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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국립 한의대 설립의 두얼굴
[집중취재] 국립 한의대 설립의 두얼굴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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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한의대 설립을 둘러싸고 의협과 정부 한의계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국립대에 한의과대학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방 보건산업 육성 방안'을 마련한 것과 관련, 의협은 15일 성명을 내고 반대 입장을 재확인 했다.

의협은 이 성명에서 의료 이원화 고착 의료인력 과잉 양성 국민 의료비 증가 등을 반대 이유로 꼽았다
대한약사회도 여기에 가세해 의협과 같은 '절대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 국립 한의대 신설을 둘러싼 구도가 의 약계 대 정부 한의계 양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의과대학 하나가 새로 생기느냐 마느냐의 수준의 차원을 넘어, 의약분업 이후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의 반발과 집단 폐업, 보험재정 파탄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추진 등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불거진 복잡미묘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에 충분하다.

국립 한의대 설립 추진 배경
지난 2001년 10월 11일 한의계 최대 행사인 국제동양의학 제11차 학술대회(ICOM)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의학 관련 시책을 보강하고 연구활동을 지원하는데 정부가 최대한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특정 의료분야의 발전을 위해 발벗고 나서겠다는 입장을 대통령까지 나서서 표명하는 다소 이례적이었던 당시 '사건'은, 이보다 약 일주일 앞선 10월 5일, 교육인적자원부가 국립대학 내에 한의과대학을 신설하기 위해 신청서를 접수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게 했다.

김 대통령의 ICOM 연설 이후 정부가 국립 한의대 설립 움직임을 구체화시키자 의협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의협은 성명을 내고 무엇보다 2002년도에 의대 한의대 신설과 정원 증원을 불허하겠다던 정부 방침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린 것을 크게 성토했다.

또 한국 의료계의 지향점인 의료일원화에 정면 역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내 주요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고 "한의대 신설이 국민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들어 대국민 설득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도 강경해 10월 12일 '전통의학 발전을 위한 정부포럼'에 참석한 이경호 차관이 "국립 한의대 신설은 의대정원을 동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의학을 국제적인 정책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노력"이라는 다소 앞뒤가 안맞은 발언을 하면서 까지 한의대 신설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의협과 정부가 치열한 공방을 벌인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 한의사협회가 99년부터 국립 공주대학교의 한의학과 설립을 정부에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 문제가 졸속 특혜 시비로 번져 여론이 악화되자, 다급해진 한의협은 18일 "국립한의대 신설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국가적 차원의 한의학 국책교육의지의 천명이며 상징적 조치"라며 정부와 입장을 강변하고 나섰다.
 
결국 국립 한의대 설립 문제는 서울대의 반대의사 피력, 의협의 대대적 홍보에 따른 여론 악화, 임기말 정권의 심리적 부담 등이 작용해 흐지부지 잦아들게 됐다.

김성순 의원의 '한의학 육성법안'
그 후로 한동안 잠잠하던 국립 한의대 신설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2002년 9월 보건복지부가 민주당 김성순 의원의 '국립한의과대학 설립에 대한 검토의견'에 대한 답변에서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조해 국립한의과대학이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예정이다"고 밝히면서 부터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건복지부의 이같은 입장은 보다 더 구체화됐다. 새로 취임한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은 4월 4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주요 정책과제별 추진계획을 밝히면서, 한방 보건산업 육성방안으로 국립한의대를 설립하겠다고 못박아 사실상 국립 한의대 설립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중 하나로 완전히 굳어졌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한의계는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지난달 29일 열린 한의사협회 제48차 정기총회에서 '서울대 한의과대학 설치'를 올해 추진할 7대 사업 중 하나로 선정한 것만 봐도 한의협이 국립 한의대 설립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짐작케 한다.

정부의 한의계 편들기
한의협의 기대는 단순히 국립 한의대 신설에 국한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기회를 한의계 대도약의 발판으로 삼고, 내친김에 한의계를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중심축에 올려 놓자는 원대한 포부까지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한의계의 이같은 대담한(?) 믿음의 배경에는 정부의 노골적인 '한의계 밀어주기 정책'이 버티고 있다.

지난 4월 10일 김화중 장관이 한의사협회 안재규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보여준 한의학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 표명은 한의계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국립의료원 한방부를 국립한방병원으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힌 김 장관은 이날 "한의약청 설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한의학을 한국의학으로 육성시키기 위해 한의학육성법을 제정, 한의약종합정보센터와 한약진흥재단 설립하고 2015년까지 전국 7개 지역에 1조5,000억원을 들여 한방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이는 과거 어느 정권도 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전폭적인 지지 그 자체다.

의료인도 아닌 약사들이 의료일원화를 목놓아 주창하며 국립 한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나선 것도 정부의 일방적인 한의계 편애로 인해 자칫 약대 6년제 등 한의계와 얽혀 있는 현안 다툼에서 자신들이 밀릴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갑자기 한의학의 세계화를 외치며 한의계를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것일까?
의료계의 한 인사는 이같은 상황과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약분업 사태로 의사들이 전면 파업을 하고 정부를 궁지에 몰아 넣은 사건 이후 의협은 완전히 정부에 찍혀 버렸다.

그 이후 정부는 의사를 희생양 삼아 보험재정 파탄을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비교적 보험재정을 건드리지 않고 행해지는 의료행위, 즉 한방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이다.

즉 보험 재정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 호주머니를 더 털어보겠다는 발상이다 요즘 방송 등 언론에 과거 어느때 보다도 한방의 효능을 홍보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이같은 정부의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의협이 2001년 10월 일간지 광고에서 "보험진료를 많이 하는 의사는 줄이고 보약 등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한의사는 늘리고 결국 국민 부담이 더욱 늘어납니다"라고 꼬집은 것도 이 인사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
한의계를 일방적으로 편들어주건 말건 그것은 정부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국립 한의대 신설 문제 만큼은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의 정연한 논리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실현이 불투명하다. 국립 한의대를 설립려면 의료일원화의 당위성을 뒤엎을 만한 논리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불변의 진리'에 가까운 의료일원화에 반할 논리는 현실적으로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속셈은 달라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어찌됐건 의협과 뜻을 같이 하는 약사회의 존재 역시 정부에게는 큰 압박이 아닐 수 없다.

보험재정 파탄과 국민 의료비 증가, 의료일원화와 적정 의료인력 수급 등 의료현안과 더불어 의협 한의협 약사회 등 이익단체간에 얽히고 힌 정책 노선, 여기에 새 정부 출범과 의욕적인 개혁정치가 어우러진 가운데 불거진 국립 한의대 신설 문제.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 안팎의 시선은 어느때 보다도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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