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경 무지개연합의원(전 의협 공보이사겸 대변인)

2007년 11월부터 2009년 4월까지 공보이사겸 대변인으로 대한의사협회에서 일을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고작 1년 5개월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당시 대통령 선거, 의료법 개정, 이명박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 사태, 그리고 36대 의사협회 선거 등으로 정신 차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정책이사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잠시나마 근무했다는 경력을 바탕으로 의사협회에서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지금도 과분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당시 나의 주 직무였던 <의협신문>의 편집인으로서 충분히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있다.

당시 의사협회는 국회 로비 사건으로 큰 화제가 됐고 큰 오명을 입게 됐다. 의사단체의 구태의연한 방식의 대정치권 로비활동은 오직 금전적인 방법으로 시도되는 경향이 있었고, 2000년 의권투쟁 당시 모았던 꽤 큰 규모의 투쟁기금은 한 푼도 없이 다 없어졌다. 의협은 운영자금 거의 대부분을 회비만으로 충당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의협신문>은 발행부수를 유지하고 광고도 꽤 많이 수주하면서 나름 자체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큰 사건의 중심이었던 의사협회는 경영혁신과 회비절감을 목표로 여러가지 방법을 만들어보려고 했고, 이에 <의협신문>도 지면 신문을 주 1회로 줄이고, 인터넷 신문 공개입찰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 오늘날의 신문 포맷으로 이루지게 됐다.

인터넷 신문의 모양새는 깔끔해져서 기자들과 의사회원들이 이용하기 편리해지고, 지면신문의 발행 축소로 회비가 절감돼 의협의 운영에는 도움이 됐지만 여전히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의협신문>은 필자가 기억하는 한에서 두 번의 큰 발전과 퇴보를 함께 겪었다고 생각한다.

그 한 번은 2000년 대정부 투쟁이었다. 이로 인해 의사사회가 좀더 의료정책에 대해 제대로된 정보를 갈구하게 됐고, 그 정보가 한 집행부의 입맛대로 재단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알게되는 시기였다. 이에 <의협신문>의 역할은 더욱 커지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변수는 의사협회 회장 직선제였다. 이로 인해 집행부는 최대한 <의협신문>의 여러 정책기사와 동정기사들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재단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고, 이는 결국 의사회원들이 의협신문을 외면하게 되는 상황이 더욱 공고히 됐다고 볼 수 있다.
또 한번은 2008년 미국쇠고기 수입 사태였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해 보수 진보 색채의 언론은 각자 자신의 이념지향에 맞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협회는 좀더 의학적인 결론을 내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마음이 있었고, 결국 대한의학회의 소중한 의학적 판단을 토대로 의사협회의 입장을 밝혔다.

만약 이런 사건이 다시 생긴다면, <의협신문>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많은 의학자들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일들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즉, 의료 관련 사건 사고가 있을 때 의사협회가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더라도, 독립된 <의협 신문>이 전문가의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고 본다.

나름 이렇게 결론을 내어보지만, 솔직히 제대로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개의 경우 의협 집행부가 바뀌면 그 집행부의 명령 또는 의견을 받아서 편집 방향이 결정나고, 그것을 직원들이 거부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의사회원들은 의협신문을 소식지로만 바라보면서 직원들의 어려움을 간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대안을 제시해 본다. <의협신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고 발행인과 편집인에 중립적 인사의 채용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좀더 깊이있는 정책 해설과 풍부한 기사를 담보하고 여타의 신문사와 경쟁을 한다면 현재 기자들의 수준과 역사와 전문가들의 협력 풀을 갖고 판단할 때 의협신문은 의사협회의 대표적 중요 기구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