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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환자 100명, A원장이 본 만성질환관리 사업 효과는?
관리환자 100명, A원장이 본 만성질환관리 사업 효과는?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7.04.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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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관심·상담에 높은 호응, 콘텐츠 부족은 개선돼야
노인층엔 대면진료가 더 효과적...참여 의원 의견수렴 필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본 사업으로 정착하려면 풍성한 콘텐츠와 인프라 구축이 필수일 것으로 보인다. 만성질환관리는 단기간에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신규 환자들의 흥미를 끌고 기존 환자들의 이탈을 막을 새로운 기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함께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시행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공인인증서와 모바일앱 등 어르신 친화적이지 않은 인프라로 어려움을 겪었던 초기와 달리 현재는 참여의원 수와 환자 수 모두 꾸준히 늘어, 한 의원당 평균 환자는 13명.

참여환자가 두세 명으로 저조한 곳도 일부 있지만 환자 100명을 꽉꽉 채워 관리하는 곳도 있어 눈에 띈다. 이는 의원당 의사 한 명이 관리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 중 하나인 서울 A원장을 만나 높은 참여율의 이유와 환자 반응, 시범사업의 장단점을 물었다.

그는 "2009년경 서울시에서 10여개 보건소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원격의료 진료시스템인 U헬스케어 사업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 때문에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의 취지에 공감해 작년 10월부터 참여하게 됐으며, 잘 아는 분야라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A원장은 의사가 직접 관리해준다는 점에서 현장 반응은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환자들이 점점 지쳐한다는 점을 들며 새로운 콘텐츠와 인프라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A원장과의 일문일답.

**A원장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게재합니다.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참여한 지 7개월 째다. 그동안의 환자 반응은 어땠나?
처음엔 굉장히 좋아하셨다. 혈압·혈당계를 공짜로 준다고 하니 환자들이 선뜻 한다고 했다. 지금도 어떤 분들은 매일매일 혈압·혈당정보를 보낸다.

문제는 7개월쯤 되니 힘겨워 하는 환자가 늘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수치를 보내던 것이 한 번으로, 혹은 그것도 부담스러워 했다. 전화를 하면 "죄송해요"라고 변명하며 병원에 안 온다. 몰래 기계를 반납하고 내원하지 않는 환자도 있다. 문자와 전화로 독려하고 이탈 환자가 발생하면 또 다른 분들을 참여시키고 있지만, 작은 의원급에서 하기엔 시간과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게 사실이다.

참여환자 100명의 연령대별 환자 구성은 어떻게 되나?
40∼5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60∼70대다. 30대가 조금, 20대는 없다. 노인분들이 책임감이 더 강하다.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하신다. 반면 40대는 오히려 안 하려는 비율이 많다. 귀찮으니 계속해서 혈압을 120-80으로 보내는 분들도 있다. 20∼30대 환자 참여율은 특히 낮다.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에 참여하겠냐고 물어보면 "제 정보가 건보공단에 올라가는 거죠?"부터 묻는다. 정보노출을 꺼리는 젊은층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번 사업으로 건강관리에 효과를 본 환자가 있나?
남성 당뇨병 환자다.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걸 설득해서 하게 했는데, 부인이 집에서 혈압을 재주다가 고혈압까지 발견한 것이다. 그 집안은 뇌졸중 가족력이 있었다. 쓰러질 뻔 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나눠준 혈당계로 가족들이 혈당을 재보기도 하고 금연도 노력한다고 했다.

사업 초기부터 공인인증서 입력의 어려움 등이 지적됐다. 지금은 좀 어떤가.
비슷하다. 모바일 '건강인'이나 홈페이지에서 직접 입력하는 분도 있지만, 전화로 불러주거나 병원에 와서 적어주고 가는 환자들도 있다. 모바일 건강인으로 입력하는 게 제일 편하데, 아이폰은 아직도 적용이 안 돼 아쉽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은 핸드폰이 있어도 잘 못 한다. 내가 독려 메시지를 보내도 잘 안 보인다고 한다.

공인인증서 개념도 이해시키는 게 정말 어려웠다. "이걸 깔면 핸드폰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 하고, 비밀번호의 개념도 없었다. 제대로 깔릴 때까지 은행에 두 번, 세 번씩 가서 공인인증서를 제대로 받아오시라고 했다.

시범사업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환자들은 관심 받는다는 느낌을 좋아한다. 내가 가는 병원 의사가 전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한다는 이 자체로 만족해한다.
 
