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지속 가능하려면
문재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지속 가능하려면
  • 장현재 서울시의사회 감사(서울 노원구·파티마의원)
  • 승인 2017.09.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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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부담-적정 보장-적정 수가 관건…의료이용체계 재정립 필수
고령사회, 입원 중심정책서 벗어나 예방·지역 일차의료 강화해야

최근 세계보건기구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OECD 35개 회원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이 남녀 모두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연구팀은 기대수명 1위로 손꼽은 원인으로 △교육을 포함한 사회적 자본력 향상 △의료기관 수 증가와 첨단 의학기술의 급성장 △낮은 체질량지수(BMI)와 혈압 △여성의 낮은 흡연율 등을 꼽았다. 경제 수준 향상으로 의식주의 질이 높아지고, 진료를 잘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2014년 연간 외래진료 건수는 14.9건으로 OECD 평균 7.0건의 두 배이고, 병원재원일수는 16.5일로 OECD 평균 7.2일의 두 배가 넘는다. 그렇다고 국민 1인당 의료비를 많이 지출한 것은 아니다. 한국 국민의 1인당 의료비는 2361달러로 OECD(평균 3689달러)의 64%에 불과하다.

정부가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경상의료비 중 정부 지원 예산 비율은 OECD 평균 73.1%지만 한국은 56.5%에 불과하다. OECD 평균 이하의 의료비와 정부의 적은 예산 지원 속에서도 진료는 두 배 이상 볼 수 있고, 기대수명 OECD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보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낮은 진료비 '한국형 의료제도' 뒷받침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한 '한국형 의료제도'가 가능한 배경에는 낮은 진료비가 뒷받침하고 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할 당시 보건사회부가 고시한 '진료수가기준과 요양급여기준'은 관행 수가의 55%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의협신문'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국내총생산(GDP) 세계 66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려다 보니 보험료는 적게 내는 대신 보장은 조금만 하고, 수가를 적게 주는 소위 3저(저부담·저급여·저수가) 제도로 출발했다.

연세대 연구팀은 2015년 건강보험수가의 원가를 계산한 연구결과, 전체 의료기관의 평균 추정 원가보전율이 69.6%라고 발표했다.

요양기관들이 원가 이하의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박리다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를 통해 진료량을 늘렸고, 약품 및 의료기기 구매 이윤과 비급여·선택진료제도·상급 병실료 등을 비롯해 식당·장례식장·커피숍·매점 등의 부대사업을 통해 원가 이하의 요양급여비로 인한 적자를 만회했다. 여기에서 남는 이윤으로 시설·장비·인력 등에 재투자하며 한국형 의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24.17%의 의약품 및 의료기기 구매 이윤(리베이트)을 불법 뇌물로 규정해 형사 처벌은 물론 요양급여비 지급 정지 및 환수, 최대 5배 과징금 행정처분을 했다. 원가 이하의 진료비를 벌충해 온 하나의 통로가 막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9일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에 편입시키고, 새로운 비급여 발생을 차단하며,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비급여 창구를 좁히겠다는 발표에 대해 의료계는 "원가는 보장하지 않은 채 보장성 강화 정책의 부담을 의료인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료계 내부적으로 비정상인 낮은 원가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하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문 대통령은 8월 31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보장성 강화 대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의료수가의 적정화가 동반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의료수가 적정화의 범위와 수준을 두고 의혹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건보재정 안정화 종합대책 '악몽'...정부 불신 여전

의료계는 2000년 의약분업 제도를 둘러싼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누적 적립금까지 바닥나는 재정 파탄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는 2001년 5월 31일 '건강보험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을 통해 ▲진찰료·처방료 통합 ▲주사제 처방·조제료 삭제 ▲차등수가제 ▲야간가산 시간 조정 ▲수진자 조회 ▲진료비 현지 심사·실사 강화 ▲청구대행 실태 파악 및 부조리 근절 ▲약품비 절감 등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수가를 2.9% 인하해 의약분업 수가 인상분을 대부분 회수했다.

2005년부터 비급여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료비·치료재료·약제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삭감했다. 말로만 보장성 강화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 절감 대책으로 불필요한 장기입원(요양병원 등), 과도한 외래진료가 발생하지 않도록 평가와 연계한 수가체계, 진료비 심사시스템 고도화 등 허위·부당 청구 차단, 사용량 등 약값 연동제 등 보험약가 사후관리 강화, 치료재료 재평가 등을 통한 가격 조정 기전 강화, 건강증진사업 확대 및 건강검진 사후관리 강화로 조기 발견 및 조기 치료에 따른 의료비 절감 등을 제시했다.

