.

딸이라 여겼던 은희는 요양보호사이며 박을 살해하는 대신 은희를 죽이는 김노인. 자신이 키우던 딸은 온데 간데 없고, 새로운 연쇄살인범 박은 자신의 행적을 쫓던 형사임이 밝혀지며 김 노인은 공(空)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자, 물론 소설이라 구성과 내용이 의학적으로 알츠하이머병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환자들이 겪는 혼돈과 가족의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핵심감정, 즉 김 노인의 경우 죄책감이라는 커다란 감정은 망상이 되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소망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필자는 말하고 싶다.

감정에 얽힌 기억은 매우 오래간다. 의학적으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감정을 콘트롤하는 편도체는 긴밀한 관계이다. 따라서 감정을 타고 흐르는 기억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즐거운 감정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고 괴로운 감정은 괴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오늘 이글을 읽는 분들이여.

본인의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 쳐다보시라. 사랑·증오·감사·분노 등 어떤 감정이 가장 커다란지. 그리고 먼 훗날 백발성성 노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의 노인으로 남고 싶은지도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좋은 감정만 느낄 수 있겠는가.

혹자는 세상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되도록이면 나쁜 감정은 빨리 없애도록 하는 편이 좋다.

젊어서부터 고운기억과 사랑으로 뇌를 채운다면 힘든 세파와 고난도 즐거운 기억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나의 기억법과 너의 기억법, 모두 즐거운 기억법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