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내 눈빛이 달라졌다니까요!"

턱을 치켜들고 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말 그녀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수술 전 진찰과 상담을 받을 때의 순박해 보이던 눈빛과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눈빛'은 내가 느끼는 그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홍채(눈 안의 갈색 동자)의 빛깔이 변해서 자신의 눈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말이었다.

홍채는 물속의 해초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끈끈한 조직이다. 백내장수술을 진행하다 보면 홍채의 손상이 간혹 있을 수 있는데 그로 인해 동공의 모양이 변형되거나 눈의 회복이 더뎌진다. 시간이 흐르면 대개 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지만 민감한 환자들은 한동안 눈이 부시고 시리거나 시야가 흐리다고 호소한다. 이 환자의 경우가 그랬다.

이럴 때 홍채성형술을 하거나 홍채결손부위를 인공 홍채로 메워주기도 하는데 이분에겐 후자의 조치를 해드렸다. 시력도 점차 호전되고 눈 상태도 좋아졌다. 그런데 그 인공 홍채가 삽입된 눈동자가 원래와 다른 빛깔을 띤다는 주장이었다.

객관적으로 문제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본인이 유심히 자기의 눈을 들여다보면 눈빛이 평소와 다르고 주변의 사람들도 자꾸만 눈빛이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했다. 여전히 눈이 부시고 침침하다고도 했다. 점점 좋아질 거라 달래보았지만 오히려 불만은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는 남동생이 병원에 찾아왔다.
"우리 불쌍한 누님 눈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으니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전후사정을 얘기했다. 개연성이 있는 합병증이지만 비교적 수습이 잘됐고 계속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얘기를 했지만 그는 병원 측의 과실을 주장하며 책임과 보상을 언급했다.

고심 끝에 가입해 놓은 의료사고 배상보험에 사고접수를 했다. 의료심사를 받고 대학병원에서 자문의의 사건해석도 받았다. 얼마 후 손해사정인이 찾아왔고 미더운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 건은 의사의 과실이 별로 없으니 원만히 처리해보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지만 며칠 후 그에게 걱정스런 목소리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원장님! 그 동생이란 사람이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는군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거라며 벼르는데 무슨 소린지 내 참……."

그날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던 그의 눈빛이 뇌리를 스쳤다. 이후 그에게 연락이 몇 번 왔다. 병원 밖에서 좀 만나자는 얘기를 했다. 응하지 않자 다시 병원에 찾아왔다. 역시나 보상을 요구했다. 터무니없는 요구여서 곤란하다 했으나 그는 집요했고, 위협적인 언행마저 보였다.

계속 요구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다 불길한 상상이 꼬리를 물기도 했다. '어쩌다 이런 겁박까지 당하며 살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곤 했다. 쉽지 않은 협상 끝에 합의에 이르긴 했다.

의사로서 살아오며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어려운 일들을 겪어보았다. 특히 개원 이후에는 사소한 시비는 물론 송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겪을 때마다 그 괴로움은 새로웠다. 작은 갈등은 작은 대로, 큰 갈등은 큰 대로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했다.

아무리 갈등이 고조돼도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까지 당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것'이 남의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얼마 후 모임이 있었다. 은사님에게 이 일을 얘기했다.
"선생님, 이번에 우리가 하는 일이 꽤 위험한 일이란 걸 느꼈습니다."
"그럼! 매우 위험한 일이지. 그걸 이제 알았어?"
철없는 애를 나무라듯 했다.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은 한편으론 존경받을 만한 고귀하고 인도적인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거친 언행과 폭력의 위험마저 때때로 감수해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둘은 모순의 공존을 이루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은사님이 소주 한 잔을 권했다.

잔속의 술을 바라보다 김현승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시를 곰곰이 되뇌다가 '오늘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나 못지않게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리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봐'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믿고 자신의 몸을 선뜻 맡겨주는 고마운 분들의 선하게 웃는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이제 그간의 일은 잊고 툭툭 털고 일어나 내게 주어진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새로운 힘이 내 안에서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물끄러미 술잔을 쳐다보았다. 누군가의 눈동자가 투명한 유리 위에 어른거렸다. 보이지 않는 눈물을 잔에 담아 목 안으로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