의료계는 재정 부담을 앞세워 진료를 제한하는 심사 삭감 정책을 펼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보장성 강화 대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저출산·고령화다.

통계청은 한국이 9년 뒤인 2026년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5년 현재 총인구는 4,970만 5,663명. 생산가능인구(15∼64세)에서 실제 생산이 가능하지 않은 15∼19세 인구 6.4%(317만 545명)를 제외하면 21∼64세 인구 66.5%(3,305만 9,329명)가 33.5%를 부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산가능인구 2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할 것으로 예상한 2036년은 실제 생산가능인구를 고려하면 몇 년 앞서 올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생들이 65세 노인이 되는 2020년부터 매년 100만 명씩 65세 이상 노인이 쏟아져 나오면 고혈압·당뇨병·심뇌혈관질환·호흡기질환 등 만성질환 진료로 인해 노인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의료는 물론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일차의료 살리고, 의료이용체계 확립해야

저출산·고령사회에서 의료계의 역할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영유아·청소년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 생산가능인구가 건강하게 경제활동에 참여토록 하며, 노인 인구의 건강을 유지해 경제활동을 연장하는 데 있다. 전체 인구의 건강 수준을 높여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고비용의 입원 치료 중심 의료정책에서 탈피, 예방과 관리를 통해 질병이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와 예방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확고히 정립하지 않으면 한국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케어가 5년 단기 대책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하려면 40년 전 설계한 저부담-저급여-저수가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바꿔 일차의료가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차의료의 자생력을 확보하고, 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의료서비스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정된 재원으로 3~4배 높은 의료비 지출을 감당할 수 없다.

동네 의원은 고혈압·당뇨병·심뇌혈관질환·호흡기질환 등 만성질환 예방과 관리 등 일차 의료 역할을, 대형병원은 중증질환과 입원 진료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가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불필요한 대형병원 이용을 줄이고, 한정된 보험재정과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하는 의료기관은 건강증진관리료·예방관리 수가·교육 및 상담료 등 적정보상을 하는 형태로 수가체계를 바꿔야 한다.

동네 의원이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질병 관리 사업의 주체로 참여해 일차의료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질병관리는 의료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의료까지 역할을 확장함으로써 지역사회 보건·복지 인프라에 대한 조정·관리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동네의원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교육부터 평생교육 과정에 일차의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동네의원에서 상급병원에 의뢰한 환자가 급성기 치료 이후 동네의원에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의뢰-회송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일차의료 의사와 지역 내 타 전문의 간 환자 의뢰-회송 체계를 마련, 지역사회 다양한 전문인력을 활용하는 횡적 연계·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한정된 보험재정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이다.

셋째,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외래진료 확대를 억제하고, 병상 수를 축소해야 하며, 경영이 어려운 중소형 병원이 퇴출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의료취약지에서 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병의원에 대해서는 취약지 수가 가산 또는 공공병원 전환을 통해 최소한의 건강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의료이용자의 무분별한 의료 선택권을 제어할 수 있는 기전을 만들어야 한다. 1~2차 의료기관에서 상급병원에 비해 저렴한 의료비로 충분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벼운 질환을 4~5배 이상 많은 건강보험재정을 쓰면서 상급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한정된 보험재정을 악화시키고, 다른 보험가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의료이용자의 인식 개선과 함께 보험급여 제외는 물론 공공자원을 사용하는 데 따른 페널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다섯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
2015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재정 현황을 보면 총지출은 48조 1621억 원으로 이 중 45조 7601억 원을 보험급여비로 지출했다. 나머지 2조 4020억 원은 관리운영비로 6233억 원, 사업경비 1765억 원, 사옥관리비로 300억 원, 타기관 부담금(건강보험심사평가원) 3500억 원, 기타 1조 2220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건보공단은 6개의 지역 본부와 178개의 지사를 운영하면서 직원수만 1만 3000명에 달한다. 2016년 정규직 1인당 평균 급여는 6277만 원으로 경영평가 성과급(135만 원, 2015년 기준)은 별도다.

수십 년 전 종이 고지서 시대에서 첨단 온라인 정보통신시대로 시대와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한 채 수십 년 전 업무를 답습한다는 것은 보험료의 가치를 훼손하고, 낭비하는 것이다.
여섯째, 민간보험과 건강보험과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 해야 한다. 전체 가구의 77%인 3500만 명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다. 가구당 월 평균 28만 8000원을 부담하고 있다.

건강보험은 필수의료의 보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개인의 선택의료 부분은 민간보험이 분담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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