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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계영배(戒盈杯) 정신'이 필요하다

의료계 '계영배(戒盈杯) 정신'이 필요하다

  • 변기용 조인정형외과 원장 (전 대한견주관절학회장)
  • 승인 2017.07.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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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 승자독식 위한 '몸집 불리기'경쟁 부작용 우려

병원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이 치열하다. 이는 비단 대학병원 만의 얘 기가 아니다. 최근 개원가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병상 수 확대와 MRI 첨단 고가장비 도입 경쟁은 마치 '승자 독식'의 전면전을 연상케 한다.

의료시장에서 무조건 승자가 되려고 하는 사활 건 경쟁은 반드시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일부에선 '경쟁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변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병실 확장과 최신 장비 도입으로 어느 정도의 환자는 늘겠지만 무한정 느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단기간에 병원의 몸집을 키우다보면 후유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경쟁적인 시설과 규모 확대는 자칫 경영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과잉진료와 인건비 절감, 저가재료 사용 등 의료의 질 하락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에는 국민들의 의료계 불신을 키우게 된다.

'승자 독식'을 위한 경쟁이 오히려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능력 이상의 과도한 비용을 치른 탓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거나 큰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평소 과욕을 경계하고 마음을 비울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결코 경매에 참여하지 말라. 혹시 경매를 피할 수 없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면 최고가를 정해놓고 거기에서 20%를 빼라. 승자의 저주에 대비하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워런버핏의 이 충고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과유불급과 일맥상통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란 술잔을 늘 옆에 두고 과욕을 자제하면서 재산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그 술이 밑으로 흘러내리게 만들어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계영배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늘 곁에 두었던 의기를 보고 난 후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계영배가 던지는 메시지는 7할이다. 7할이 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고 거기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나머지 넘치는 3할 이상은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라는 의미다.

요즘 개원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각하다. 의사가 되면 무조건 고소득 전문직종군에 포함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형병원이 하루 아침에 부도나는 것도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병실을 2배로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환자가 2배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소작농이 벼를 심는 양을 2배로 늘려도 수확된 벼의 양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병원간 지나친 경쟁은 일부 대학병원들의 공공성 보다는 '수익성'을 내세운 승자 독식의 '패권주의' 탓이기도 하다. 또한 의료수가 등 현실과 괴리를 보이고 있는 의료제도가 과잉 경쟁을 부추긴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대학병원의 경우 교육, 훈련, 연구보다는 병실 확장, 과잉검사 및 진료 등 수익 증대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술은 인술이라고 한 것은 무엇보다 환자 치료가 우선이라는 의미다. 의료업계의 '승자 독식'이라는 끝없는 욕심으로 사활 건 경쟁에 나선 다면 공멸만이 있을 뿐이다. 선현들의 '계영배 정신'을 각자 마음속에 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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