단점은, 환자에게 보내는 지속관찰관리 메시지가 너무 상투적이다. '혈압이 좋네요, 잘 유지되네요, 싱겁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세요' 같은 식이다. 내가 직접 메시지를 입력해서 보낼 수도 있는데, 물음표나 따옴표, 슬래시(/)와 웃는 표시(^^) 등 특수문자는 입력이 안 된다. 가능한 건 콤마(,)뿐이다. 표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잘 지내세요'와 '잘 지내세요?'는 완전히 다른 말 아닌가.
 
메시지 형태도 금주와 영양, 운동 등 여러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어 이를 조합해서 보내고 싶은데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해 아쉽다. 메시지 전송도 일주일에 두 번이 최대다. 건보공단에 몇 번 건의를 했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안 된다'고 했다. 혈압·혈당기에 많은 돈을 투자한 것으로 아는데, 정작 필요한 서비스가 미흡하다. 올해 3월부터 환자가 건강정보를 전송하지 않으면 의사가 환자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게 돼 있다. 환자독려 차원에서 이 점도 개선해야 된다.  

▲ 지속관찰관리 메시지 서식. '싱겁게 먹으면 고혈압이 멀어집니다' 등의 내용은 너무 상투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외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환자 방문시 건강계획서를 만들어 주게 돼 있다. 그런데 콘텐츠가 너무 미흡하다. 적절한 운동을 하고 싱겁게 드시고, 그런 게 전부다. 게재되는 정보들도 마찬가지다. 건강계획서를 받는다고 한들 특별한 내용이 없다. 혈액검사를 했으면 결과를 이야기해주는 것 정도다. 과연 이 계획서를 다시 볼까.

30분이 넘으면 사이트 로그인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도 불편하다. 통계 시스템도 개선됐으면 한다. 오늘 환자 몇 명이 얼마나 입력했는지가 개별로 뜨는 게 아니다. 어느 날을 정해서 한 명 한 명을 다 열어봐야 해 번거롭다.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일단 혈압·혈당계 활용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으면 한다. 혈압계 중 안 맞는 기계들도 꽤 있다. 갖고 오라고 해 병원에서 재보면 20정도 차이가 난다. 환자가 혈압계 사용에 익숙치 않아 그럴 수도 있다. 병원에서 가르쳐 주긴 하나 일일히 모든 환자에게 하기엔 작은 의원급은 부담스럽다. 심지어 혈압계를 거꾸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참여환자에게 나눠줄 매뉴얼이 필요하다.

시범사업 설명 팜플렛도 몇 개 나눠주지 않아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복사해 나눠줬다. 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줬으면 한다.

일부에서는 이 사업을 원격의료 전 단계로 보는 시선도 있다.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이것으로 원격의료가 될 수는 없다. 환자들이 원하고 체감하는 원격의료란 '병원에 가지 않고서도 처방전을 받는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해 생활습관 관리다. 이런 기초적인 시스템을 원격의료라 부를 수는 없다.

다만 우려되는 건 사업이 끝난 후 효과성 평가다. 과거 보건소에서 U헬스케어를 했었고 활발히 잘 진행됐으나, 우리가 내렸던 결론은 '원격의료는 효과가 없다'였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손이라도 잡아주고 말 하나라도 더 해주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후 서울시에서 발표한 자료에는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왔다. 서로 해석이 다른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이같이 불필요하다고 느꼈던 게 정책 제안 과정에서는 필요한 것으로 변경돼,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원들이 원격의료 도입에 이용될 수 있다. 이 점은 걱정된다.

본 사업 정착을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실제 참여하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묻는 공청회를 통해 현장 피드백이나 설문이 이뤄졌으면 한다. 일전에 건보공단에서 내가 환자를 많이 관리한다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갔다. 문자 메시지부터 여러 개선사항을 이야기했는데, 반영되는 건 없어 아쉬웠다.

당뇨병약, 혈압약을 잘 안 먹으려는 사람들의 참여도를 높일 방안도 연구됐으면 한다.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더 잘되게, 안 하던 사람도 잘 되게 하는 게 목표 아닌가. 어떤 핑계로든 당뇨병약을 안 먹으려는 환자들이 있다. 그런데 제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니 약을 먹어야 하나 보다 생각한다. 이들의 참여도를 높일 유인책들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의료기기는 아주 효과성 있는 인센티브는 아니다. 요즘은 금연 환자에게도 혈압계와 체중계를 준다. 혈압계 없는 사람이 없다. 공짜 기계를 좋아는 해도 고마워하진 않는다. 예산편성을 더 해 제대로 주든지 해서 목표와 취지에 부합하는 사업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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