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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관리 'GMC'…소환 이유 대부분 '소통 실패'

의사 관리 'GMC'…소환 이유 대부분 '소통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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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0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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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미의 영국의사로 살기 ②
박현미(재영한인의사협회장·외과전문의)

<박현미의 영국의사로 살기>를 연재합니다. 이 칼럼은 의료선진국의 의료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국내 의료 현실에 대한 문제점 인식과 개선방향 도출하며 보건의료 정책 개발을 위한 의사 사회내 인식 제고를 위해 마련됐습니다.

필자는 버밍엄의대를 졸업(2002)한 후 노팅엄대학병원 외과 교수(2008∼2012)를 거쳐 2012년부터 현재까지 노스 트렌트 지역 Higher General Surgical Training에 재직하며, 재영한인의사협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1553년에 설립된 고등학교는 주중에 입는 정장과 주말에 입는 정장 교복이 달랐다. 지금은 여학생들도 바지 슈트가 허용되지만 1995년도에는 치마가 규정이었고, 하필 그 해 15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 박현미(재영한인의사협회장·외과전문의)

난생처음 본 하얗고 딱딱한 서리가 카펫처럼 파란 학교 잔디를 덮었을 때 스페인에서 온 나는 치마가 너무 추웠다. 스키장이 없는 영국에는 서리와 눈은 나에게는 대퇴골경부골절과 콜레스 골절의 의미밖에 없다.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자란 나에게 추위는 낭만도 얼어붙게 했다.

1997년 1월 버스를 타고 주말 교복 치마 슈트를 입고 미슐랭 인형처럼 돌돌 싸매고 버밍엄대학 인터뷰를 갔다.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사람을 돕고 싶다고. 하지만 심사관의 첫 질문은 소방관이 되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의학 기술로 환자를 살리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면접 준비를 위해 읽었던 과학잡지에서 본 태아의 손가락 형성과 p53 유전자 역할에 대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나의 손가락을 크게 펴고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봄,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의대 입학 후 깨달았다. 피펫은 나의 친구가 아니라는 걸. 나의 갈 길은 연구실이 아닌 수술실이었다.

1997년 여름 대학 입학 준비 중에 영국은 눈물바다가 됐다. '국민의 공주'로 사랑받던 전 왕자비 다이아나의 교통사고 사망사건은 런던을 꽃바다로 만들었다. 대서양 스페인 섬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런던 도착 후 버킹엄궁을 들리고 기차를 타고 버밍엄 시에 도착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영국 모든 대학은 9월에 Fresher's Week를 시작한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 학교 안내를 받고 학생증·도서관 카드·학생 기차 카드 발급·헬스장 가입·학생 은행 계좌 개설 등을 이 기간에 완료한다. 여러 동아리의 선배들이 신입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매일 밤 환영 파티가 열린다.

티셔츠 앞뒤로 이름을 크게 적고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음악과 알코홀 속에서 친구들을 만든다. 남아선호사상이 대단하신 (아들만 일곱을 둔)할아버지께서 이름을 안 지어 주셔서, 동네 할아버지가 막걸리 한 대접에 지어준 현미라는 이름은, 영국인들에게는 그 때도 어렵고 지금도 어렵다. 현대차가 각 대륙에서 제각각으로 불리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스페인에서는 'H'는 무음이라 주로 '윤미'라고 불렸고, 경상도 출신 아빠의 현지 친구분들은 '핸미', 동생 친구들은 성별 상관없이 내 이름이 '누나'인줄로 알고, 영국에서는 '하윤미'·'하윤마이'·'휸미'·'휸마이' 등으로 불렸다. 의사가 된 후 환자들은 성을 부르기 때문에 참 편했는데, 최근에는 BBC에 자주 나오는 박 씨가 나의 고모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의대·치대·간호대·물리치료학과 등의 모든 의료 관련학과 학생들은 입학 시 HIV·Hepatitis B&C·Rubella·Measles·Varicella 등의 감염 평가와 BCG 반흔 평가, 그리고 전과기록조회 등을 거치게 된다. 이 검사를 모두 통과해야 수업을 받을 수 있고 검사는 대학이나 병원에 따라 1∼2년마다 반복된다. 실습 중 주사침 찔림이 발생하면, 환자와 함께 사고 학생도 감염평가를 받는다.

