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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정신질환자 2~4만명 "갈 곳이 없다"
중증 정신질환자 2~4만명 "갈 곳이 없다"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05.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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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돌볼 시설·인력 없는데도 '정신건강복지법' 강행
신경정신의학회 "인권 침해...사법입원 도입해야"
▲ 2월 10일 열린 정신건강복지법 국회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는 신경정신의학계의 우려에도 법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5월 30일)으로 정신병원 입원환자의 약 25% 가량이 퇴원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역사회 돌봄 시설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준비 없이 법을 강행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5일 "정신건강복지법은 급격한 입법 절차를 밟느라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용할 지역사회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은 채 행정 퇴원을 조장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이 정책은 무늬만 선진화이고, 핵심은 모두 빠졌다는 점에서 다른 적폐와 유사한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정신보건법'에서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 두 개 중 하나만 해당해도 정신병원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5월 30일 시행하는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강제입원을 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강제입원 적합성을 판단하는 입원적합성 심사위원회를 신설하고, 공정한 판단을 위해 입원 2주 후 국·공립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2명에게 치료입원 진단을 받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퇴원해야 할 중증 정신 질환자(조현병·조울증·우울증 등)가 2만∼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퇴원해야 할 정신질환자를 돌봐야 할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은 <정신 질환자 서비스 구축 전략 보고서>에서 지난 2∼3월 전국 정신병원 7곳과 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 5곳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비(非)사회적 입원' 환자가 25.9%라고 밝혔다. 비사회적 입원이란 정신 질환 자체는 호전해 입원할 필요가 없지만, 주거·돌봄 시설 부족 등으로 병원에 머무는 경우를 말한다.

머물 곳이나 돌봐줄 가족이 없어 주거 치료 서비스가 필요한 퇴원 예상 중증 정신 질환자는 6084∼7871명으로 추정했다. 현재 주거 치료 서비스를 받는 환자는 2227으로 3857∼5644명이 갈 곳이 없음을 의미한다.

경기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지역사회기관의 수용정원은 1.4%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신건강증진센터의 등록관리율은 18.4%에 불과하지만 센터 전문요원은 한 명당 100명 가까운 중증장애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전문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병원 퇴원 이후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지역 정신보건센터나 주거시설 등을 준비하지 않은 채 법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라며 "정신질환자들이 적시에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인권 보호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원적합성위원회는 1년 유예된 상태이고, 그마저 서류심사가 중심"이라고 밝힌 신경정신의학회는 "2인 진단을 하는 국공립병원 의사가 부족하자 이를 민간전문의에게 맡기고 있다. 인권보호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핵심은 정신질환가 입퇴원 과정의 결정권과 함께 퇴원 이후의 삶도 국가가 책임진다는데 있다"고 강조한 신경정신의학회는 "외국에서 사법 입원 또는 준사법 입원의 방식으로 국가가 입원을 결정하는 이유는 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하고, 책임을 국가에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탈수용화로 인한 피해나 편견의 악순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사회 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시급하다. 이를 방치해 준비 없이 퇴원한 정신질환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사회적 편견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준비 없이 시행할 경우 책임은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됐다며 새 정부에 보고하고, 준비 없이 추진한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도 다른 질환과 같은 질환이고, 누구나 인생의 어느 특정한 시기에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고 밝힌 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을 앓을 때 보호받고, 치료받아 사회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 누구도 정신질환으로 인한 위험에 빠지지 않고 인권과 치료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상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함께 5월 30일 2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사법입원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권준수 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법개정 TFT위원장은 "인권보호와 탈수용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한국형 사법입원제도의 도입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정신보건법의 당사자인 환자·보호자와 함께 서명운동을 통해 전면 재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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