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원 국립암센터 교수
공자는 '중용(中庸)'이란 마치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막연히 양자 사이의 중간 어디쯤 있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그저 '무지의 산물'이다. 치열한 고민과 공부 끝에 양쪽의 논리가 맞닿는 칼날 같은 경계선 위에 서는 것이 중용이란 말이다.

양측의 논리가 서로 마주보며 달려와 맞부딪치는 칼날같은 경계선에 서려면 고민과 공부 역시 최대치에 달해야 한다.

박중원 국립암센터 교수(소화기내과)는 진료가이드라인을 제·개정할 때 늘 '칼날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쪽으로 삐끗하면 개별 환자의 특성을 무시하는 지침만능주의라는 오류로, 다른 쪽으로 삐끗하면 개별 환자 사례를 모든 것인양 보는 일반화의 오류로 떨어질 수 있다.

이렇듯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제·개정에 매달리다보면 '까탈스럽거나 고지식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가이드라인 제·개정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시점에서 의학이 제공할 수 있는 진료의 극단까지 고민을 밀어붙여야 진료의 최대치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무지해서 최대치의 진료옵션을 환자에게 주지 못할까봐 늘 무섭다. 가이드라인은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진료의 최대치를 구체화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의 진료를 다했다고 생각해야 직성이 풀린다."

우리나라의 다른 질환 관련 가이드라인보다 훨씬 빠른 2004년 대한민국 간암치료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배경이다. 미국의 국립종합암네크워크(NCCN) 가이드라인이 2002년 제정됐으니 대한간암학회의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빨리 제정된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최근 대한간암학회 회장에 취임한 박중원 교수를 만났다.

<일문일답>

대한간암학회 '간세포암종 진료가이드라인' 제정을 주도했고 현재 개정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일종의 표준을 만드는 일로 보편타당한 원칙과 개별 의사의 고유한 처방패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0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간세포암종 진료가이드라인' 제정을 주도했다. 당시 적잖은 의사가 가이드라인 제정을 반대했다. 가이드라인을 지침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지침이 아니라 말그대로 가이드라인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반드시 하나는 아니다. 가파른 경사로를 곧장 오르기도 하지만 좀 멀더라도 경사가 낮은 곳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이드라인이 지향하는 목표는 현 상황에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항을 알려주는 것이지 '이렇게 해'하는 지시나 지침은 아니다.

그래서 '간세포암종 진료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며 '최선의 방법(Best Option)'과 '차선의 방법(Alternative Option)'으로 다양한 길들을 모두 기술했다. 최근 미국간학회(AASLD)도 가이드라인을 이런 식으로 개정했지만 2004년 대한간암학회가 가이드라인을 정할 때는 처음이었다.

때때로 표준방식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가이드라인이라며 냉소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기 보다 의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주목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맞다고 봤다.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반론에 부딪쳐 꽤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가이드라인 제·개정에 매달리는 이유는?

모든 환자가 어떤 의사를 만나든 현재 제공받을 수 있는 보편타당한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혹시 내가 가진 편견이나 무지 탓에 내 환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편타당한 최선의 진료를 받지 못할까봐 늘 걱정한다. 대다수의 의사가 공감하는 보편타당한 진료를 가이드라인에 담아 환자는 최선의 진료를 받았고 의사는 제공했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가이드라인을 제·개정하면서 의학의 발전을 자극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논쟁이 붙는 과정에서 충분한 근거를 확보한 진료는 한단계 더 발전하고 근거를 찾지못한 진료는 퇴출된다. 현대 의학은 그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사실 가이드라인 제·개정은 의학 발전의 자연스러운 단면이다.

다른 분야보다 간세포암종 가이드라인 제정 시기가 무척 빠른 것 같다.

