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바다가 들려준 말
청진기 바다가 들려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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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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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강릉에 갔다. 파란 바다가 눈과 가슴을 시원케 했다. 물비늘은 햇살을 받아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거렸다. 갯바위와 모래해안에는 쉼 없이 파도가 부딪고 있었다.

17년 전 이 도시의 한 종합병원 안과 과장으로 일했다. 의약분업 강행에 반발한 의료계의 파업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나는 나대로 수술환자에 문제가 생겨 심란하던 때였다. 그래서 당시엔 아름다운 바다의 정경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는지 모른다.

갈매기들이 무리를 이루어 앉아 있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어떤 녀석들은 바다에 슬쩍 몸을 담갔다 오곤 했다.

"쟤들, 의쟁투('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 준말) 갈매기들이다!"

갈매기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이 당시 수세에 몰린 의사들을 보는 것 같아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에 아내와 함께 한참을 웃었던 옛 추억이 미소를 짓게 했다. 기억의 꼬리를 물고 수술 후 갈등을 겪던 환자가 나를 고소했던 아픈 기억이 끝내 떠오르고 말았다.

"그러니까 본인은 의사로서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얘기죠?"
수사관이 내게 물었다. 피의자가 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고소된 상황이었다.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 차 있었다.

"요즈음 백내장 수술은 다 국소마취로 하거든요. 수술을 할 때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달라 그리 부탁을 했건만 수술대에서 벌떡 일어나질 않나, 아프고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 소릴 지르고 움직이는데 전들 어떡합니까. 그러면 수술이 잘될 수가 없거든요."

내 수술 술기가 부족한 것이나 수술과정의 문제에 대해선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고 환자가 협조를 잘 안 해줘서 수술결과가 나쁠 수밖에 없었음을 항변했다. 그런 식의 논리를 펼치면 나의 과실이 줄어들고 선처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요? 그럼 의사의 시술엔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군요. 좋습니다. 그럼 수술 도중 협조를 안 한 것이 환자만의 잘못인가요?"

수사관은 나보다 열 살 쯤 위로 보였다. 검고 투박한 안경을 쓰고 있었고 털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조금은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 그리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형사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이거 나를 완전히 죄인 취급을 하며 비웃는 건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환자가 협조를 안 하면 어떻게든 협조를 하게 해서 수술을 잘해드릴 책임이 의사선생님에게 있는 거 아니겠어요?"

마치 타이르듯 말하는 그의 얼굴에 '너, 세상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네……, 그렇죠."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수사관의 말에 동의를 해버렸다. 일관되게 진술하지 못한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우스웠다. 동시에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수사관을 쳐다보니 아까보다 얼굴의 미소가 더 뚜렷해 보였다.

'그래! 나 때문이구나. 결국 미숙한 나의 수술 기술, 환자의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해줄 수 있는 능력의 부족, 이 모든 게 나의 문제이지 환자의 문제가 아니구나.'
비록 고통스런 취조시간이었지만 끝날 무렵엔 깨달음으로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문의를 취득한 지 얼마 안 된 그때, 백내장 수술에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설펐다. 결국 불만을 가진 환자가 나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의 잘못을 빨리 깨닫고 환자 측과 대화로 풀어나갔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으면서도 환자 탓을 할 정도로 어리석었다. 성경에 남의 눈의 티는 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꼭 그런 꼴이었다.

병원에서, 가정에서 다른 공동체 안에서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나보다는 남을 탓했다. 그날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의 단점을 지적했고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대체 왜 저래', '직원들은 왜 저 모양이지' 한 적이 많았다.

언제 어디서든 나보다 타인의 문제를 발견하는데 민첩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게 문제가 훨씬 많았다. 내가 먼저 바뀌고 노력했다면 상황은 나아졌을 것이다. 내가 지혜롭지 못했고 너그럽지 못했으며 사랑이 적었다. 그렇다. 결국 나 때문이었다.

상념에 잠겨 거닐고 있는 내게 바다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 시절, 그 취조실에서 깨달았던 것 잊지 마, 문제는 대개 자신에게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도 항상 간직하며 살길 바랄게. 살다가 힘이 들고 외로울 때면 언제든 찾아와. 내 너른 품으로 네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줄테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그 도시와 병원, 그 때의 모든 사람들, 특히 수사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분주함 속에 잃기 쉬운 겸허하고 진실한 내 모습을 되찾고 싶을 때면 이 도시와 바닷가를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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