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헨리 휴버스 한국릴리 사장
폴 헨리 휴버스 010-XXXX-XXX7. 보통 사장 대외용 명함에는 대표실 번호만 기재돼 있는 경우가 많은터라 휴버스 사장의 명함은 특이했다. 마치 '나하고 말할 거 있으면 그냥 곧바로 전화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휴버스 사장은 사내에서 '폴님'으로 불린다. 사내 모든 임직원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기 때문에 사실상 '폴'로 불리는 셈이다.

평등한 인간존중의 조직으로 한국릴리를 경영하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이라지만 사실 모든 다국적 기업은 어쩔 수 없는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의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그에 따라 한국법인을 포함해 모든 다른 국가별 법인은 본사와는 또다른 그들만의 '로컬 문화'를 만들어 낸다.

적지않은 다국적 기업 한국법인이 본사가 지향하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표방하지만 사장이나 임원이 들어오면 일제하 일어나 '90도 경례'를 하기도 하고 회의 석상에서 아랫사람의 주장을 건방지다고 보는 현상은 로컬라이제이션의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릴리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준수의지가 강한 기업으로 통한다. 연공서열에 민감한 한국 로컬 문화에 맞서 평등한 조직문화를 구현하려는 것도 한국릴리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임원이 과장급 사원에게 'oo님'하고 존대할때 약간 낯설기도 하지만 경직된 조직문화를 보다 수평적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하려는 폴님의 의도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강한 추진에는 필연적으로 '유도리'의 결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관된 방향을 향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추진 속에 가끔 유도리를 발휘하는 운용의 묘도 기대해 본다. 근데 '유도리'가 뭐냐고요?

"폴님, 전화주세요? 알려 드릴게요!"

<일문일답>

지난 1년간의 성과를 평가하자면?

릴리는 지난해 창립 140주년을 맞았다. 한국릴리는 국무총리 표창과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상 수상, 여성가족부 가족친화기업 재인증 등을 받았는데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한국릴리는 지난 한해 동안 무려 3개의 제품을 출시했다. 진행성 위암 치료제 '사이람자'와 당뇨병 치료제 '자디앙', '트루리시티'로 이들 제품의 성공적인 출시를 성과로 보고 있다. 주요 제품의 특허만료로 매출증가율은 한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에는 지난해 출시된 제품들로 두자릿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주목할 치료제가 있다면?

먼저 골다공증 치료제 '포스테오'가 있다. 몇년 간의 노력과 협상 끝에 지난해 12월 드디어 급여를 승인받았다. 이미 급여 전부터 비급여 치료제로 많은 처방사례가 있었지만 급여승인을 계기로 더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 당뇨병 치료제 '자디앙'과 '트루리시티'도 꼽을 수 있다.

자디앙은 당뇨병 치료제 가운데 새로운 SGLT-2 억제제다. 자디앙은 맞춤형 치료가 중요한 당뇨병 치료에서 다양한 치료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자디앙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트루리시티 역시 새로운 계열에 속하는 GLP-1 유사체다. 지난 6월 출시 이후 국내 GLP-1 유사체 시장의 약 65%를 점유하며 계열 치료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트루리시티는 매주 1회만 투여하면돼 주사제로 인한 부담이 적다. 우수한 혈당강하 효과와 편의성 향상으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진행성 위암치료제 사이람자는 내년 급여승인을 목표로 심평원과 지속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위암은 아시아에서 발병률이 높은 암질환 중 하나로 사이람자는 유의한 치료효과가 확인된 최초의 위암 VEGFR2 억제제다. 이들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

폴 헨리 휴버스 한국릴리 사장
사이람자 급여협상을 앞두고 있다. 한국의 급여제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한국은 정부가 보험료를 거둬 재정을 운용해 약가를 지불하는 단일 건강보험시스템이다. 보건의료 예산을 신중하게 쓰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급여제도는 좋은 제도이지만 제약사가 신약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혁신적인 생물학적 제제를 40년 전에 개발한 화학제제와 1:1로 효과와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부와 제약사, 환자 모두는 혁신적인 의약품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됐지만 급여승인을 받지못해 투여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환자의 접근성은 정부가 더 많이 부담하는 방안도 있지만 제약사가 혁신신약에 대한 약값을 낮추는 방안도 있다.

신약이 탄생하기까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 제품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출시하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며 보통 2억6000달러의 막대한 R&D 비용이 투입된다. 하나의 치료제가 상용화되는 과정에는 수 많은 실패로 인한 비용이 들어가 있다. 실험실 연구와 1~3상 연구, 시판 후 발생한 비용, 제품 철수 리스크 등의 요인이 모두 그 약의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혁신이 적절한 보상을 받지못해 자칫 궁극적으로 환자의 혁신 신약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다.

제약사는 그런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신약 접근성과 충분한 가격수준 사이에서 균형을 잘맞춰야 한다. 릴리 포스테오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한국릴리는 포스테오 급여승인을 위해 지난 10년간 노력했고 결국 지난해 급여승인을 받았다. 포스테오는 급여승인 과정에서 약값이 대폭 인하됐지만 혜택을 받는 환자가 증가해 매출은 두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항암제나 희소질환 개별펀드를 만들어 급여를 받지 못한 환자를 별도로 지원하자는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희소질환 치료제를 모두 승인해도 보건의료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희소질환은 말그대로 환자가 적기 때문이다. 만일 희소질환관련 기금이 조성된다면 신속하게 치료제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희소질환은 대체로 신속한 신약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반면 항암제는 환자 수도 많고 혁신 치료제도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보건의료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희소질환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크다. 실제 실행 가능성을 놓고 본다면 희소질환 펀드가 좀 더 유리하지 않겠나.

한국 부임 5년차다. 한국 제약산업의 특징이 있다면?

한국 부임 이전에 남미 지역에서 근무했다. 남미는 민간과 공공 의료기관의 시설격차가 크다. 민간은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공공기관은 빈곤층이 주로 이용하는 열악한 환경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민간과 공공시설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릴리를 방문하는 해외 방문객이 있으면 반드시 국내 병원을 들르도록 한다.

모두 한국 병원의 우수한 자원과 환경에 감동한다. 이런 요소가 한국이 연구개발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한국은 시장규모보다 많은 임상시험을 하는 나라다. 인재가 큰 몫을 한다. 한국 문화적 특징인 '빨리빨리'도 의료분야에서 신속하고 양질의 임상연구를 수행하는데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 휴버스 사장이 추구하는 리더십도 궁금하다.

릴리에서 27년간 근무하고 있다. 한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려면 그 기업의 가치와 개인의 소신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3가지 원칙을 '투명성(transparency)'과 '열정(passion)', '인간 존중(respect for people)'이라고 꼽는다. 릴리가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나는 '사장님'이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는다. 그냥 '폴'이라고 불리길 원한고 그렇게 하고 있다. 열려있는 평등한 조직을 만들고 있다. 언제든 직원이 원한다면 찾아와서 커피 한잔 하고 얘기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혼자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늘 임직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영측면 뿐 아니라 이런 가치는 인류 본연의 가치인 '인간 존중'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