모든 암과 관련해 최고의 가이드라인으로 대접받는 미국국립종합암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이 2002년 제정됐다. 대한간암학회의 간세포암종 진료가이드라인이 2004년 제정됐으니 굉장히 빠른 편이다. 특히 다학제 진료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은 당시 한국이 유일했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은 대체로 내과 혹은 외과가 주도해 다학제적인 공감대가 부족한 개별 가이드라인만 존재했다. 미국간학회(AASLD)가 처음으로 다학제 가이드라인 제정을 최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처음부터 다학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간세포암종과 관련해서도 몇 번의 색전술(TACE) 시도 후 항암제 치료로 전환해야 할까 논쟁이 있다. 논쟁이 있다는 말은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아직 없다는 반증일 것 같다. 가이드라인을 개정할 때 고민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이다. 간세포암종 진료가이드라인에서 후향적 연구로 TACE 불응성에 대한 정의를 처음으로 제시하기는 했다. 후향적 연구인 만큼 근거레벨 '3' 정도에 해당하는 자료다. 한쪽에서는 레벨3 정도의 근거를 바탕으로 믿을 만하다고 했으나 반대측은 후향적 연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맞서기도 했다. 결국 지금까지 도출된 최선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자신의 경험에 비쳐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올 12월쯤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 단독투여와 넥사바, TACE 병용치료 효과를 전향적으로 비교한 연구결과가 발표된다. 어느 때 넥사바를 투여하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이로운지에 대한 연구는 아니지만 단독투여와 병용치료 중 무엇이 더 이로운지에 대한 근거는 얻을 것 같다. 지금까지 소규모 임상 2상 시험 결과가 발표된 적은 있지만 전향적인 3상 연구결과는 세계적으로 처음이라 관심이 간다.

현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색전술 시술을 6개월에 3회 이상 한 경우 표적치료제로 전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 것 같다.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정기적 색전술이 아닌 필요할때마다 하는 'On-demand'의 경우 색전술을 하고 보통 1∼3개월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종양이 생겼거나 아직 남아있으면 색전술을 다시 하는데 보통 세 번을 넘기면 종양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후향분석 결과 밝혀졌다. 하지만 후향 분석이라는 점에서 선택편의나 표본선정편파가 있을 수 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후향적 통계를 알려주되, 강하게 권고하지는 않았다.

색전술 실패 후 대안인 넥사바 투여에도 효과가 없는 경우 사실상 옵션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스티바가(성분명: 레고라페닙)' 허가는 반가운 소식일 것 같다.

스티바가 출시로 많은 간암 환자가 희망을 갖게 됐다. 진행성 간암 환자에게 넥사바를 처방하면 대다수가 넥사바가 듣지 않으면 그 다음 치료는 무엇인지 묻는다. 참 난감한 질문이다. 스티바가 출시로 이제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됐다. 환자는 1차 항암제뿐만 아니라 입증된 2차 항암제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스티바가가 실제 쓰이려면 급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학계의 입장이 중요할 듯 하다. 스티바가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간암환자에게 입증된 2차 항암제가 있는데도 급여를 미룰 이유가 있나. 스티바가 관련 초록을 보면 넥사바와 스티바가를 연속으로 썼을 때 환자의 중앙생존값이 26개월이었다고 보고됐다. 진행성 간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빠른 시일 내로 급여되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스티바가 주요 임상인 'RESORCE' 결과에 대해 설명하자면?

발표된 자료를 보면 중앙생존값이 10.6개월로 대조군 7.8개월보다 사망위험을 38% 줄였다. 무진행 생존기간은 3.1개월로 위약군 1.5개월보다 역시 길었다. 넥사바를 4주 이상 사용했는데 암이 진행됐거나 넥사바를 복용할 수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라 결과가 더욱 인상적이다.

현재 스티바가를 동정적 치료형태로 환자에게 투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10여명의 환자에게 '동정적 투여'를 하고 있다. 대상환자가 10여명에 불과해 통계 수치같은 것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임상현장에서 환자가 희망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본다. 치료제 효과와는 별개로 의사에게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스티바가로 환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이런 희망이 반영됐는지 동정적 투여 중인 환자의 순응도가 좋다.

최근 대한간암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대한간암학회가 간암연구회로 시작해 19년째를 맞았다. 한 단계 성숙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그동안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논쟁도 벌이고 토론도 하면서 학회가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들의 논쟁을 통해 근거 중심의 의학 체계를 더욱 강화했으면 한다. 다학제 학회인 간암학회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회원을 받아 학회의 규모도 키우려 한다. 젊은 연구자 교육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