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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내 기억의 보물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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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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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 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기와집을 리노베이션 해서 만든 안동의 한옥 호텔이다. 안동댐의 수몰 지역에 있던 수백 년 된 고택을 옮겨서 지었다고 했다. 그곳에 먼저 다녀온 친구의 사진첩에서 본 기와를 얹은 담장과 처마 밑에 달린 풍경, 그리고 소박한 들꽃들이 나를 이끌어 안동으로 가게 했다.

예닐곱 채의 규모가 다른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 호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의 흙길을 걷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벚꽃은 아직 꽃망울만 맺혀 있었고 동양화에서 보았던 바로 그 매화가 고고하게 피어 있었다.

오르막길을 걸어서 도착한 한옥에는 슬리퍼 대신 두 켤레의 고무신이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키가 작은 나도 고개를 많이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미닫이 방문과 높은 문지방은 전래 동화 속의 집 속으로 들어 간 느낌이었다.

문지방 너머로 따끈하게 덥혀진 온돌의 장판을 보는 순간 내가 왜 그토록 한옥 집에서 하룻밤 묵어 보고 싶었는지 갑자기 그 이유가 생각났다. 그것은 추억 속의 어린시절 온돌방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단독 주택에 살았다.

넓은 마당에 넝쿨 장미며 목련이나 수국·회양목 같은 정원수와 대추나무·감나무가 가을이면 열매를 맺곤 하던 우리 집. 기름 보일러였지만 온돌을 놓았기 때문에 겨울이면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바닥에서 추운 손발을 녹이기 좋았다. 특히 장마철, 감기라도 걸렸을 때에는 온돌방에서 잠을 자야 몸이 거뜬해지곤 했던 생각이 났다.

추억은 우리 몸속에 바꿀 수 없는 유전자처럼 조용히 숨어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 불현 듯 갑자기 꿈틀거리며 살아나곤 한다. 요즈음 내 상념 속에 주로 떠올려지는 기억이나 생각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을 포함한 유년의 추억들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 감성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 시절 보고 읽고 느꼈던 것들을 통해 형성되고 성장한 것들이다. 그 시간 이후의 사회적 경험이 훨씬 많았지만 내 생각의 근간은 대부분 어린시절에 완성된 것이다.

그때는 과외가 법적으로 금지된 시기여서 방과 후에 부모님의 서재에서 이런 저런 책을 골라 읽는 재미는 꿀맛 같은 혼자만의 즐거움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여러 번 읽으면서 내가 스칼렛 오하라가 된 양 강한 자존심을 다져 보기도 하고, 헤르만 헷세의 <싯달타>를 읽으며 아름다운 운율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만화 캔디 시리즈를 읽을 때에는 또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컴퓨터가 없었으므로 숙제를 하려면 이런 저런 백과사전을 뒤져가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렇지만 나의 시간은 오히려 더디게 흘러갔으며 컴퓨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하늘과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돼서 나는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내 아이들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아이들을 학원으로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나는 과연 지혜로운 엄마인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내 아이들은 훗날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추억을 갖게 될 것인가? 고작 방과 후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집에서 레고나 컴퓨터 게임을 했던 것 밖에는 별로 놀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 그런데도 심심해 할 마음의 여유가 없이 자란 아이들. 좋은 책을 읽었지만 그 책들은 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위해 대부분 정해 준 것들이었다.

그들이 나중에 부모가 됐을 때 과연 어린 시절을 기쁘게 추억할 수 있을까? 집집마다 점점 외동이가 많아지고 아이들이 무엇인가 원하기 전에 부모가 미리 일일이 챙겨주면서 키워진 아이들은 오히려 자유에 목말라 한다.

과연 이들이 건강하고 독립적인 사람, 사랑이 많은 아이들로 자랄 가능성이 많은지 나는 이제야 뒤늦게 뒤돌아보게 된다.

만약 아이를 키울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그들을 망아지처럼 들판에서 자유롭게 놀게 하고 맨발로 흙을 밟게 할 것이다. 밤이면 은하수를 더 많이 쳐다보게 하고 별이 떨어지는 산 너머 마을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웃고 자주 안아줄 것이다.

비단 아이를 키우는 일만이겠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준비되기 전에 맞이했다는 것을 그 시간이 떠나간 뒤에 깨닫게 된다. 대학생 때에는 세월이 흘러 '불혹'의 나이가 되면 당연히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세상의 유혹들을 나를 사정없이 흔들었고 내 눈은 젊은 시절보다 더 초점이 흐려져 버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온돌방의 따스함이 내 몸뿐 아니라 내 마음까지 녹이면서, 내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소소한 추억들이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나를 키우고 만들어 주었음을 깨닫게 됐다. 평범하고 사소한 오늘의 지금 이 순간들도 이십년, 삼십년이 지나면 나에게 그립고 소중한 비타민이 되겠지? 이제는 많이 자란 아이들이지만 아직은 엄마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멀리 미국에 있는 딸에게 오늘은 이모티콘을 선물해볼까? 그리고 아들에게는 저녁으로 무슨 메뉴를 먹고 싶은지 전화라도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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