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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주년 기념 특집 '자기주도 평생학습자'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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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2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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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의학교육의 변화는?
이영미 고려의대 교수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그리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일상대화에서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친숙해졌다.

▲ 이영미 고려의대 교수

4차 산업혁명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의 세상은 우리를 흥분되게 만들고 때로는 정체모를 불안감에 빠지게도 한다. 의사라는 전문직종이 'IBM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에 대체되거나 상당부분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점은 필연적으로 '우리는 4차 산업 시대를 대비해 의학교육을 잘 하고 있는지 또는 이를 위해서 의과대학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곤 한다.

필자는 20여년 의학교육학을 전공해오면서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의학교육의 변화'에 대한 각계의 관심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촉구 속에는 '뭔가 신속한 해결책을 내어 놓으라'는 채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버드 교정 덮친 AI 바람…의대교육 뜯어 고친다'라는 인터넷의 선동적인 기사 제목은 마치 이제껏 변하지 않았던 세계최고의 의학교육기관이 인공지능 때문에 의학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그러나 하버드 의대 뿐 아니라 의학교육과 의료의 선진국에서는 '21세기 의사의 역할 변화'에 대비한 의학교육의 개혁을 1980년대 후반부터 광범위하게 시작했다.

북미·유럽·아시아태평양지역의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이미 수 차례에 걸친 교육개혁과 실행을 통해 '21세기 사회에 적합한 의료인의 역량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개발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자기 혁신을 꾀해 왔다.

의료선진국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학술대회와 학술지를 보아도 '인공지능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별도의 의학 교육 대책'을 거창하게 논의하기 보다는 '지식·기술·문화·사회의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예측 불가능' 하다는 단순한 진리에 근거해 어떠한 변화가 닥쳐오더라도 경쟁력 있는 의료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과 방법이 무엇일지를 끊임없이 연구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죽는 것처럼 '교육과정도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계속 성장, 진화해야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과 같은 테크놀로지는 변화의 한 종류일 뿐이며 의사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고 지배하는 주체적인 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도록 미래의 의사를 준비시키는 것은 변함없는 의과대학의 사명이다.

국제적인 의학교육의 방향은 '급변하는 사회와 보건의료의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이라는 기본명제를 깔고 있다. 예측불허의 미래에도 경쟁력이 있는 의사는 창의성·유통성·개방성·협업능력·자기혁신과 개발능력을 갖춘 인재다.

'21세기의 플렉스너 보고서'라고 불리우는 'Educating Physicians; A Call for Reform Medical School and Residency'는 (1)학습 성과의 표준화와 학습과정의 개별화 (2)지식과 임상경험의 통합 (3)탐구와 혁신 습관의 배양 (4)직업정체성 형성을 초점으로 의학교육이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 역시 21세기에 새롭게 주창된 것이 아니며 이미 1980년대부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강조돼 왔던 이론과 실제를 종합해 의사양성교육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역량 바탕', '인간중심성' 이라는 원리를 의학교육에 더욱 더 활성화해야 하고,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에게도 용어는 익숙한 '자기주도적 평생학습'을 위한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역량바탕교육에서는 미래의 사회에서 사회적 요구와 책무를 달성하는 유능한 의사의 역량을 설정하고 학습자들이 그 역량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을 구성하며 목표역량에 도달여부를 다각도로 측정 평가한다.

진료 및 연구 역량 이외도 의사소통·협업·자기성찰 평가·자기계발과 혁신·프로페셔널리즘 실행 능력의 요소를 정의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세부역량을 설정하며 학습자의 발단 단계 따라 도달해야 하는 '역량 수준'을 정하고 학습자가 보여줘야 할 수행능력을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한다. 짜여진 커리큘럼과 시간이 아닌 역량도달 여부가 상급학년으로 진급이나 의대 졸업, 전공의 교육과정의 수료를 결정한다.

'학습자중심'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부터 강조돼 온 것이지만, 디지털 세대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Metha 등은 '파괴적 의학교육혁신'이라는 용어와 함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역진행 수업(flipped-classroom)·디지털배지와 같은 방법이 학습자 중심의 역량바탕 교육을 현실화하는 방편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즉 학습자들은 MOOC와 같은 온라인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기주도학습을 선행하고 교수들은 'flipped-classroom' 모델을 적용해 학생들이 학습해 온 내용을 점검해주고 교수-학습자 간의 쌍방형 토론 학습을 촉진한다.

