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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도티기념병원' 고맙습니다"
탐방"'도티기념병원' 고맙습니다"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07.2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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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수녀회, 가난한 이웃 위해 35년 소명 마무리
왼손 모르게 295만 명 진료..."자원봉사 의료진 감사"
▲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은 고아·노숙인·외국인 노동자 등 의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던 300만 명을 치료하고, 눈물을 닦아줬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손을 잡았다. 도티병원에서 태어난 새 생명은 8400명에 달한다. 폐원을 앞두고 환자들이 쓴 감사의 글이 병원 벽면을 가득 채웠다.<사진=김선경기자>

35년 동안 쉼 없이 진료실 문을 열어 가난한 환자들의 이웃으로 살아온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이 지난 6월 29일 고별 미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도티기념병원의 시작은 미국인이자 가톨릭 사제인 알로이시오 슈월츠(한국명 소재건·1930∼1992년) 신부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겠다"며 1957년 한국땅을 밟으면서부터. 모든 것이 무너진 6·25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거리는 고아와 전쟁 미망인이 넘쳐났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여러 나라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부산에서 시작한 보육공동체는 '소년의 집'의 모태가 됐다. 알로이시와 신부는 보육원 아이들이 공부를 통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초등학교에서부터 공업전문대학까지 교육기관을 세웠다. 부산의 작은 기적은 서울로 이어졌다.
 
▲ 1982년 6월 29일 도티기념병원 개원식. 왼쪽 첫 번째가 100만 달러를 기부한 도티 씨, 세 번째가 1957년 27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날아와 40년 동안 가난한 한국인의 이웃이 된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 다섯 번째가 도티 씨 부인이다. <사진 제공=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서울 소년의 집을 개원하면서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수용 중이던 800여명의 아이들을 맡게 됐습니다. 정신장애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아프면 공·시립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구걸해야 했지요. 속절없이 기다리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도 못한 채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돌아오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의 눈물을 지켜보던 알로이시오 신부는 골드만 삭스의 대주주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미국인 사업가 조지 E. 도티 씨에게 후원을 요청했다.
 
1982년 6월 29일 도티 씨가 후원한 100만 달러를 밑천으로 서울시 은평구 백련산 자락에 도티기념병원이 문을 열었다. 서울 소년의 집과 은평의 마을 생활자들은 물론 영양실조·결핵·홍역·간염 등을 앓고 있던 고아·행려인 등이 줄을 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병원비를 낼 형편이 없는 외국인 환자들이 발걸음을 했다. 99개국 환자 5만 2800여 명의 외국인이 도티기념병원에서 건강을 되찾았다.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내민 도티기념병원의 나눔과 사랑의 정신에 공감한 의료진들이 재능기부가 이어지면서 암 환자 치료는 물론 크고 작은 수술까지 이뤄졌다.
 
8400명의 신생아도 세상의 빛을 봤다. 세상의 따가운 눈총과 환경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려던 미혼모 5000여명도 품에 안았다.
 
35년 동안 외래 환자 210만 명, 입원 환자 85만 명이 발걸음을 했다. 
 
▲ 도티기념병원 설립과 지속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 고 조지 E. 도씨 부부의 장녀 안 마리 도티 씨와 손자 크리스토퍼 군이 폐원식에 참석했다.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대신해 유경촌 주교가 감사패를 전했다. <사진=김선경기자>
 섬김과 나눔과 치유의 기적이 끊임없이 이어진 35년 동안 한국은 가장 헐벗고 가난한 나라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최초의 나라가 됐다.
 
도티기념병원을 지원해 온 해외 마리아수녀회 후원자들은 한국의 경제 수준에 걸맞게 정부에 이 일을 맡기고 더 가난한 나라의 고아들과 빈곤 어린이들을 후원키로 공감대를 모았다.
 
도티기념병원에서 마지막 진료를 마친 최영아 내과 과장은 "죽을 때까지 요양이 필요한 와상 상태의 노숙 행려자는 공공의료의 영역에서 감당해야 한다"며 "이제는 공공의료가 그런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단계가 됐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는 가난한 이웃들의 몸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도티기념병원과 같은 병원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티기념병원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은 거의 의사소통이 안 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랜 세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들 편에 서서 묵묵히 사랑으로 자리를 지킨 의료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 폐원 기념식에서는 도티기념병원 김진호(정형외과)·이창효(소아청소년과)·박대원(산부인과)·조미선(마취통증의학과)·백광우(치과)·임근우(외과·전 의정부성모병원장)·오정성(산부인과)·최영아(내과·전 요셉의원 의무원장)·김정아(간호과) 씨를 비롯해 꾸준히 의료봉사에 나선 이원재(이원재치과)·이의석(유니언이비인후과)·이동호(연세안과) 원장이 감사패를 받았다. 사진은 2012년 열린 도티기념병원 30주년 기념식에서 자리를 함께한 의료진과 마리아수녀회 수녀들. <사진 제공=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도티기념병원의 시작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킨 권 글라라 수녀(마리아수녀회 서울분원장)는 "'가난한 이들을 최고로 대우하라'는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사랑과 정성으로 설립한 도티기념병원에서 수 많은 거리의 아동들과 부랑인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면서 "오랜 시간 많은 은인들의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과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마리아수녀회가 돌보는 꿈나무마을에는 약 500여명의 영아와 청소년들이 살고 있다"고 밝힌 권 글라라 수녀는 "도티기념병원은 문을 닫는다 해도 의무실은 예전처럼 의료봉사자들과 함께 꿈나무마을 아이들의 건강을 보살필 것"이라며 "재능기부를 원하시는 분은 의무실(02-351-2301)로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 도티기념병원의 35년을 지켜낸 마리아수녀회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폐원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한 시민과 함께 폐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사진=김선경기자>
도티기념병원이 폐원하던 날 유경촌 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와 배성룡 바오로 그리스도수도회 원장 신부를 비롯해 도티기념병원과 인연을 맺은 신부들이 참석, 폐원 미사를 봉헌했다.
 
폐원 기념식에는 조마리아 마리아수녀회 총원장 수녀·김우영 은평구청장·이순자 서울시의회 의원·김민기 서울의료원장·김현정 동부시립병원장·남민 서울시 은평병원장·박찬병 서울시 서북병원장·하현성 은평구 보건소장 등을 비롯해 500여 명이 참석했다.
 
유경촌 주교는 "주님께서도 내 자녀들아 수고했다. 고생했다. 할 만큼 했으니 미안해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며 도티기념병원 관계자들을 위로했다.
 
"도티기념병원의 정신과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의 마음 안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밝힌 유 주교는 "국가·지자체 등이 의료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도록 제도·법률적 노력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 도티기념병원이 폐원하던 날 유경촌 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와 배성룡 바오로 그리스도수도회 원장 신부를 비롯해 도티기념병원과 인연을 맺은 신부들이 참석, 폐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사진=김선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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