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이번 여름은 무척 길었다. 땅을 태울 듯한 열기와 무섭게 쏟아지는 장마가 번갈아가며 전국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더위가 제아무리 길고 힘들었어도 말복이 지난 뒤에는 새벽녘의 서늘한 바람에 이불을 끌어당기게 된다. 이십 사 절기를 정한 조상들의 지혜는 정말 오묘하다.

어렸을 적 이맘때면 할머니는 내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시곤 했다. 그것은 지루한 여름의 끝을 예고하는 일종의 설레는 이벤트였고 엄숙한 예식 같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친 뒤 준비 된 쟁반에는 내 손바닥보다 큰 아주까리 잎사귀와 봉숭아 꽃잎, 백반 그리고 무명실이 있었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그 색깔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사실일까?' 나는 손톱이 천천히 자라서 꽃물이 남아 있기를, 그래서 첫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그날만큼은 곱게 두 손을 모으고 잠이 들었다.

백반 냄새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고 커다란 잎사귀에 밤새 꽁꽁 감겨졌던 손가락은 아침이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하지만 손톱을 물들인 그 색깔은 마술처럼 신기하고 볼수록 예뻤다.

지난 해 추석 무렵 지방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은 무척 차가 밀렸다.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돌아오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에 살았던 동네를 지나게 됐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 나는 길에 차를 세우고 예전에 살았던 집 앞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내가 살던 집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니 그때에도 이미 성인이 된 뒤였지만 골목길과 집의 정원은 기억 속의 그것보다 형편없이 작고 초라했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샐비어와 채송화, 수국과 칸나 등 많은 꽃들로 가득했던 정원의 모습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어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고 쓸쓸했다.

1985년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Back to the future'에서는 30년 후의 미래인 2015년에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한 장면이 아마도 100년 이내에 현실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30년 전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드론(drone)이 군사용에서 장난감 뿐 아니라 DHL에서 사람의 인력을 대신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또 구글과 테슬라의 합작으로 개발된 전기 자동차에는 인공지능 기능이 연결돼 스스로 길을 찾고 속도를 조절하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찾아서 틀어주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속도는 우리의 상상의 속도를 뛰어 넘고 있다.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 세돌 9단의 대결에서 알파고의 승리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로봇을 조정해 사람이 수술을 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됐고 로봇이 인간을 진단하고 치료할 날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됐다.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여로 주목된 염색체의 텔로미어(telomere, 말단 소체)의 역할은 세포의 노화와 생로병사에 대한 새로운 도전장을 던져 주었다. 또 최근에는 선천성 유전질환의 원인을 염색체 지도에서 확인해 그 부위를 제거함으로써 선천성 유전질환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인구를 구해줄 수 있다는 희망적이면서도 무서운 연구가 발표됐다.

히브리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뛰어난 능력이 노화와 신성의 영역에 도전할 머지않은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고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기술과 과학을 개발하고 그 결과 탄생한 인공 지능이 언젠가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어 신의 영역을 넘본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 과연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원시인 구역에서 온 주인공 존(John)처럼, 주인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는 아이폰의 'siri'를 보면서 나는 놀라움보다는 섬뜩함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오늘은 문득, 길었던 여름의 하루가 저물 무렵 마루 밑에서 들리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그리워진다. 그때에는 에어컨 없이 모기장과 선풍기만으로도 무더운 여름을 지낼 만했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인지 해마다 여름은 조금씩 더 길고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제는 아무도 봉숭아 꽃물을 들이지 않는다.

봉숭아 꽃물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많은 추억과 아름다움에 대한 안타까움 일지 모른다. 그것은 철없는 나를 한없이 받아주셨던 따뜻한 할머니의 품 같은 그리움이다.

그다지 시원하지 않은 에어컨과 가끔은 먹통이 되는 와이파이, 오늘 내가 불평하고 있는 문명의 산물들은, 수십 년 전에는 상상 속의 이야기였지만, 미래의 언젠가에는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추억의 한 장면이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내 기억 속의 여름 정원을 결코 지우지 않기로 했다.

그 정원에는 오히려 해마다 더욱 생생하고 화려하게 꽃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