학습 컨텐츠 자체는 상시 접근가능하므로 학습자의 수준과 단계에 따라 예습·복습·반복심화가 가능하다. 교수-학습자 사이의 양방형 토론수업은 학습내용을 정교화, 체계화시켜 업무 시 필요한 지식으로 재탄생시킨다.

하버드 대학은 1980년대 하이브리드 문제바탕교육과정으로 이루어진 'Harvard New pathway'를 시행하면서 강의실 수업을 주 2∼3회, 3∼4시간 이내로 줄이고 소규모 토론방식으로 변혁한 이것에 이어, 2019년부터는 강의실 수업이 전혀 없이 flipped learning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혹자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버드 의대생들과는 교육받아온 방식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기기, 인터넷을 접하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시대의 학습자이다. 단순 지식전달의 강의와 실습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자기 주도적인 평생 학습자가 돼야만 인공지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의사로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업데이트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중심성'을 강조하고 싶다. 미래 30∼40년 후에는 의료의 제공형태 및 소비자 요구 모두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결과 의료는 더 이상 불완전하고 불편한 서비스가 아니라 제공자의 실력과 무관하게 안전하고 질적으로 보장된 상품처럼 될 수 있다.

이럴 때 경쟁력이 높은 의사는 누구일 까? 첨단 테크놀러지가 발달할수록 인간-인간 사이의 접촉은 감소할 것이고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인간만이 구현할 수 있는 핵심 가치 즉, 타인존중·공감·온정·유대관계 등의 휴머니즘을 더 갈구할 것이다.

인간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감정의 변화와 굴곡, 빅 데이터를 이용해도 예측할 수 없는 감정과 영혼으로 이뤄낸 개인적인 삶의 역사를 지닌 특수한 개체이기에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감정을 헤아리는 진심어린 눈빛, 목소리로 나의 스토리를 들어주고 따뜻한 손길로 나를 진찰해주며, 나의 의학적 결정에 있어 신실한 파트너가 되어주는 의사를 선호할 것이 분명하다.

의사로서 직업전문성을 갖추고 인간(환자)중심성을 실천하는 의사들은 테크놀러지에만 의존해 천편일률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의사와는 차별화될 것이며 미래 의료계에서 그 경쟁력은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설 것이다. 따라서 의학교육에서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것을 표현하고 교감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의 현주소는 어떤가? 왓슨과 같은 최첨단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환자에게 전인적이면서 개별화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는 미래의 의사를 키워내는 최적화된 시스템일까?

전기한 바와 같이, 1915년에 플렉스너 보고서 이후 서양식 의학교육에 정착된 교육모델과 교육방식을 의료의 선진국에서는 1980년 이후 대다수 폐기되고 수 차례에 걸친 수정과정을 거쳐 교육혁신을 도모해왔다. 국내의 의과대학도 지난 2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고 일부 대학에서는 획기적인 발전적 변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의예과-의학과의 불필요한 단절, 학문적 단위의 교실 또는 교과목위주의 교육철학과 수업구성, 주당 20∼30여 시간에 이르는 강의실 수업, 시험 위주의 단층적 평가 등 20세기 의학교육의 전통을 고수하는 대학들이 아직도 상당수 있다.

반면에 의사소통능력, 공감능력, 협업능력 등과 같은 비의학적 역량(Non-technical soft skills)을 등한시 하거나 진료에 있어 인간중심적이고 공감적 태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아직도 팽배해 있다.

이 글의 제목이 '인공지능 시대, 의학교육의 변화는?'이다. 그에 대한 필자의 답은 특별하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라서 의학교육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사회는 항상 급변하고 교육, 특히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의 교육은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대처해야 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변신·변화·혁신·발전해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교육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은 최소 30∼40년 후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의사의 역량이 무엇일지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춰 의과대학 교육과 졸업 후 전공의 교육에서 학습자들이 갖춰야 할 역량을 설정해야 한다.

동시에 역량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평가체계를 설계하고 계획한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들을 끊임 없이 고민하고 발굴해야 한다.

학습자들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학습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생할 수 있도록 교수 및 평가방법을 섬세하게 조정하는 노력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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