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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시달린 전공의 자살...병원 6억원 배상

과로 시달린 전공의 자살...병원 6억원 배상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06.1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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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시간 쪽잠, 주당 100시간 근무 혹사
돌쟁이 남기고 투신...법원 "보호의무 위반"

 

▲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3월 공개한 전국수련병원 수련평가 설문조사 결과, 최저 1만 7000원 수준의 당직비와 주당 100시간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 12월 23일부터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시행됐지만 주당 80시간 근무시간 규정을 지키는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의협신문 김선경

과중한 근무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전공의 가족에게 보호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병원과 정부가 공동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전지방법원은 전공의로 근무하던 중 자살한 A씨의 부인과 가족이 B병원과 정부를 상대로 낸 10억 1578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2016가합105354)에서 70% 책임을 인정, 5억 8828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B병원 레지던트로 근무 중이던 2013년 9월 7일 오후 3시경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했다. 고인의 빈소는 2011년 결혼한 부인과 돌이 갓 지난 아이 그리고 모친이 지켰다.

고인은 2003년 의대에 입학, 2009년 졸업과 함께 B병원 인턴으로 입사했다. 평소 공부에 대한 부담과 유급에 대한 불안감으로 2005년 본과 1학년 때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진단을, 졸업반 때인 2008년에는 비기질적 불면증 진단을 받기도 했다.

인턴 수료 후 2010년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 2013년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고인은 2013년 5월 1일 B병원 내과 레지던트로 전공의 생활을 시작했다.

2013년 9월 7일 사망할 때까지 약 4개월 동안 대부분 병원 당직실에 24시간 대기하면서 근무를 계속했다. 틈틈이 잠을 잤지만 취침 시간은 3∼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불규칙했다. 4개월 동안 하계 휴가 5일을 제외하고 집에 들른 것은 손을 꼽을 정도였다.

호흡기내과·소화기내과를 거쳐 9월 1일부터 신장 내과 근무를 시작하면서 피로가 쌓였다. 그를 이끌어 줄 선배 레지던트가 없어 담당 교수에게 1대 1 지도·감독을 받았야 했고, 진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도 가중됐다.

경찰 조사 결과, 신장내과에 근무를 하는 일주일 동안 170번 휴대전화를 받았으며, 야간이나 새벽에 울린 전화는 44번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하기 3∼4일 전부터는 진료와 영어 컨퍼런스 발표가 겹쳐 거의 잠을 자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기 레지던트들에게 "수련을 받는 것이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다", "환자뿐만 아니라 회진이나 컨퍼런스 때문에 미칠 것 같다"는 말이 고인의 남긴 마지막 말이 됐다.

고인의 부인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 달라고 청구했으나 "고인이 스스로 사망하기 전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을 상실한 정신 이상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미지급을 통보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 역시 기각됐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 소송(2015구합65247)을 맡은 재판부는 "고인의 사망은 피고 병원에서 수행한 레지던트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했으나 기각, 판결이 확정됐다.

▲ 김소윤 연세의대 교수(의료법윤리학과)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2016년 수도권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곳 전공의 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공의 수련업무 현황 조사' 결과, 인턴의 평균 근무시간은 112.8시간, 레지던트 1년차 104.5시간, 2년차 104시간, 3년차 86.2시간인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은 병원과 정부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전지법은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을 저지른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2010두8553·2011두3944)을 인용, "피고 병원이 고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를 부여한 후 그러한 업무를 개선하기 위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아 고인이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우울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면서 "병원은 고인에 대한 보호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과실이 있고, 민법 제750조에 따라 고인 및 원고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 정부에 대해서도 병원의 업무를 지도·감독한 주체로서 병원과 공동으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병원은 '전공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과 대한병원협회가 제정한 '전공의의 표준 수련 지침'에 따라 전공의를 부조하고 보호할 법령상·조리상 의무가 존재한다"면서 "전공의의 수련시간과 휴식시간에 관한 지침 규정은 적정한 전공의의 근무환경에 대한 판단지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개월 동안 10일 간의 휴가기간을 제외하고 매일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며 근무하고,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지난 후에도 당직실에서 대기했다"고 지적한 재판부는 "최소한의 취침시간이나 휴식시간을 거의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다는 사정은 이 사고에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피고는 고인이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환자수 및 업무량을 배정했으면서도 업무량이나 인력 배치 등을 조정하거나 휴식 조치를 취하지 않아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고, 정신적 어려움을 인식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의 징후를 발견해 결과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면서 배상 책임에 무게를 실었다.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는 한국직업정보시스템의 일반의사 연 평균 급여(7714만 원, 월 642만 원)를 기초로 사고일부터 가동기간 종료일(2050년 2월 11일)까지 일실수입 총액을 9억 6820만 원으로 계산했다.

다만 과중한 업무가 힘들더라도 이겨내 발전의 계기로 삼거나 상급자 등에게 문제를 제기해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택한 고인의 잘못도 원인이 됐다는 점을 참작해 피고의 책임을 70%(6억 7774만 원)로 제한했다.  원고측이 주장한 9595만 원(장례비 1595만 원+위자료 8000만 원)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일실수입+장례비+위자료 합계 7억 7369만 원 가운데 원고측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미리 받은 1억 8541만 원(유족연금 1억 7236만 원+장의비 1305만 원)을 공제한 나머지 5억 8828만 원(부인 2억 7518만 원+자녀 3억 309만 원+모친 1000만 원)을 병원과 정부가 공동으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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