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나간 정신건강복지법 바꿔야"
"정신나간 정신건강복지법 바꿔야"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07.24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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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VS '인권' 충돌...강남역 살인사건 재현될 수도
서울지방변호사·신경정신의학회 22일 법률 개정 세미나

▲ 22일 열린 정신건강복지법의 바람직한 재개졍을 위한 세미나에서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왼쪽)과 제영모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해코지한다는 망상에 시달리던 조현병 환자는 정신병원을 나선 이후 약물치료를 중단했고, 걸어 다니는 흉기가 됐습니다. 이 조현병 환자가 꾸준히 치료를 받았더라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한 여성의 비극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의 범인인 A씨는 조현병 진단을 받고 2008∼2015년 총 4번의 입원 치료(총 19개월)를 받았다. 하지만 퇴원 이후 약물  치료를 거부하면서 망상 증상이 악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영모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은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은 환자의 인권과 건강권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라면서 "지난 5월 30일 시행에 들어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안 받겠다고 거부하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인권을 존중해 퇴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7월 22일 서울대 치과병원에서 열린 '정신건강복지법의 바람직한 재개정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서울지방변호사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전문가들도 "나오지 말았어 할 법안이 나왔고, 공청회나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법안이 통과됐다"면서 "조속히 재개정 하지 않으면 안되는 법률"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신체의 자유와 건강이라는 국민의 인권이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변호사들과 의사들이 계속해서 문제점을 연구하고,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잘못된 법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개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신건강복지법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과 자해와 타해의 위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만 보호 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가능하도록 입원 기준과 절차를 까다롭게 한 부분을 짚었다.
 
'전문의 2인 진단제도'에 대해 발제한 안준호 울산의대 교수(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보건복지부는 높은 비자의 입원율과 재원 기간 중앙값을 인권침해의 근거로 내세우면서 입원 기준과 절차를 까다롭게 했다"면서 "한국은 재원 환자를 기준으로 비자의 입원율을 산출한 반면에 유럽은 연간 입원환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단순 비교할 수 없고, 중앙값은 분포가 다르면 평균값을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통계의 오류를 들춰냈다.
 
"인구 10만 명당 정신과 입원율은 한국이 335명인데 비해 핀란드 1009명, 독일 989명, 프랑스 824명 등 외국이 2∼3배 높은 실정"이라고 밝힌 안 교수는 "잘뭇된 통계를 인용해 입원 기준과 절차를 까다롭게 해 기존에 치료받는 환자는 치료받기가 어려워져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정신요양시설 강제 입소는 인권 침해 문제의 핵심임에도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강제 입소를 허용했다"며 "약 3만 여명에 달하는 장기 입원과 입소 환자에 대한 대책 없이는 어떠한 대책도 무의미 하다"고 지적했다.

학회가 우려한 퇴원 대란이 벌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안 교수는 "많은 환자를 형식적으로 진단하도록 유도해 법 시행을 막거나 무력화함으로써 혼란을 최소화한 상황"이라며 "OECD에서 가장 열악한 수준의 인력과 재원을 가진 나라에서 선진국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고,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이상한 전문의 2인 진단제도를 시행함으로 인해 의료시스템을 더 악화시키고, 형식적인 시행으로 인권 보호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 정신건강복지법의 바람직한 재개정을 위한 세미나.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차기 이사장(왼쪼)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안준호 울산의대 교수, 윤동욱 변호사(법률사무소 서희), 이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율촌)가 토론을 펼치고 있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는 "정신건강복지법은 인권을 존중해서 입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증상이 심해져서 누군가 다치게 하거나 위험성이 명확할 때 입원 시키라는 비인권적 법"이라며 "자해와 타해의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이 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입원을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의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의사가 최대한 빨리 개입해 치료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 법"이라고 정리한 정 이사는 "환자 의견과 인권을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조기에 좋은 치료를 받을 권리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정 이사는 "보건복지부는 야간이나 주말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대해 입원 후 보완하면 된다고 유권해석을 했지만 법원은 법에서 규정한대로 입원 당시 증명서류를 갖추지 않은 채 입원시킨 것은 불법이라며 유죄판결을 내렸다"면서 "이 환자가 집에 돌아가 타인을 해한다면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법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윤동욱 변호사(법률사무소 서희)는 "치료를 위한 보호입원이나 동의입원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과 형사법 체계가 충돌하고, 입·퇴원 절차에 과다한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면서 "재개정안에는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청객으로 참석한 김기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법률안의 여러 문제점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제안한 뒤 "전문가단체인 학회에서 자해 및 타해 위험성 판단 기준을 비롯해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서울지방변호사와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대한정신건강재단이 주관한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을 위한 세미나 주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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