나 역시 외과 의사라 검사를 많이 받았다. 전과기록조회는 의사가 된 후에도 3년마다 받아야 하고 이는 영국 어느 병원에서나 똑같이 시행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 의대생이 여자친구 폭력 사건 후에도 계속 의대를 다닐 수 있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한국 환자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최초의 의대 (1123년 London St Bartholomew's Hospital, 셜록 홈즈에 많이 등장)에 비하면 많이 어린(?)편이지만, 250년 역사를 가진 버밍엄의대는 입학 정원이 400명인 큰 규모의 대학이다. 생리학·의학 분야 4회를 포함해 총 11차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그 중에는 유전자 나선형 구조를 발견한 나의 고등학교·대학 선배인 Maurice Wilkins도 있다.

영국의 의대 학생 수가 두 배로 증원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European Working Time Directive에 따라 주당 근무 시간이 48시간으로 줄어든 것이 원인이었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스페인 트럭 운전사들의 안전 및 교통 사고와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제정한 법이 유럽 전체로 확대되면서,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들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이 법을 따르게 됐다. 내가 인턴이었던 2002년도는 아직 이 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당직이면 주당 91시간의 일을 했다.

그러나 근무 시간을 반으로 줄이면서 동일한 환자 수를 변함없이 안전하게 보살피려면, 결국 의사 수가 두 배가 돼야 했다. 영국 연방에서 이주해 오는 외국 의사만으로는 필요한 의사 수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영국 정부는 48시간 근무법을 실행하기 약 10년 전부터 의대생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주당 48시간 근무가 전공의 교육과 삶의 질, 그리고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추후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영국 의대 교육의 목표는 안전하게 인턴 1년차를 배출하는 데 있다. 의대마다 교육과정이나 교육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종합의료협의회(GMC)가 정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1858년에 설립된 GMC는 모든 영국 의사들의 공식 등록을 관리하는 공공 기관이다.

의사 등록을 관리하고, 필요한 경우 의사면허를 정지시키거나 박탈함으로써 '대중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증진 및 유지하는' 기관이다. 영국에서 근무하는 모든 의사는 매년 425파운드의 회비를 내야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의대에 입학할 무렵 이미 버밍엄의대 권역인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 미드랜드 카운티에 근무 중인 일차병원 가정의학 전문의 GP의 약 3분의 1은 5년 이내에 정년퇴직할 나이였다. 500만명이 넘는 주민의 주치의를 공급해야 하는 버밍엄대학은 GP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과정의 목표로 삼고 많은 노력을 했다.

나의 의대 친구들은 모두 다 수련 기간이 더 짧고(가정의학과 5년 vs 외과 10~15년) 삶의 질이 우월한 GP 길을 선택했지만, 의대 입학 처음부터 외과의사가 되고자 했던 나에게 있어서 의대 과정 5년동안 시체 해부를 두 번 밖에 못해보는 것은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의료윤리·행동과학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을 교육하는데 할당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과의로서 그 때 배웠던 비임상적인 기술들이 나의 진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환자는 의학지식만 많이 아는 로봇이 아닌 도덕적이고 인성 있는 의사를 원한다는 것은 그 때는 몰랐다.

의사들이 GMC에 소환되는 가장 많은 원인은 의사소통의 실패다. 동일한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해도, 의사가 환자와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고소와 이의 제기는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심지어 사망한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허혈성 장질환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할머니를 당직 전공의였던 내가 담당하게 됐다. 환자는 고령에 동반질환도 많아 담당 교수님과 상의 후 수술적 치료는 불가능하며, 감염환자를 위한 독립된 조용한 병실에서 통증을 조절해 편안하게 해 드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처 하루를 못 넘기고 환자는 사망했지만, 환자 가족은 나의 공감과 설명이 큰 힘이 됐다며 교수님을 통해 편지를 전했다. 그와 같은 순간에는 해부학지식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음 편은 의대생과 환자의 소통으로 이뤄지는 교육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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